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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된장국을 한 솥 끓여놓고 떠났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by 루미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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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새벽 4시, 그는 그랩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떠났다.


그와 그녀는 2024년 9월 1일 태국으로 1년 동안 안식년을 왔다. 그들은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콘도에 살게 되었다. 콘도에는 대학 교직원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살았다.


그는 정년퇴임이 1년 6개월 남았다. 한국에서는 아주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느긋하게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이 기회에 은퇴 후의 삶을 미리 연습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매일 아침 6시에 1시간 동안 캠퍼스를 산책했다. 이른 아침, 만나는 모든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먼저 인사했다.

“사와디 카(캅) 안녕하세요?”


그는 산책 후 샤워를 하고 빨랫감들을 빨아서 나왔다.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는 말했다.

“샤워하는 김에 조물조물 빠는 거니까 괜찮아. 어렵지 않아.”


집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세탁실로 내려가 동전을 넣고 세탁기를 돌려야 했다. 집에는 부엌도 없었다. 간단한 임시 부엌을 만들었지만, 불편한 부엌에서 그녀는 요리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엔 빵과 과일, 찐 달걀이나 오트밀을 먹었다. 점심은 학교 식당에서 먹었고, 저녁 한 끼는 해 먹었다. 된장국, 미역국, 김치찌개, 삼겹살, 닭볶음 등 주로 단품 요리였다.


그녀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가 더 자주 요리하기 시작했다. 맛있었다. 간을 딱 맞추는 게 맛의 비결인 것 같았다. 가끔 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그가 퇴근하면서 사 가지고 왔다.


그는 저녁을 먹으면 바로 잤다. 정말 신기하게 누우면 5분도 안 되어 잠이 들었다.

그는 빨리 불 끄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른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그는 아침형이다.


그녀는 밤 12시까지 책을 읽었다. 밤이면 흐르는 시간이 더 아깝고 글이 더 잘 들어왔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그녀는 올빼미형이다.


그도 그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어서는 없던 코골이를 시작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에게 묻곤 했다.

“자기야 나 어젯밤에 코 골았어?”

“조금. 근데 괜찮아.”

하지만 그녀가 괜찮지 않았다. 신경 쓰였다. 그녀는 밤에 자다가 한 번은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그때마다 혹시 침대가 흔들려 그가 깰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들은 각방을 써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 집에는 방과 화장실이 두 개씩 있었다.

각방을 쓰기 시작한 첫날밤, 그녀는 잠을 설쳤다. 자다가 깼는데 그가 옆에 없어 깜짝 놀랐다.

허전해서 몇 번을 뒤척이며 깼다.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다.

8개월이 지난 지금은 깨지 않고 푹 잔다.


그들이 각방을 쓴다고 말했을 때 주위 분들은 깜짝 놀랐다.

“부부가 왜 따로 자? 나이 들면 자다가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당장 합쳐!”

그녀의 친한 친구도 반대했다.

“부부는 같이 자야 돼. 그래야 부부 사이도 돈독해져.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거야.

부부싸움 한 후에 화해의 시간이 더 길어진다니까. 안 돼. 합쳐.”


지난 1월 말, 큰딸 부부가 집에 왔을 때 그들이 각방 쓰는 것을 보고 딸이 놀라 물었다.

“엄마, 아빠 방 따로 써? 왜? 싸웠어?”


어떤 게 맞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잠자리가 편해진 건 사실이다.

그에게 물어보고 서로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는 며칠 전부터 큰 캐리어를 거실에 꺼내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젯밤 커다란 냄비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냈다. 그 육수에 단호박, 양파, 버섯, 두부를 넣고 된장을 풀었다. 그녀는 조용한 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기야, 지금 뭐 해요?”

“응. 당신은 내가 끓인 된장국 좋아하잖아. 나 없을 때 먹으라고.”


그가 떠난 다음 날 아침 그녀가 산책을 다녀왔을 때, 그에게 보이스톡이 왔다.

그도 산책을 다녀오고,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중이라 했다. 한국은 방콕보다 두 시간 빠르다.

“아침에 산책하는데 오랜만이라며 왜 혼자냐고 당신 안부를 묻는 분들이 많네.”

방콕에 오기 전, 그들은 매일 아침 6시에 아파트 주변 산책길을 걸었었다. 그때 만났던 분들이 그녀의 안부를 물었나 보다.


“어머 그래요? 여기서도 왜 나 혼자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녀가 걸을 때 평소 인사 나누던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하지 않는 말과 손짓으로 물어왔다.

그녀가 번역 앱을 켜고 그들의 입에 대주자 말했다.

“남편은 왜 없어요? 어디 갔어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분들에게 대답해 주느라 산책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방콕에 오기 전부터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위해 그가 한국으로 떠난 지 2주일이 지났다.

1주일 후면 그가 돌아온다.


그녀는 벌써 그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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