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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Jul 02. 2024

솔로솔로게하의 이효리방에는 이효리가 없다.

소금막 해변에 파도가 넘실넘실

  다음은 아이패드 메모장에서 찾은  2016년 6월 3일에서 7일간의 기록이다.

제주 함덕 캠핑장에 짐을 풀어놓고 먹방을 시작했다. 함덕 486이라는 주점에 들러 대동강 맥주와 고로케를 시켰다. 대동강맥주에서는 향긋한 과일향이 났다. 감자고로케는 감자에 새우를 잘게 다지고 카레가루를 뿌려 반죽한 것을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것이다. 뜨거운 김이 나는 감자 고로케를 입속으로 직행하다 입천장이 다 까졌다. 이럴 때면 어렸을 때 뜨거운 걸 먹을 때 엄마가 해주던 일화가 생각난다. 엄마가 어렸을 적에 동네 개 한 마리가 뜨거운 고구마를 마구 먹다가 이빨이 다 빠져버렸다고 한다. 뜨거운 걸 먹으면 이빨이 다 빠져버리는 걸까? 이빨이 다 빠진 개는 어떻게 됐을까? 평생 죽 같은 것만 먹고살았을까? 배부르게 먹고 나와 동네를 이리저리 걸었다. 30분 정도 걷다 보니 배가 꺼졌다. 배가 엄청 고픈 건 아니었는데 여행지에서는 먹을 것이 보이면 먹는 것이 낫다. 제주와 같은 곳에서는 밤 되면 제대로 된 먹을 것을 못 얻어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해물녹차칼국수가 보여서 칼국수를 한 그릇 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텐트에 왼쪽무릎을 세우고 누워서 오른쪽 다리를 4자로 올려 발목을 까닥거리다 잠이 들었다. 


  텐트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눈이 떠졌다. 비를 맞으면서 텐트를 접고 짐을 쌌다. 버스를 타고 돌고 돌고 돌아 표선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생각해 보니 아침도 못 먹고 점심도 못 먹은 것 같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어묵 두 꼬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종이컵에 담긴 어묵국물을 마시다가 혀를 데었다. 또 이빨 빠진 개 생각이 났다. 찬물로 혀를 식히며 한라봉 한 봉지를 샀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거세진다. 조리를 신은 발가락이 시리다. 일회용 비옷도 하나 샀다. 우비를 입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선소금막 해변행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간다.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상당히 춥다. 뜨끈한 뭔가를 먹고 싶어서 횡단보도 건너 보이는 분식집에 들어가 김밥과 떡볶이를 시켰다. 분식점 티브이에서 '쇼미 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랩랩, 힙합 하며 떠든다. 


  버스를 타고 소금막해변에 도착했다. 은근히 사람들이 많다. 세시에 장비를 빌리기로 해서 쉼터에서 기다렸다. 정말 춥다. 약속한 세시가 돼서 슈트를 받아 갈아입고 보드를 가지고 해변으로 갔다. 보드캐리 하는 순간부터 욕이 자동으로 나온다. 비바람에 눈을 못 뜰 정도였는데 또 파도는 탈만해서 취소하기도 그랬다. 보드를 들고 가는데 바람이 역방향으로 불어 가뜩이나 무거운 스펀지 보드가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할 때마다 내 무릎도 같이 꺾였다. 파도에 몇 번 휩쓸리다가 손끝과 발끝 입술에 감각이 없어지자 포기하고 나왔다. 


  누군가에게 게스트하우스를 추천받았다. 이름이 무려 솔로솔로게하, 그럼 내가 받은 방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무려 이효리방! 이효리방의 침대가 너무 물컹하게 푹신거린다. 비바람과 파도와 싸우느라 배고파죽겠는데 역시 근처에는 식당이 안 보인다. 오늘저녁은 못 먹는 건가 낙담하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남과 손님들이 차 타고 회식을 하러 가는데 함께하겠냐고 물어왔다. 일단 배고프니 따라나선다. 아니나 다를까 한차에 여러 명이 구겨타고 도착한 곳은 제주돼지고깃집이다. 석쇠에 지글지글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석쇠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멜젓과 편으로 썬 마늘이 반짝인다. 나는 된장찌개를 시켜 밥과 김치를 묵묵히 먹었다. 고기를 안 먹는 내 모습을 본 사장이 말한다. "왜 안 드세요? 제주돼지 진짜 맛있는데! 아, 다이어트하시는구나?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사장님, 이에 상추가 껴있습니다만) "그런 건 아니고 고기 안 좋아해서요. 잘 안 먹습니다."  된장찌개에 사각형으로 썰어진 두부가 뜨겁다. 입천장이 델 것 같다. 나는 또 이빨 빠진 개를 떠올린다. 맥주로 뜨거운 입천장을 식혔다. 


  숙소에 돌아와 일찍 잠이 들었고 아침 8시부터 준비해서 해변으로 나갔다. 파도는 괜찮은 것 같은데 패들을 잘 못하니 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서핑보다 좋은 것이 있었다. 입 주변 털이 산신령처럼 덥수룩한 슈나우저가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슈나우저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같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게 된 것이 무척 신이 나 보였다. 하지만 슈나우저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풀이 죽은 산신령님에게 서핑보드를 들이댔다. 물에 빠진 산신령은 서핑보드에 올라타기 위해 뒤뚱거리며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나는 안타까움과 귀여움에 탄식했다. 


  주변에는 카이트 서핑하는 사람도 있었다. 돛같은 것이 달려서 바람을 이용해 서핑을 하는 것이다. 아까 그 슈나우저처럼 나도 물 위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등근육 운동 좀 해야겠다 생각했다. 물에 젖은 이불처럼 무거워진 몸으로 뭍으로 나왔다. 샤워할 수 있는 곳을 물어보니 가까운 곳은 아직 공사 중이라고 한다. 저쪽에 있는 공용 샤워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냉동창고와 무슨 창고를 지나 빨갛게 녹이 슨 철문을 연다. 영화 속에 나오는 장기밀매하는 목욕탕처럼 으스스하다. 나는 잔뜩 경계하며 찬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표선 야영장으로 가는 길에 보말죽을 한 그릇 먹고 누웠다. 


  다음날 파도는 어제보다 조금 약했다. 1리터짜리 포도주스를 마시며 파도타기를 연습했다. 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서핑을 접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으로 풍덩 들어갔다. 눈앞에 바다가 계속 넘실넘실거린다. 젖은 샌들을 계속 신고 다녔더니 물집도 잡혔다. 하루종일 비가 왔지만 배수가 잘되는지 캠핑사이트가 은근히 뽀송하다. 아니면 내가 익숙해진 건가. 하루를 더 야영장에서 캠핑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해가 떠서 장비들을 꺼내 잘 말렸다. 오늘 파도는 굉장히 약했으므로 근처 달산봉에 다녀왔다. 짙은 녹음의 냄새를 폐 깊숙이 담았다. 앵앵되는 날파리들을 손으로 휘휘 쫒으며 가벼운 트레킹 후 터미널로 이동했다. 터미널에서 어머니하나님을 믿으라는 전도자를 만났으나 가볍게 패스하고 공항으로 갔다. 우천으로 인해 서울로 가는 비행기는 연착, 한없는 기다림, 또 연착, 게이트 변경 또 연착, 변경의 반복이었다. 

발가락의 물집, 햇빛에 벌겋게 그을린 피부, 흙 묻은 배낭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온다. 쭈그리고 앉아 전기콘센트에 핸드폰을 충전하며 '나는 괜찮다.'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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