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살살하지 그랬어요!
8월 31일 토요일 오후 3시 30분.
아이들이 우리에게 보내온 예식 날짜와 시간이었다. 한여름 오후 3시 30분의 결혼식이라니 의아했지만 뭔가 사정이 있겠지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식장이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이라는 것이었다.
딸은 결혼식 전날 저녁 식사 자리에 양가 부모님을 함께 하도록 했다. 상견례 후 사돈과 다시 만나는 자리였는데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웠다.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사돈을 초대했다.
“상견례는 사돈댁이 있는 대구에서 했으니 결혼식 후에는 저희가 사는 곳으로 여행 한번 오시지요.”
딸은 1년 전부터 웨딩플래너 도움 없이 신랑과 상의해 결혼 준비를 했단다. 웨딩포토도 둘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찍고, 영상도 둘이 만들었으며 편집만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 중심이 되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어. 먼 길 와주신 하객들에게도 식전 영상과 식중 영상으로 우리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지.”
딸과 사위는 학교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위해 서울에서의 예식을 택했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은 지방에서 올라와야 했기 때문에 고속버스 터미널 옆으로 정하고 단독 홀을 택했다. 예식홀이 많아 이쪽저쪽에서 신부가 나오고 하객들이 서로 섞여 어수선한 모습은 원치 않았단다.
딸은 인터넷으로 조건에 맞는 두 곳을 찾아 방문했단다. 첫 방문에 당일 계약을 해서 10%의 할인을 받았고, 8월 말까지는 비수기여서 20% 할인 혜택을 더 받고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짬을 내 손품 발품을 팔았고 최소의 경비를 지출했다고 한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대형 스크린에서는 신랑 신부가 서로를 인터뷰한 영상이 나왔다.
“나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신부: 안경 낀 모습이 좀 차가워 보였다. 하지만 대화를 시작해 보니 소개해준 친구 말처럼 유머 코드가 나랑 아주 잘 맞았다.
신랑: 예뻤다. 키 크고 날씬한 여신. 나의 이상형이었다. 처음엔 차갑고 도도하게 보였지만 대화를 해보니 서로 잘 통했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신부: 내 생각에 많이 공감해 줬다.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나무처럼 늘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신랑: 예쁘고 긍정적이다. 항상 나를 많이 칭찬해 준다. 벌써 내 성격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웃음도 많아졌다. 평생 같이 있고 싶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 친구인 사회자가 신랑 신부 부모님들의 결혼했던 날을 추억하며 멘트를 날렸다.
“그날의 신랑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1988년 6월 22일의 신랑 박문수 님과 신부 김경희 님 입장해 주세요”
신랑의 부모님이 두 손을 잡고 입장했다.
“1990년 1월 21일의 신랑 나대웅 님과 신부 박루미 님 입장해 주세요”
남편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 33년 전 그때가 생각나 조금 떨리고, 설레고, 뭉클했다.
부모님들의 입장 후,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부케도 없이 입장했다. 신부가 버진로드 중간쯤 왔을 때 신랑이 걸어 나와 무릎을 꿇고 신부에게 부케를 주었다. 신부가 부케를 받고 둘이 손을 꼭 잡고 입장했다. 웨딩 마치도 우리가 듣던 결혼 행진곡이 아니었다. 라붐의 OST인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가 흘러나왔다.
주례는 없었고, 신랑 아버지가 성혼선언문을 읽었다. 신부 아버지인 남편이 ‘8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축가로 불렀다.
결혼식 전, 우리 가족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남편이 울까 봐 걱정이었던 것이다. 딸과 나는 남편 교육을 단단히 시켰다.
남편은 이미 몇 번이나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남편은 주위 친구들과 지인들의 부탁으로 주례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신랑 신부가 신부 부모님 앞으로 가 인사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그 대목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
지인과 친구 자녀의 결혼식에서도 눈물을 흘렸는데 오늘은 딸의 결혼식이 아닌가? 우리는 초비상이었다.
“당신이 울면 나도 울 거예요, 울지 마세요.”
“아빠 절대 울면 안 돼.”
다행히 남편은 울지 않고 무사히 축가를 마쳤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여기저기서 앙코르 소리도 들렸다.
대형 스크린에는 신랑 신부가 함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나왔다. 모두 영상을 바라보았다. 신랑 신부도 뒤돌아 같이 봤다. 양가 부모님의 결혼식부터 신랑 신부가 태어나 자란 과정의 사진들이 나왔다.
딸은 결혼식 전 집에 내려와 앨범을 찾고 사진 몇 장을 가지고 가며 비밀이라고 했다.
상기된 표정의 33년 전 앳된 신랑 신부가 나왔다. 이 사진을 얼마 만에 보는지. 우리에게도 젊은 날 리즈 시절이 있었다. 하객들도 웃음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결혼식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만난 지 3개월 만에 서로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결혼했다. 정해진 틀 안에서 형식에 맞춰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결혼식 날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봤다고 했다. 하객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식장에 가면 축의금 봉투를 내고 혼주들과 눈 맞춤을 한 후 바로 식당으로 가 식사를 했다. 하지만 오늘은 하객들도 결혼식 내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웃고, 손뼉 치며 끝까지 즐겼다.
MZ 딸과 사위가 주도적으로 이끈 결혼식은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딸이 말했다.
“아빠,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잖아. 그런데 신부 예쁘다는 말보다 아빠 멋있다는 말만 한다니까? 친구들, 직장 동료들, 심지어 나를 도와주신 이모님까지 감동해서 울었대. 직장 동료는 딸이 세 살인데 오늘부터 노래 연습을 시작하겠대. 노래를 좀 살살 불러야지 왜 그렇게 잘 불렀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좀 살살하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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