다시 찾은 나
질긴 노력 끝에 얻게 된 국가 자격증이었다. 처음 자격증을 받았을 때, 손바닥 크기보다 작은 플라스틱 카드에 적힌 나의 이름 석자가 눈물 나게 아름다워 보였다.
너무 갖고 싶었던 것을 손에 쥐게 되면 별거 아닌 것들에도 벅찬 마음이 들곤 하는데, 그때가 딱 그랬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했었다. 자주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살면서 세운 굵직한 목표들을 성과로 얻어냈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별 탈없이 순조로운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같은 해 컴퓨터 자격증을 하나 더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 1년 중 10달을,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시험 보는 데에 시간을 썼다. 일과 사랑, 공부. 어느 것 빠지지 않고 열심히였다. 그만큼 열정이 깊었던 시절이었고, 모든 게 부족함 없이 채워지고 또 적당히 비워지면서 완벽한 삶의 모양이 갖춰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며칠이 지나자 또 다른 고민거리가 찾아왔다.
계약했던 1년의 기간이 점점 채워지고 있던 와중에 함께 일했던 분들은 조금씩 우리들에게 정직원 면접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국립 기관으로 전환을 하고 있던 시기라 더 나은 근무 환경과 복지를 앞세워 설득했다. 준비만 잘하면 나쁠 것도 없었지만 정말 이곳에 직원이 되어 뿌리를 내리게 된다면 나는 다시 돌아가 내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하고 싶었던 나와 월급을 받으며 남을 위한 작업을 하는 나와 과연 맞바꿀 수 있는 것일까. 며칠을 고민하며 쉬이 이른 잠에 들지 못했었다.
가끔은 나를 위한 게 아니더라도 내 손을 거쳐야만 진행되는 모든 일들에 뿌듯함을 느낄 수는 있었다.
남들이 쉽게 손대지 못하는 분야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고, 고정적인 월급은 더없이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월급날만 되면 적지만 부모님께 어른 흉내를 내며 용돈을 드릴 수 있었고, 가끔 만나는 친구와의 식사자리에서, 한 달에 딱 한 번 가졌던 데이트 자리에서도 선뜻 카드를 내밀며 끼니를 선물하는 일도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20대 초반이었고, 그런 행동들이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저것 따지고 비교하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다. 선택사항은 2가지였다. 이대로 직장 생활을 유지시킨다면 나는 끝까지 이곳에 있겠다는 선택과, 내 원래의 꿈을 이루겠다는 선택. 작업을 하려면 나중은 없었다. 4년 가까이 훈련받아 만들어낸 손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누고 보니 결정이 조금 쉬웠다.
10월의 평창은 금방 겨울이 올 것처럼 쌀쌀했다. 그곳은 겨울이면 워낙에 추운 지역이라 봄도 가을도 항상 짧고 귀했다. 남은 두 달의 계약기간을 채우고 나서 나는 곧바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모두의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여주기식 어른의 이름을 갖는 것과 작가의 이름을 갖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밤마다 손이 자주 근질거렸고, 모두 저마다 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 때면 자꾸만 눈에 걸렸다.
*
그렇게 평창에서의 사계절을 모두 느끼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딱히 어른 흉내를 낼 만한 것들이 없어졌지만, 진짜로 내가 바라는 꿈이 있었고 나를 기다리는 이름이 있었다.
곧바로 하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매일매일 흙을 만졌다. 1년의 공백기는 내게 아무런 흠이 되지 않았다. 다시 내 것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스물다섯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