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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의 아지트

아리아나가 놀러 오래요

by 루미상지
아리아나 테라스


민화 수업에 가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버스 타고, 전철 두 번 갈아타고 가야 해 마음이 바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던 순간, 후다닥 달려오던 누군가가 발로 잽싸게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불쑥 들어온 그녀는 활짝 웃으며 미안하다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저는 아리아나예요. 그런데 여기 사세요?”

“네, 두 달 전에 한국에서 왔어요. 저는 루미예요.”

“오, 한국 좋아요. 반갑습니다.”


우리는 같은 층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1층까지 내려오는 짧은 동안 쉴 새 없이 말했다.

그리스에서 왔고, 태국에 온 지 10년 되었고, 대학교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단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1층에 도착했지만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그녀는 더 빠르게 말했다.

“엄마가 일주일 후에 그리스에서 오실 거예요. 그때 집에서 환영파티를 할 건데 오실 수 있죠?”

초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답변도 듣지 않고 바쁘게 사라졌다.

그 와중에 우리는 서로 집 호수는 확인했다. 나도 바삐 버스를 타러 갔다.


며칠 후,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밖에는 아리아나가 서 있었다.

“엄마가 지금 비행기로 오고 있어요. 내일 12시 파티에 오실 거죠?”

“네 갈게요.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다음 날 12시, 아리아나 집에 갔다.

그리스에서 방콕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신 어머니는 다리가 붓고 혈액순환이 안돼 고생했단다. 아리아나는 오전에 마사지사를 집으로 불러 어머니께 마사지를 받도록 했단다.

어머니는 83세이고 ‘안나’라고 했다. 안나 할머니는 아리아나만큼 씩씩했다.


잠시 후, 루이와 링링이 도착했다. 안나는 그리스에서 가져온 간식을 꺼냈다. 루이는 라따뚜이를, 링링은 만두를 들고 왔다. 나는 불고기를 만들어왔다.


우리 집은 남향인데 아리아나 집은 북향이었다. 일 년 내내 더운 방콕에서는 북향집이 최고다.

나는 한국에서처럼 습관적으로 남향집을 선택했는데 그건 큰 실수였다. 우리 집은 텅 비었는데 아리아나 집은 많은 살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루미, 그릇과 살림들은 모두 친구들이 떠나면서 주고 간 것들이에요. 내가 여기 10년 살았잖아요.”


아리아나는 발코니를 작은 정원으로 꾸며 놓았다. 화분 속에 심어진 식물들이 숲처럼 우거져있었다. 새 둥지도 여러 개 보였다. 식물을 위해 설치한 스프링클러는 세 시간마다 한 번씩 자동으로 물이 분사된단다.

“아리아나, 이 새 둥지들 정말 새가 살았던 거야?”

“그럼요. 얼마 전에도 아기 새 네 마리가 알에서 깨어 날아갔는걸요?”

새들이 발코니에 찾아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 날아가는 것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그녀도 나처럼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거실에, 싱크대와 개수대는 테라스에 설치해 놓고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리스, 프랑스, 중국, 한국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킴이 왔다. 킴을 처음 본 순간 깜짝 놀라 물었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많은 분 들이 한국, 중국, 일본에서 왔냐고 묻곤 해요.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저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왔어요.”

“러시아 바이칼 호수는 티브이에서 봤는데 추운 곳이죠?”

“물론이죠. 몹시 추워요.”

그녀의 영어는 유창했다. 태국에 오기 전, 미국에서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안나가 내놓은 그리스 디저트는 너무 달았지만 안나는 단 음식이 좋다 했다. 루이의 채소 스튜 라따뚜이는 정말 맛있었다. 라따뚜이는 가지, 호박, 피망, 토마토 등 채소에 허브와 올리브 오일을 넣고 뭉근히 끓인 채소 수프이다.



자기소개를 했다. 먼저 아리아나가 말했다.

“오늘 엄마 환영회에 와 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그리스 사람인데 미국 보스턴 MIT에서 석사를 했어요. 그러다 큰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아주 위험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태국 의술을 접하면서 조금씩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연구원으로 일하며 틈틈이 영어 과외를 하고 있어요.”


루이가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프랑스에서 왔어요. 작곡과 음악을 해요.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아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어요. 한국은 서울과 부산,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세 번 다녀왔어요. 여기에서는 악기와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링링이 말했다.

“저는 중국에서 왔어요. 태국을 여행하다 우연히 아리아나를 만났어요, 중국 쓰촨 성에 여행 오시면 연락 주세요. 저는 2주 후에 중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킴이 말했다.

“러시아에서 왔어요. 바이칼 호수는 춥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쾌적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와요.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유목 생활을 했어요. 태국에서는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내 차례가 되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안식년 온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왔어요. 루미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국 드라마와 K-pop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오징어게임(Squid game), 여신 강림(True Beauty, Goddess Advent), 눈물의 여왕(Queen of Tears), 선재 업고 튀어(Let's carry Sunjae and run),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등 나도 못 봤던 드라마 이름들이 줄줄이 나왔다. 뒤이어 바로 한류 뷰티로 화제가 넘어갔다.

“루미는 피부관리를 어떻게 해요? 어떤 브랜드의 화장품을 쓰세요?”

“한국 화장품은 꼭 유명 브랜드가 아니어도 중소기업 제품들도 싸고 품질이 좋아요. 저는 아무거나 써요."

한국 음식 이야기도 했다. 김치, 불고기, 떡볶이, 김밥은 이미 알고 있고 먹어 봤다고 했다. 내가 만들어 온 불고기를 먹으며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해주었다. 그 뒤로도 K-pop, ‘BTS’, '세븐틴', ‘강남스타일’과, '아파트'로 한류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루이와 아리아나가 수업할 시간이 되어 모임은 오후 다섯 시쯤 끝났다. 가려고 일어서는 친구들을 보며 아리아나는 아쉬움이 남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방에서 인터넷으로 수업하고 있는 동안 가지 말고 거실에서 대화하고 있어요.”

그새 안나는 계속 음식을 내놓으며 더 먹으라 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킴도 가야 한다 했다. 킴과 루이가 떠나고 아리아나도 수업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아리아나 집 벽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있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안나는 링링과 나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책상 서랍과 상자에서 많은 그림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녀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열심히 그려서 전시회를 하는 게 꿈이라 했다. 그리스에 있는 93세 친구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미 전시회도 몇 번 했단다. 우리가 멋있다고 감탄하자 안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만족해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온 아리아나가 테라스 정원에서 기르던 에그플랜트 화분을 주었다.

“테라스에 식물을 기르면 더위가 좀 시원해질 거예요.”

아리아나 덕분에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즐거운 수다 시간을 가졌다. 외로운 이방인들은 크리스마스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크리스마스 때는 떡볶이를 만들어갈까? 김밥을 만들어갈까?


아리아나가 준 에그플랜트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부엌이 없는 집이 궁금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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