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뮤하뮤 May 24. 2024

가리는 음식 있으세요?

대체 뭘 먹고 사냐고요?

"하뮤하뮤님은 가리는 음식 있으세요?"

"네. 소, 닭, 돼지 안 먹습니다.“

"아, 그럼 비건이세요? “

“아니요. 비건은 아닙니다."

"그럼 해산물은 좋아하세요?”

“해산물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아서요."

이쯤 되면 그냥 너랑 같이 밥 먹고 싶지 않다는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살짝 당황한 상대방은 그럼 대체 뭘 먹고 사세요라고 말한다.


뭘 먹고 사냐고요


 일단 입자가 우툴두툴한 곡물빵과 감자, 기름과 설탕이 많이 들어간 갖가지 향긋한 빵, 살짝 데쳐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린 나물, 현미밥, 두부, 바삭한 김, 굵은 고춧가루로 버무린 배추 겉절이와 칼국수, 가락국수, 잔치국수, 팟타이, 파스타, 라면을 포함하는 거의 모든 면류, 들깨와 버섯, 떡볶이, 김밥등의 분식류가 주식이다.


 두부와 숙주, 배추를 꼭 짜서 만든 물만두에 고추기름과 식초를 찍어먹는 것을 좋아한다. 청양고추를 칼칼하게 썰어 넣은 바지락 칼국수, 간장 양념과 파를 쫑쫑 썰은 꼬막 비빔밥, 꼬들꼬들 태국식 젓갈이 감칠맛 나는 팟타이 같은 건  매일 먹을 수도 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린 시절 밥상에서 고기 한 번을 먹이려면 진땀깨나 뺐다고 한다.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에 파와 소금을 쳐 흰쌀밥을 말아서 아삭아삭한 김치와 먹으면 맛있을 법도 한데 사골이라는 뜻이 뼈와 고기로 우려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곰탕 쪽은 눈도 돌리지 않았다. 아니 모르고 먹었을 때도 왠지 배가 울렁울렁거리고 찌르르르한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바글바글 끓는 김치찌개에 숭덩숭덩 큼지막하게 썰어진 돼지고기가 있다? 그날은 밥에 김만 먹는 날이다. 부모님은 고기를 잘게 썰어 볶음밥, 미역국, 튀김등으로 여러 배리에이션을 주어봤지만 그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도리질을 치며 애들은 싫어할법한 나물반찬만 집어 먹었다. 멸치도 멸치눈알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싫었고 생선구이가 대가리째 누워있으면 그것도 먹기 어려웠다. 젓가락으로 살만 발라 수저에 올려주면 생선살은 겨우 조금 받아먹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엄마는 그게 타고난 입맛이라며 포기했고 그렇게 가리는 게 많은 편식러였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내 키와 덩치는 대한민국 여자의 평균보다는 크게 자랐다.


 2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사람들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에 메뉴 선정이 그렇게 어려웠다. 그냥 무난하게 오늘의 백반 메뉴를 선택해도 항상 고기가 어딘가에 포함되어 있다. 거의 모든 밥상에는 ‘대놓고 고기(제육볶음, 불고기 등)’가 있거나 ‘숨겨진(순두부의 간고기라던가 고기 육수 등) 고기가’ 있기 때문이다.

고기만 쏙쏙 골라 안 먹는 내 모습을 알아챈 누군가가 질문한다.


왜 고기는 안 드세요?

- 아니 제가 한약을 먹어서요.

- 아니 제가 다이어트 중이라.

- 아니, 많이 먹었어요.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 어쩐지 유별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갖가지 변명으로 돌려가며 막았다. 가장 난감할 때는 고기를 구워 먹는 회식자리이다. 개별 환풍구가 위엄 있게 고기 불판 위로 내려와 있고 불판 위에는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가 놓여있다.

인간은 고기를 함께 구워 먹을 때 신이 나고 연대감이 우러나오는 것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뇌피셜이니 반박 시 인정). 그러니 고기를 구워 먹는 것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나에게 인류애가 생길 턱이 있을까. 하지만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분주히 젓가락을 놀리며 먹고 있다는 확신을 주며 추임새를 넣는다.


- 오, 여기 (물) 맛집이네요.

- 와, (김치가) 신선하네요.

나는 왼손에 식감이 부드러운 상추와 향긋한 깻잎을 깔고 오른손으로 양파절임을 집어 얹고 고추와 마늘에 쌈장을 찍어 쌈을 만들어 한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나름대로 회식을 즐긴다.


 찾아보니 덩어리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을 우리나라에서는 ‘비덩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더라. 상황에 따라 해산물이나 동물성재료를 먹는 사람을 플렉시테리안이라고 한다. 이름 붙이는 거야 어쨌든 좋아하는 음식의 스펙트럼이 채식하는 사람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채식을 하는 다양한 이유를 공부하기도 했다.

평소 외식을 더 즐기긴 하지만 집밥을 해먹을 때는 해산물 생물도 못 만져, 생선도 구울줄 몰라서 자연스럽게 밀과 쌀, 콩류와 버섯 같은 것만 차려놓고 먹는 것이 습관이 됐다. 홍어나 동물의 특수부위, 삭힌 오리알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 내가 전혀 모르던 신세계가 펼쳐질까 가끔 궁금하기는 하다.


 이제 억지로 사회생활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고 친구들은 내 식성을 이미 알고 있고,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못 먹는 음식을 줄줄이 나열할 정도의 까탈스러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고민이 많다.

먹자골목의 많은 지분은 여전히 ‘대놓고 고기’이거나 ‘숨겨진 고기’가 차지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흐음, 우리가 만나면 뭘 먹어야 하지


이전 02화 우리가 김밥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