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가 최고예요
아침 7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호텔 야외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간단한 화장을 한다. 로션과 선크림을 바르고 립스틱을 바르면 내 화장은 끝이다.
지금쯤 방콕의 살라야 캠퍼스에서는 30여 명의 외국인 학생들과 스태프들이 마히돌대학을 막 출발했을 것이다. 오늘은 마히돌 대학교 여섯 개 캠퍼스 중 마지막 ‘암낫짜른 캠퍼스’ (Amnat Charone Cultural Trip)로 2박 3일 문화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열한 시간 태국 동북부 이산 지방으로 올 것이다.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면 꼬박 열 시간 버스를 타야 한다.
처음 여행 일정표를 보고 나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난번 나콘사완 문화여행 때 여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면서 멀미 때문에 고생했었다. 학교 국제교류센터에 알아보았다.
“저는 열한 시간 버스를 타기 힘들어요. 따로 비행기로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우리는 어제 그들보다 하루 먼저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우본라차타니 공항에 도착했고, 마히돌 팀과 함께 묵을 숙소 ‘더 씨 호텔 (The C hotel)’에서 하룻밤을 먼저 숙박했다.
이 호텔의 하룻밤 숙박 요금은 700밧(28,000원)이다. 물론 고급 호텔은 아니다. 오래되고 낡았다. 하지만 청소 상태도 깨끗하고 침대 시트도 깨끗했다. 체크인할 때 영어로 소통이 되지 않아 조금 불편했지만 카운터 옆에 앉아있던 벨맨이 벌떡 일어나 우리 가방을 들고 앞장서 안내해 주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가방을 들고 계단으로 날라 주었다. 팁으로 60밧(2,400원)을 주었는데 받지 않겠다고 했다. 보통 가방 하나에 20밧 (800원)을 주는데 우리는 가방 하나였다. 주겠다, 받지 않겠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고서야 수줍게 받았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가방 들어주는 분을 만났지만 팁을 사양하는 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침에 청소하시는 분을 만나 아침 인사를 했다.
“우리 방을 청소하실 필요 없어요. 이틀 밤 더 잘 거예요.”
아주머니는 알겠다고 웃으며 생수와 수건을 주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보니 복도에 바구니가 있었고 그 속에는 생수와 깨끗한 수건을 더 많이 가져다 놓았다. 말 없는 친절이 느껴졌다.
로컬시장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내가 좋아하는 찐 옥수수 4개 25밧(1,000원), 껍질째 찐 땅콩 한 봉지 20밧 (800원), 몽키 바나나 한 손에 20밧이다. 계산하는데 아주머니가 묻는다.
“한국 사람이죠? 저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아주 좋아해요. 또 축구선수 김보용 팬입니다. 정말 잘해요. 최고예요.”
'이게 무슨 일이지? 김보용이라고?' 우리는 모르는 선수였다. 호텔로 돌아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태국 2부 리그 치앙마이 FC에서 뛰고 있는 선수란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북동부 이산 지방 시골에서 또 한 명의 한국 찐 팬을 만났다.
암낫짜른 캠퍼스에 근무하는 분이 차를 가지고 호텔 로비로 왔다. 드디어 열한 시간 대장정 끝에 문화여행 팀이 ‘왓 프라몽콘 밍투엥’ 사찰에 도착했단다. 우리도 서둘러 가서 합류했다.
암낫짜른 캠퍼스 부총장님과 같이 이산 지방의 맛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분은 한국에서 온 우리를 웃음 가득한 얼굴로 환영해 주었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를 아주 좋아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특히 영화배우 김수현의 열렬한 팬이라며 여러 가지 작품을 말했다. 그녀가 말한 것 중 내가 아는 건 ‘해를 품은 달’과 ‘별에서 온 그대’ 뿐이었다. 그녀는 김새론과의 일은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심지어 ‘폭싹 속았수다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도 눈물을 흘리며 아주 감동적으로 봤다고 했다. 또 다른 교수도 ‘폭싹 속았수다’는 물론 ‘거침없이 하이킥’과 “겨울 연가”를 좋아한다고 했다. 정말 미안하게도 우리는 아직 ‘폭싹 속았수다’를 못 봤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라인 단체톡방이 들썩들썩했다. 젊은 친구들이 첫날밤을 그냥 보낼 리 없었다.
'얘들아, 우리는 오늘 밤 우노 게임을 할 거야. 원하는 사람 있으면 313호실로 와.'
'그래, 좋아 간다. 문 열어 놓아라.'
계속 울려대는 라인 단체톡방을 흐뭇한 마음으로 꺼놓았다. 남편은 책을 보고 나는 오늘 하루의 일정과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썼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암낫짜른 캠퍼스로 갔다. 부총장은 농사 외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이 지역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말했다. 학교 소개를 듣고,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고, 중국 글자 쓰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한자를 써 본 세대이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붓과 먹, 한지를 접해 본 사람들은 신기한가 보다.
이 지역에서 유일한 성공 사례라며 옷감 만드는 공장으로 안내했다. 공장이라기보다는 가내수공업 정도의 규모였다. 염색부터 옷감을 짜고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한단다. TV에서나 보았던 물레로 실을 잣고 옷감 짜는 걸 직접 보았다.
제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가자 학생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학생들은 스카프, 가방, 옷 등을 샀다. 값이 비싸지 않았다.
커피숍에 들렀다. 우리는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미얀마, 인도네시아에서 온 여학생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자마자 서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 얘기를 했다. 그때 인도네시아에서 온 학생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루미는 피부가 아주 좋아 보여요. 한국 화장품이 정말 좋은가요?”
갑자기 묻는 말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잠깐 망설이다 대답했다.
“맞아요. 한국 화장품의 기술은 세계적이에요. 특히 아시아 여성들에게는 더욱 잘 맞을 거예요.”
모두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브랜드가 가장 좋은가요?”
“저는 설화수를 쓰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선호하는 브랜드가 없다. 딸들이 사주는 화장품을 대충 쓰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학생이 또 물었다.
“마스크 팩도 한국 것이 제일 좋지요?”
“물론이죠. 다른 나라 건 안 써봐서 잘 몰라요. 마스크 팩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해요.”
선의의 하얀 거짓말을 했다. 사실 지난 설날 딸이 마스크 팩을 사다 주면서 한 말이었다.
“엄마,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랑 꼭 같이 피부관리 해야 돼.”
하지만 마스크 팩은 그때 그대로 남아있다. 내 게으름 때문이다.
역시 여학생들의 피부미용에 대한 관심은 세계 어디를 가나 뜨겁다. 미국에 있을 때도 많은 외국 친구들이 한국 화장품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심지어 터키 친구는 내가 H마트에 장 보러 갈 때 나를 따라와 한국화장품을 사기도 했었다. 내 눈에는 피부색이 조금 검어도 건강하고 탱탱해서 모두 다 예뻐 보이기만 했다.
한쪽에서는 남학생들이 팔씨름을 했다. 인도에서 온 카더가 자꾸 힘이 세다고 자랑한 모양이다. 암낫짜른 캠퍼스 아팃이 도전을 했다. 모두들 열띤 응원을 했지만 결과는 인도 카더의 승리였다. 의기양양 해진 카더가 물었다.
“한국에서 오셨죠?"
"어떻게 알았어요?"
"저희 가족은 한국 드라마를 아주 좋아해요. 아까 두 분이 버스 안에서 하는 한국말을 들었어요. 저는 ‘1988’과 ‘주몽’을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팔씨름에는 관심이 없던 미얀마에서 온 카닝은 커피숍 주변을 혼자 돌아다니며 빈 커피 컵에 오디를 따서 보여주었다. 오디(mulberry)는 우리나라에도 있다며 몇 개를 집어 먹었다.
잠시 후, 또 어디서 따왔는지 루비 애플을 주머니 가득 따서 먹으라고 준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여러 나라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모두 학생들이 신청한 곡들이다. 인도 노래가 한참 나오더니 일본, 중국 노래가 차례로 나온다. 이 곡들은 우리도 알고 있는 곡들이다. 잠시 후 누군가의 주문으로 ‘아파트 아파트’가 나온다. 또 잠시후면 철 지난 ‘강남스타일’이 나올 수도 있다. 한류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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