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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May 31. 2024

집밥사진 변태의 고백

위대하신 집밥요리사 찬양글입니다.

  나는 집밥을 해 먹는 사람을 경외한다. 어쩌면 경배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밥을 얻어먹고 싶은 건 또 아니다(물론 주신다면 기쁘게 먹겠지만). 밥 하는 과정이나 부엌 전체에 퍼지는 음식 냄새, 짧게 깎은 손톱과 뭉툭한 손가락으로 요리하는 동작, 분주하거나 느긋한 발걸음, 먹을 행위만을 남겨둔 완성된 요리(물론 설거지도)와 신경 쓴 플레이팅(혹은 급해서 마구잡이로 그릇에 담기)으로 차려내면서 사진 한컷 남기는 그런 모습 같은 걸 상상하는 게 좋을 뿐이다.


 숙련된 집밥 요리사는 눈감고도 계란말이를 하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깍두기를 담근다. 다른 행동을 수만 가지를 하면서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볶음이 타지 않게, 찌개가 졸아들지 않게 감시하고 정확한 타이밍에 끼어들어 하루 두세 끼를 뚝딱 차려내기도 한다.


 집밥을 만드는 데 쓰이는 조리도구도 좋다. 지나간 세월 동안 국을 끓이고 라면을 끓이고 조림했을 편수 냄비 같은 건 아마 30년 동안 소스의 불을 안 껐다는 전설로 내려오는 무슨 장인의 장어 소스 냄비처럼 맛있는 기가 모여있을 것 같다. 그 냄비에 어슷하게 썬 고추와 양파, 툭툭 무심하게 썰어진 두부가 고춧가루와 함께 매콤하게 졸여져 있고 그 옆의 화구에는 동그랗게 썰어서 계란 물을 입힌 전으로 만든 호박전이 프라이팬에 가지런히 놓여있겠지. 집밥 요리사와 함께 세월을 보낸 국자와 이제는 맞춤으로 친해진 칼과 도마, 누군가에게 받았는지 모를 그릇이나 다회용 용기들이 아무렇게나 찬장에 쌓여있는 것도 왠지 멋있다.


 이 집밥의 고수들은 은둔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분들을 찾기 어려운 가장 큰 원인은 본인이 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냥 늘 먹는 거 하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집밥 요리라는 건 그들에게 그냥 숨 쉬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요즘에 내가 본 고수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가끔 시간이 맞는 연주자들끼리 벙개로 잼을 하기도 하는 단톡방이 있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코드 변태(코드에 텐션이 많이 붙거나 대리코드의 대리 등 화성학적으로 복잡할수록 흥분도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을 희화하여 말하는 것)’가 적정 비율로 분포되어 있다.


“ |C7altB7#11|Bbmaj7 |에서 솔로 어떻게 하시나요?” 혹은

“ 친구가 내 베이스를 보고 메가 우쿨렐레냐라며 놀립니다.”라는 대화가 오가다가 맥락 없는 음식사진이 하나 올라온다.


 본인이 지금 먹고 있는 집밥 사진인데 때로는 고슬고슬한 밥이 빨갛게 물들고 작게 썰어진 김치가 사이사이에 잘 섞여 있으며 계란을 서니사이드로 이불처럼 살포시 덮어 마무리한 김치볶음밥 사진일 때도 있고, 양파를 투명하게 볶고 어묵을, 채를 썬 뒤 달콤하게 볶아 낸 어묵볶음과 투명한 윤기가 흐르는 흰쌀밥, 들기름으로 구운 김, 미역 줄기를 마늘만 넣고 볶은 미역줄기볶음을 반찬으로 한 백반 사진을 올려주기도 한다. 내 뇌에 도파민이 돈다. 인정한다. 나는 ‘집밥 사진 변태’인 것이다. 이 집밥 장인 베이스님이 제발 주기적으로 연재해 줬으면 하는데 기분 내킬 때만 올려주셔서 상당히 아쉽다.


조금 더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헉헉


내 갈급한 부르짖음이 통했는지 시금치를 부드럽게 데쳐 한뿌리씩 정갈하게 감아 채반에 둔 사진, 섬초를 된장에 넣고 팔팔 끓인 후 홍고추를 살짝 얹은 된장국 사진, 오이지를 무리 없이 꽉 짠 뒤 갖은양념으로 꼬들꼬들하게 무쳐낸 오이지무침, 검은깨를 뿌려 마무리한 쥐포 채 볶음 사진 같은 걸 보내왔다.

이 집밥 요리사의 요리를 한 번도 맛은 본 적이 없지만 나에게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진정성과 개연성이 넘치는 음식 좀 보라지! (뇌 속에 도파민 완전히 충전되는 소리)


‘하루 세 번 집밥 사진 딜리버리서비스’를 누군가 론칭한다면 매우 구독할 의향이 있다. 물론 다양한 플랫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음식 사진을 올리는 걸 알고 있다. 모두 각자의 철학을 버무려 한 그릇 담아낼 줄 아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도. 하지만 이 ‘집밥 사진 변태’의 마음 한 자락을 훔치고 싶다면 적어도 매일 하루 세 번 집밥 사진을 올려야 할걸. 번외로 자유분방하게 어지럽혀진 부엌 사진도 가끔 올려주고 맛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피사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간단히 재료를 소개해 준다면……

흥, 그렇다고 내가 조 좋아할 줄 알고? 하면서 라이킷을 누르거나 조용히 마음속에서 쌍 따봉밖에 더 날리겠어? 흥흥(저도 몰랐는데 집밥 변태의 정체성은 츤데레였군요)


 무심한 표정과 손놀림으로 지금 점심을 짓고 계시는 전 세계 무림의 집밥 고수님들께

소인 인사 올립니다.


맛점(맛있는 점심) 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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