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는 끝났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유일한 유희거리는 때가 낀 손톱을 보면서 손톱 주변의 거스러미를 떼는 것이다. 지저분한 버스 뒷칸에서 뒹굴던 내 배낭엔 누렇게 먼지가 냄새가 뱄다. 사람의 오줌냄새와 지린내가 진동하는 침대버스에서 고정시킬 무언가도 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불쌍한 내 몸뚱이
디우로 가는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던가,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상이 주를 이루었지만, 2n년짜리 내 뇌는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시간을 죽이려 최선을 다했다.
발단은 이러했다. 내가 머물던 호수 도시 우다이푸르는 아름답지만 추웠다. 나는 델리로 들어와서 뭄바이로 아웃하는 비행기표를 가지고 있고 그 사이에 일정은 내 맘대로 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인도 지도를 펴놓고 음, 따뜻한 곳, 음, 그래. 바다. 해변이 있는 곳으로 가자. 하며 손가락으로 어떤 장소에 검지손가락을 찍었다. 당첨된 곳은 디우라는 곳이었다. 론니플래닛에 따르면 디우는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역사가 있고, 요새와 성당이 있으며 해산물이 맛있고 주류면세지역이란다. 해산물과 주류면세지역이라는 키워드에 더욱 구미가 당겼음은 물론이다.
시점이 다시 우다이푸르로 돌아간다. 낯선 곳에서 오늘의 끼니를 해결하고 라씨(요구르트 음료)를 사 먹는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여행자의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신고 온 컨버스 운동화과 거의 달았다. 물론 신고올 때도 버릴 각오를 하고 신고 온 것이지만.
그런데 운동화보다는 시타르(인도의 현악기)에 자꾸 눈이 가서 시타르를 파는 악기점을 둘러보던 중이다. 악기점을 돌다 보니 오늘따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고양이가 보고 싶어졌다. (내가 노래를 부르거나 리코더라도 꺼내 불면 눈이 커다래져서 달려오는 '음잘알' 고양이었기 때문이다) '쌈바야 뭐 해? 여기는 고양이가 안 보여. 개랑 소랑 염소랑 당나귀가 천지야.' 마음속으로 내 고양이에게 영상편지를 쓰다 보니 제법 흐뭇해졌는데 불현듯 싸한 느낌이 나서 낮에 사둔 버스표를 봤다. 엥? 눈을 비비고 다시 날짜를 확인했다. 분명히 내일로 예약했는데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출발일인 것이다. 우다이푸르에서 시간과 날짜 가는 걸 몰랐던 내가 문제인가, 좋은 얼굴로 고개 저으며 '노 프라블럼'을 백번 외치던 예약창구남자가 착각한 것일까, 알 수 없다. 일단 출발할 수밖에
내 딴에는 인생 최고의 속도로(급하게 움직여서 몸에 담이 올 정도로) 짐을 배낭에 쑤셔 박고 릭샤를 잡아타고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출발 시간을 맞췄다. 작은 자판을 연결한 줄을 목에 걸고 사모사(감자, 채소, 카레를 넣은 튀김)나 푸리(빵)를 팔고 있는 사람에게 간식도 샀겠다 슬슬 조급하던 마음도 안정되어 갔다. 버스는 침대칸이었는데 기차보다 아늑하다고 생각했다(처음에는), 누워서 밤하늘에 가득 찬 별을 볼 수 있으니(게다가 한국에서 보는 별자리와는 다를 테지) 낭만적이다 생각했다. 이것을 견디면 나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갈 거니까. 몇 번의 휴게소를 들르고 대여섯 시간 정도를 간 것 같다.
겨우 잠에 들었다 싶었다. 버스가 정차하고 몇 명 사람들이 내릴 채비를 한다. 눈을 꿈벅이며 다시 잠을 청하는데 승무원이 나를 부르더니 '트랜스퍼' 해야 한다며 자기를 따라오란다. 냄새나는 배낭을 안고 쭈뼛쭈뼛 따라갔다. 버스정류장은 어둡다. 인적도 별로 없다. 나는 어디로 끌려가는 걸까. 버스 여러대를 지나 어떤 버스 앞에 섰다. 아까 탔던 버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예약창구에서는 분명히 <퍼스트 클래스 침대버스>라고 했는데 좁디좁은 침상에 침상과 외부를 가려주는 천은 더럽고 헤어져있고 냄새가 났다. 이게...... 퍼스트 클래스?
말도 안 통하고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으니 일단 탔다. 조금만 가면 되겠지 했다(하지만 그 후로 적어도 9시간은 간 것 같다). 추울 때는 모든 감각이 추운 곳에만 쏠리고, 좁다고 느껴질 때는 온통 좁은 것에만 감각이 쏠린다. 사람이 얼마나 얄팍한 존재인지를 또 생각하며 시간이 지나는 것을 기다렸다.
길은 울퉁불퉁 덜컹거려서 시종일관 멀미가 났다. 억지로 잠을 청해서 최선을 다해 시간을 삭제하는 중이었다. 붉은 사리를 입고 깡마른 여자가 불쑥 냄새나는 커튼을 열고 엉덩이를 들이민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오줌 냄새나는 커튼이 달려있는 데다가 이중예약이라니, 아무리 인도라고 해도 이럴 수가 있나?
내쪽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을 보고 어찌 저찌 승무원(버스에도 승무원이 있었다)이 여자를 다른 곳으로 앉게 했다. 나는 도착할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예약창구의 턱수염이 덥수룩하던 노프러브럼맨을 떠올리며 저주했다. 그리고 나를.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듯 디우는 정말 좋았다. 디우의 요새인 포트디우에서 본 붉은 석양은 내가 꼽은 베스트 석양 순위권에 들 정도로 인상 깊었다. 게다가 음식 맛이 좋았고 편식러인 나에게도 먹을만한 음식종류가 많았다. 포르투갈 요리와 인도 전통요리,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베이커리는 오줌 내 나는 커튼에 진력이 난 여행자를 달래주었다. 나는 디우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들과 일정을 같이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찌감치 디우에 와서 진을 치고 있던 그들의 가이드를 따라 해산물 요리가 맛있는 식당, 토마토계란 볶음과 초우면이 맛있는 중국집을 식사 때마다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들의 스쿠터를 얻어 타고 길치로서는 절대로 당도할 수 없는 로컬시장을 누볐으며, 맥주와 와인을 사서 포트로 가서 석양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특히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눈에 담기 아까운 풍경이 펼쳐졌다.
디우의 매력은 무엇보다 다채로운 종교에서 비롯한 다문화를 들 수 있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시바, 가네샤 등 대표적인 신부터 다양한 신을 모시는 사원을 보게 된다. 사원의 성상을 둘러보고 이 사원은 어느 신을 모시는지 가이드북을 보면서 구별해 보는 것도 나에게는 좋은 소일거리였다. 인도에서는 대체로 힌두와 무슬림을 믿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는데, 디우같이 작은 도시에 가톨릭, 힌두교, 무슬림, 자인교,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이 공존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실제로 도시 곳곳에 인도에서는 보기 힘든 성당과 십자가상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디우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인도에 오게 된 원래 목적인 고아로 이동했다. 나는 예전에 '고아트랜스'라는 일렉트로니카 장르로 먼저 고아라는 이름을 접하고 언젠가는 고아라는 곳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아의 해변은 해안가를 따라 줄줄이 있으며 60,70년대에는 히피들의 성지라고 했다. 모래사장에서 스피커와 디제이 부스를 놓고 트랜스음악을 들으며 밤새 춤을 추다 보면 정신적인 고양상태에 빠진다는 글을 어디서 봤다. 하지만 내가 도착한 고아의 해변은 한적하고 조용하고 관광을 온 가족들이 조용히 산책을 하는 곳이었다.
파티는 어디에? 근-본 트랜스 음악은 어디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모래사장에 배낭을 베고 누웠다.
10분 정도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누군가 나를 불러댄다. 눈을 떠보니 대여섯 명 되는 여학생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눈에 장난기가 가득한 소녀들의 조사가 시작된다. 인도에 왜 왔냐, 몇 살이냐, 결혼했냐, 무슨 일을 하냐, 무슨 공부를 하냐, 취미가 뭐냐 등등. 나는 홀로 세계를 누비는 싱글레이디에다가 예의도 바른 개념 있는 여행자를 연기하며 못하는 영어로 대답을 했다.
소녀들은 말했다.
"와,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 나도 네 나이가 될 때 이곳을 떠나서 여행을 가보고 싶어."
"왜, 너도 할 수 있어!"
"나는 안돼. 여기선 일찍 결혼해야 해. 그리고 결혼하면...... 알잖아?"
인도의 조혼 풍습은 알고 있다. 인도 여성의 약 40퍼센트가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세상의 따뜻한 품에서 보호만 받아도 모자랄 어린 나이 열다섯에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삶, 내가 원해서 나로 태어나지 않았듯이 그들도 그러하다.
고아 트랜스가 뭐냐, 서양 히피들이 뭐냐,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의 외로움 따위가 뭐란 말이냐
한 번도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선택권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세상에 던져진 수많은 존재들을 생각하며 좌절을 느꼈다. 레스토랑이나 바가 문 열 준비를 하는지 멀리에서 단물 빠진 고아트랜스 음악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나는 고아 해변의 어두운 빛깔의 모래를 손으로 움켜줬다 놓으면서 소녀들의 결혼생활이 순탄하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