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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Sep 30. 2024

하잘이 한국에 왔다

“루미 언니, 친구랑 같이 가도 돼요?”

하잘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친구 누구? 어디서 만난 친구인데?”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이른 봄, 하잘에게 한국에 온다는 반가운 이메일이 왔다.

봄 학기 동안 ‘동국대학교 한국어교육원’에 수강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그녀가 열심히 일해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사고, 학비를 마련했나 보다.  

    

하잘은 내가 NCC에 등록하러 갔던 날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룸에서 처음 만난 친구다.

그녀는 BTS 방탄소년단을 좋아해 ‘아미’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한국에서 온 나를 아주 반갑게 환영해 주었다.

1년 동안 하잘과 나는 Work study student로 학교에서 일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1년 후 우리가 헤어지던 날 그녀는 말했다.  

“루미 언니, 나는 돈을 모아서 한국에 갈 거예요. 그때 우리 꼭 다시 만나요.”


하잘은 한국에 왔고 동국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한글을 공부했다. 학기가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 집에 오겠다는 카톡을 보내온 것이다. 같이 오겠다는 친구 미리엄은 BTS 아미로 활동 중인 캐나다 친구이고 SNS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하잘과 나도 국가와 나이를 초월해 만난 친구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터미널에 그녀들을 마중하러 갔다. 버스가 도착하기 20분 전에 미리 가서 기다렸다. 잠시 후, 대구에서 오는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왔다. 히잡을 쓴 하잘이 눈에 쏙 들어왔다. 그녀들이 내렸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껴안고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았다. 하잘이 한국 우리 집에 왔다. 꿈만 같다.  

    

미국에 있을 때 나는 하잘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영어를 아주 잘하고 프랑스어도 잘하는데 왜 ESL에 다닐까? 조금 친해지고 나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저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았어요. 하지만 부모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등록금이 싼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한 거예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기초과정을 공부한 다음 좋은 대학에 편입할 거예요. 그게 가장 경제적이에요. ESL에서는 일하고 있어요.”

궁금했던 그녀의 비밀이 풀렸다. ESL은 그녀가 다니는 학교가 아닌 일터였던 것이다.   

   

그녀는 ‘국제교류의 날’ 행사 때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도 여러분처럼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기에 불리한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에서 여자로 태어났습니다. 열 살 때 모로코에서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왔습니다. 저는 무슬림이고 히잡을 썼습니다. 하지만 내 꿈을 향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여러분의 꿈을 이루기 바랍니다.”

하잘의 멋진 연설이었다.

그녀는 ESL 학생들을 도와주는 많은 일을 했다. ‘국제교류의 날 행사’도 성황리에 마쳤고, 얼마 뒤엔 학생들을 데리고 ‘뉴욕 여행’도 다녀왔다.  

    

하잘의 한국에서 계획은 학기가 끝난 후, 우리나라에 있는 BTS 성지를 여행하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공부가 끝나고 보니 모아둔 돈을 거의 다 써버렸단다. 그래서 모든 여행 일정은 취소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고 했다. 그 대신 대구에 있는 친구 미리엄 집으로 가서 주위를 관광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불고기와 잡채 김치로 식사를 했다. 하잘은 무슬림으로 할랄 푸드만 먹어서 빵과 샐러드도 준비했다.

 식사 후, 우리는 NCC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과 Mr. 저스틴에 대해서도 많은 추억을 이야기했다.

“하잘, Mr. Justin 멋지지 않아? 인상 좋고 친절하고 잘 생기고 매력적이었어.”

“근데 저스틴은 왜 1년 내내 검은색 바지만 입는 거죠? 궁금해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그만의 패션이겠지. 궁금하면 그에게 물어봐야지. 왜 나에게 물어봐?”

우리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미리엄도 궁금한지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떻게 생겼는데? 사진 있어? 보여줘 봐.”

우리의 웃음소리는 조그만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그날 밤, 친구들을 보며 전라북도 완주군 BTS 성지에 데려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우리는 BTS성지 순례길에 나섰다. 먼저 완주군 소양에 있는 오성한옥마을로 갔다.

“이곳의 고택들은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오래된 한옥들을 옮겨와 재조립한 거야. 고택이 예뻐서 드라마나 광고촬영도 많이 했대. 특히 BTS가 이곳에 머무르며 뮤직비디오를 찍어서 아주 유명해졌어.”


그들은 오래된 한옥의 기둥과 곡선, 기와 그리고 돌담길에 흠뻑 빠졌다. 아기자기한 한옥 서점 플리커 책방을 구경하며 뷰티풀과 원더풀 감탄사를 쏟아냈다. 얕은 연못이 있는 두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잘이 말했다.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포코노 마운틴은 높지만 평평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의 산은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정말 아름다워요. 맑은 호수도 예쁘고요. 저 산속을 걸어보고 싶어요.”

“그래? 다음 주에 같이 걷자."

우리는 쫑알쫑알 많은 이야기를 했고 까르르까르르 시도 때도 없이 웃었다.      

오성제 호숫가에 있는 BTS 소나무 아래서 인증숏을 찍었다. 그녀들은 여기저기 보이는 곳마다 탄성을 지르며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댔다. 위봉산성과 삼례 비비정에도 올라 BTS 스폿에서 큐알코드 인증을 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대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주에 다시 와서 등산이나 트래킹을 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등산을 하기엔 날씨가 너무 더웠고 하잘이 다음을 기약했다. 아마도 하잘의 여행경비가 바닥나지 않았나 싶었다. 서로 모른 척하며 내색하진 않았지만 느낌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학비와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녀는 밤낮없이 일했을 것이다. 부족한 학비는 융자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잘이 그녀의 꿈을 향해 용감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한 달 뒤, 그녀에게 미국 뉴저지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짧은 카톡 메시지가 왔다.      

내가 만약 미국에 어학연수를 가지 않았다면 평생 만날 수 없었던 소중한 인연들이다. 언젠가 하잘이 다시 와도 반갑게 맞을 것이다. 세계 각지의 친구들이 모두 찾아와도 좋다.

‘미국 어학연수’ 동안 영어만 배운 것이 아니다. 하잘 같은 멋진 친구도 사귀었다. 영어만 남는 게 아니다. 소중한 친구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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