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일상
땅을 가꾸어 환경을 만들고, 작물을 심고 키워 재배하는 데 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이것보다 신비하고 어려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농업을 주된 업으로 삼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사를 온 후부터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해 보니 대략 알 수 있었다.
내가 먹는 쌀과 채소, 과일. 모든 것들이 식탁으로 올려지는 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끼니를 채울 때, 적어도 한 번씩은 이런 생각을 곱씹게 되었다.
길을 지날 때나 우연히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 뵐 때에도 멀리서나마 잠깐 그들의 눈과 손, 젖은 장화와 흙이 묻은 옷소매 끝에 시선을 두고 헤아려보려 한다.
우리 가족은 올해로 2번째 호박밭을 만들어냈다. 두 달 가까이 땅을 일구고 밭을 만들고, 모종을 심고 물을 주어 자라나게 하기까지 대략 한 달이 걸렸다. 이제는 매일 새벽에 나가 호박을 포장해 내 보내야 한다. 오후에는 또다시 호박을 따고, 다음 날 새벽에는 또 포장을 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대략 10월 말까지 쉬지 않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그렇지 않으면 뜨거운 해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래서 가끔은 예민해지기도 하고 서로서로 의견 전달이 따가워지기도 한다. 사소한 말로도 큰 돌풍을 불러올 수 있기에 충분한 계절 속에서 그럼에도 함께 똘똘 뭉쳐 견딜 것이다.
이왕 이렇게 일을 시작하게 됐으니 전보다 체력 소모가 큰 몸을 조금 더 피곤하게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낮잠을 덜 자고, 눈이 감겨도 책을 조금이라도 읽는다. 시간이 비는 오후에는 귀찮아도 헬스장에 가기로 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움직이고 땀을 빼서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픈 곳에는 좀 더 아픈 치료가 효과적인 만큼, 피곤한 몸에는 더 피곤함을 심어주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당분간 작업을 못할 것 같아 걱정을 했지만 가족의 일원으로서 나의 시간을 투자하고 조금이나마 경제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어쩌면 다행인 일일 수도 있다고 마음을 먹기로 했다.
한 번도 이곳에 와서 힘이 들거나 불만이 생겼던 적은 없었다.
조금은 갑작스러운 이사였지만 서도 살면서 한 번쯤 거처를 옮기며 큰 변화를 겪는 것이 나에게는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 워낙 작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고, 커다란 빌딩보다는 놀이터 흙바닥을 훨씬 좋아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곳에 가도 흙과 나무만 있다면 완벽한 적응을 할 자신이 있었다. 상황에 따라 부모님의 일을 돕고, 해본 적 없는 일을 해야 했지만 뭐든 배우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이곳은 옆 사람에게 잘 배우고, 불만 없이 묵묵히 해나가는 것만이 정답에 가까운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몸 사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부모님이 가끔은 걱정했겠지만 나는 그런 내가 오히려 좋았던 적이 훨씬 많았다. 힘들고 어렵게 해내면 느껴지는, 그것만의 단맛이 있기 때문이다. 힘이 세진 않지만 약해 보이는 건 더 자신이 없어서 괜히 허리를 더 숙이고 없는 짐까지 찾아내 들고 다니며 큰 어른의 흉내를 정말 많이 냈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항상 먼저 움직여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는 저녁 7시가 되어도 해는 쉽사리 식지 않는다. 올여름은 우리 모두가 아주 치열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