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부러웠던 양양 '죽도'에서 파도타기
인천에 음악페스티벌이 열렸다. 알록달록 갖가지 체험부스가 서 있다. 앰프 시연이나 레코드 판매, 뮤지션의 굿즈들까지는 이해되는 데 왜인지 사방팔방 방정맞게 움직이는 서핑보드가 나와있다. 이 움직이는 서프보드는 홈쇼핑 승마운동기구처럼 생긴 거 위에 짧은 보드가 붙여져 있다. 음악페스티벌이라 인기가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사람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줄을 서있다. 목표는 움직이는 서핑보드에서 20초 이상 균형 잡기. 성공하면 경품을 준다고 한다. 같이 간 친구 중 한 명이 "야, 너 서핑 다닌다며? 한번 해봐."라고 도발한다.
- 까짓 거 해보지 뭐. 서핑유학(?)도 다녀온 나인데 초짜(처럼 보이는 사람)들하고는 차원이 다르겠지? 오늘 최고 기록 경신해 버리면 어쩌지 좀 미안한데(하아)-
근자감에 취해 엉성한 포즈로 올라선다. 물론 머릿속에 내 모습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파도의 면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뜨거운 여름 여자 그 자체이다.
결과는 2초 광탈. 잘못 떨어졌는지 목이 결린다. 오른손으로 목을 주무르며 말한다.
"이건 무효야. 하필 오늘 신발이 샌들이잖아. 원래 서핑보드에는 미끄럼방지를 위해 왁스가 칠해져 있고 또 맨발로 타야 되는 건데."
친구는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불쌍해. 그렇게 서핑을 사랑하는데 서핑도 잘 못하니"
그렇다. 나는 서핑을 짝사랑했다(과거형). 파도만 있으면 지구반대편도 갔고 파도를 찾아서 38선도 넘을 기세였다.
서핑에 입문한 것은 2014년 여름, 친구 중 한 명이 서핑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핑은 하와이나 호주에서만 하는 건 줄 알았다. 나는 우리나라에도 서핑스폿이 있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6명의 서핑뉴비는 양양으로 향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다 같이 체험서핑을 했다. 서프보드를 뒤에 세우고 브이나 샤카(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는 손동작, 감사와 존중을 담은 서퍼들의 제스처)를 그리며 포즈를 잡을 때만 해도 다들 까르륵거리며 즐거워했다. 이내 강습을 받으며 파도에 던져지고 메쳐지니 우리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갔지만.
앞머리와 옆머리는 눈과 볼에 미역처럼 붙어 시야를 포기해야 했고 좌우로 극심하게 흔들리는 보드에서 균형을 잡기란 기적과 같이 보였다. 우리는 울렁거리는 물멀미를 안고 패잔병처럼 서울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집에 돌아온 후 계속 흔들리는 보드 위가 생각났다. 눈앞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저 멀리 반짝거리는 윤슬,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야, 네가 있어야 하는 곳, 바다의 딸, 서퍼가 되어라.'
서핑이라는 것에 굉장한 매력을 느낀 나는 서핑 관련 콘텐츠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돌아오는 주말에 다음 파티원을 모집했다. 결과는 참패, 5명이 읽씹(읽고 답장을 안 하는)이었다.
도대체 왜 서핑을 다시 안 하겠다는 건데?
그들의 이유는 다양했다.
- 그거 한 시간 했다고 기미 엄청 올라왔잖아, 어제 피부과 갔더니 견적 장난 아니던데?
- 바닷물이 너무 짜. 나 고혈압이잖아, 염분 조절해야 함
- 거품에 휘말리는 게 무서워. 나 사실 수영 못함 ㅇㅇ
- 양양이 너무 멀어서, 역시 집 밖은 위험해
- 휴, 내가 그때 한 시간 체험하고 며칠 동안 근육통에 앓아누웠다.
서핑은 보드 위에 누워서 균형을 잡고 상체를 들고 어깨와 팔 힘으로 힘센 파도를 거스르며 라인업까지 나가서 파도를 잡아야 한다. 다가올 파도와 비슷한 속도로 패들링을 하다가 파도가 뒤로 다가오면 죽어라 팔을 휘저어 파도가 보드 뒤를 밀어줄 때 일어나서 파도를 탄다. 말로 설명하니 모든 과정이 그냥 말이 안 되긴 하는데 일단 파도를 잡을 수 있는 라인업은 의외로 고요해서 육지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늘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바다에서 해변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시점의 변화가 주는 감동은 대단하다.
나도 안다. 서핑은 정말 어렵다. 아무리 돈과 시간을 많이 들여도 남는 건 허리, 목 통증과 망가진 얼굴 피부뿐, (소금물에 절여진 채 수면에 반사되는 태양과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 바닷바람이 합쳐지면 10년은 늙어버린 얼굴을 얻을 수 있다.) 파도 타는 실력은 절대로 늘지 않더라. 하지만 한번 그 맛을 봤는데 어떻게 그 맛을 잊으리오.
그나마 떡볶이와 콜라로 쉽게 공략가능한 친구 한 명을 설득하여 죽도로 향했다. 덜덜거리는 경차를 끌고 밤에 출발하여 장장 4시간을 운전해 새벽쯤 죽도해변에 도착했다. 비몽사몽간에 원터치 팝업 텐트를 던지고 아무렇게나 쓰러져 잤다. 뜨거운 열기에 너무 더워 잠을 깼더니 아직 6시다. 아직 아침인데 이렇게 덥다고?
텐트 밖으로 벌벌 기어 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멍한 머리로 뭘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일단 커피와 아침을 먹고 서핑샵이 오픈하면 강습을 신청하자. 날씨는 이미 더운데 쪼그만 바닷가 동네의 상권은 아직 조용하다.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이것저것 사서 요기를 하고 가게들이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차도 별로 안 다니는 좁은 도로에 구릿빛 서퍼들이 웃통을 벗고 카버보드를 타는 모습이 보인다. 카버보드는 지상에서 라이딩과 턴과 같은 파도타기를 연습할 수 있는 보드다. (여담이지만 그 후 나는 보드를 내리막에서 타다가 응급실에 실려간 경험도 있다. 나중에 생각나면 글로 써볼 예정이다.) 맨발로 해변에 걸어 나와 손으로 얼굴에 그늘을 만들고 오늘의 파도를 체크하는 맨발의 서퍼들, 멋있다.
나는 전혀 멋있지 않다. 지난번 보다 바다에서 더 엎어지고 메쳐진다. 유연성도 없고 근력도 없는 저질의 몸은 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배신하고, 그 미역 같은 머리카락은 내 뺨을 때려댔다.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그래도 나는 시종일관 나사 빠진 애처럼 웃었다고 한다. 운 좋게 한 번은 강사가 밀어주는 보드에 잠깐이라도 균형을 잡고 파도를 탔다. 그래 이 맛이야.
소금물에 노곤하게 쩐 몸뚱이를 잘 씻겨서 말린 후 허기진 배에 뭔가를 넣으려 죽도를 돌아다녔다. 그때만 해도 핫한 관광지로 이름 날릴 때가 아니라 여느 시골답게 7시 지나면 식당이 문을 닫았다. 그러다 오픈 준비를 하는 건지 혼자 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술집을 지나가다 주인장에게 정중하게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맥주에 버들잎을 띄워(아님) 감자튀김 같은 간단한 안주를 함께 내주었다. 정신없이 허기를 채우던 중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주인장이랑 인사를 한다(역시 좁은 동네라 서로 다 아는 모양이다). 누구인가 했더니 아까 강습해 준 강사님이다. 우리는 합석하여 맥주잔을 부딪혔다. 선배 서퍼들은 이야기주머니에서 신나게 서핑이야기를 열심히 꺼내주었다.
발리 꾸따라는 곳에 가면 밀어주는 파도를 탈 수 있는 이른바 황제서핑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귀가 번쩍 뜨였다(그래서 그 후로 발리에 몇 번을 갔다.)
나는 바세권(슬리퍼를 신고 바다에 접근할 수 있는 )에 살고 있는 이들의 하루가 궁금했다.
아무 때나 파도만 좋으면 보드 들고나가 서핑할 수 있는 삶은 어떨까, 눈을 떠서 슬리퍼를 끌고 나가면 바다가 있는 하루는.
나: 그래, 양양 살이는 어떻습디까?
두 명은 양양살이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 너무 부러워요 저도 양양에 살고 싶어요.
죽도서퍼: 살고 싶으면 충분히 살 수 있죠.
그때까지만 해도 월세도 싸고 젠트리피케이션 전이니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죽도록 부러웠던 '죽도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고 '주말서퍼'와 '휴가서퍼'로 돈과 시간을 쓴 뒤 장렬하게 전사했다(서핑에 대한 내 마음이). 나는 서핑을 하면서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식상한)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이를테면
'파도는 항상 세트로 온다.'
'이번에 파도를 타지 못하면 그다음파도를 타면 된다.'
'이것이 내 파도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아무리 좋은 파도라도 흘려보내야 한다.'
한 가지 더 덧붙여보자면 발리 꾸따에서 만난 서핑 강사 '포포'의 '서핑 스피릿'을 나눠보고 싶다.
나는 그때 수영을 잘 못했기 때문에 깊은 물을 무서워했다. 서핑하다 보면 통돌이(물속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것처럼 몸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가 기본이라 일단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물은 그냥 물일 뿐 두려운 건 네 마음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을 빼는 것'이라고 했다. 파도에 휩쓸리더라도 파도에 몸을 맡기다가 파도가 잠시 멈추는 타임은 반드시 있다고 했다. 그때 힘을 빼고 숨 쉬러 밖으로 나오면 된다. 두려움의 극복대상은 '물과 파도가 아니라 너 자신'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인도네시아 억양이 강한 영어로 얘기했다. '저기요, 제가 득도하러 온 게 아니라 서핑하러 온 거거든요.'라고 그때는 생각했지만, 그의 강연은 때때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귀에 들려온다.
'부디 편안하게 힘을 빼자.'
'반드시 파도가 잠잠한 순간이 온다.'
오늘도 인생의 거친 파도에서 힘겹게 중심 잡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흑흑. 다시 서핑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