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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토리 Oct 20. 2024

선후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플러팅의 시작

까똑.


'이제 x통문 쪽으로 이동하십니다.'

'고마워. 휴일에도 고생이 많네.'

'x소초 들렀다가 동석식사 하시고 복귀하실 것 같습니다.'

'응. 출발할 때 연락 부탁해^^'


어느새 그와 문자를 주고받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난 여름 밤, 함께 숙소까지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진 탓이다. 그녀가 후에 느낀 대로 그는 성품이 매우 올곧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그를 아는 사람은 모두가 착한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그 스스로도 자신의 업무에 익숙해져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업무파트너가 되었다.


이 날은 그녀가 주말 당직근무를 서던 날이었다. 당직부관 임무를 수행하는 그녀는 전방으로 순찰을 나간 사단장의 동선을 파악하고 싶어 하는  당직사령의 눈치를 보며, 전속부관인 그에게 문자를 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소초마다 전화를 걸어 어느 쪽으로 이동하셨는지 알아내고 추정하느라 골머리를 앓았을 텐데, 든든한 첩보원, 아니 명확한 정보원이 생긴 셈이다.


"사령님! 사단장님 지금 x소초 이동 중이시고, 거기서 식사하시고 복귀하신답니다. 출발하실 때 다시 한번 확인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근데, 유 중위. 어떻게 그렇게 파악이 빠르냐?"

"전속부관하고 소통 중입니다."

"아~ 그럼 뭐, 정확하겠네. 편하고 좋다야."


당직사령의 '따봉'을 받고,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사단장이 부대에 복귀할 때까지 그녀는 실시간으로 그와 소통해야만 했다.


'덕분에 편하게 당직 서는 중.'

'언제든 필요하신 것 말씀해 주시면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

'어제 페북에 올리신 글을 보니 꽃이 어떤 건지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야. 너 군생활 어디서 배웠니?'

'제가 쫌 유명합니다.'


그녀는 엊그제 지역행사가 종료된 후 부대에 잔뜩 들어온 노오란 국화꽃 화분들 사이에서 그녀의 행정계원인 용사들과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 피드에 게시한 기억이 났다.


그녀는 그가 사회생활을 참 잘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이보다도 더 이전부터 계속 그녀에게 플러팅 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던 것이, 그녀는 남에게 도통 관심이 없는 편이었고 더더욱이 연애에 있어서 심히 둔감했던 그녀는 그저 착한 후배가 까탈한 선배 비위 맞추느라 참 애쓴다라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이다.




"사단장님께서 주셨습니다."


문자로 하루종일 소통했던 그가 아이스크림을 한 아름 사들고 지휘통제실로 들어왔다. 주말 당직은 24시간으로 너무 지루하기도 하고, 군것질이 하고 싶을 때가 있어 항상 간식거리를 사들고 오기는 했지만, 예기치 못한 아이스크림은 너무 반가웠다.


"우앙~ 맛있어."

"저로 인해 기쁘실 수 있다면."

"뭐래..."

"선배님, 그런데 프로필 사진은 누가 찍어주신 겁니까?"


아까 이야기했던 페이스북 사진 이야기였다. 그녀는 화분에서 떨어진 국화꽃 한 송이를 귀에 꽂고, 돌계단에 앉아 얼굴에 꽃받침 포즈로 찍은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았던 게 기억났다.


"아, 우리 사무실 박 상사님. 날씨도 좋고, 꽃도 너무 예뻐서 그냥 둘이 재미있게 놀았지."

"모델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또 뭐래..

"이제 가보겠습니다. 사단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얼른 가봐. 아이스크림 땡큐."


그녀는 진중한 성격과는 다르게 자꾸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는 그를 보고 생각보다 되게 싱거운 면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아, 부관님 ~ 나 지금 결재판 들고 올라가요.'

'네, 연락받았습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깜깜해졌고 밤 9시를 향하고 있었다. 전방사단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끔 긴박한 상황들이 생긴다. 다행히 주말에 쉬고 있는 간부들을 소집할 정도까지는 아닌 일이었다. 다만, 사단장에게 직접 보고해야 할 문건이 생겼고 급히 사단장 숙소인 공관으로 문서를 들고 가야 해서 그에게 연락을 했다.


'잠깐만. 내용 수정할 것 있다고 해서 고치는 중. 천천히 나와. 출발할 때 연락 줄게.'

'괜찮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밤 되니까 쌀쌀하던데...'

'괜찮습니다. GOP에서 한 겨울도 버텼습니다.'

'좀 걸릴 것 같아서 그래.'

'선배님 얼른 뵙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제 마음도 몰라주시고.'


또다시 대차게 헛소리를 해대는 그의 문자를 읽고는 그녀는 이제 대꾸할 가치마저 느끼지 못해 답장을 생략하고 그대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나저나, 저 오글거리는 멘트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속적으로 던지는 그나, 한 번쯤은 쟤가 왜 저러나 고민해 볼 법도 한데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넘겨버리는 그녀나, 여러 가지 의미로 둘 다 막상막하였다.


그녀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연애관이 그 이유였다. 그녀는 연하라면 질색했다. 남자는 같은 나이라도 그저 너무 어리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만일 남자친구를 만난다면 최소 4살 이상의 연상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래서 그녀보다 1년 후배에, 나이도 한 살 어린 그에게는 '연애상대'로서 일말의 가능성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그녀가 당직을 선 그날, 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작가의 말>
그의 오글거리는 멘트들은 실제 카톡에서 따온 겁니다. 그와 단순히 아는 사람으로 연이 되어 서로 만나기로 하기 전까지, 다행인 건지 카톡방을 새로 생성하지 않아 연애 전 카톡이 그대로 남아있네요. 사진 속 '남친님♡'은 이후 연애하면서 수정했더니 저렇게 바뀌었구요. 원래는 '길××중위(전속부관)' 였어요. 엄청나게 사무적인. 그 때 카톡을 다시 읽어보니, 제가 정말 둔탱이도 심각한 둔탱이였네요. 여보, 미안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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