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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토리 Sep 29. 2024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급발진 그녀, 당황한 그

"부관 가기 전에 우리 한 번 모여야지?"

"너 언제 간다고?"

"나? 다음 주 금요일 신고."


3월에 임관한 중위들 사이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임관날짜가 그들보다  조금 느린 탓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임관을 하는 그들과 달리, 그녀는 졸업 후 별도의 시험을 치르고 여군사관후보생 교육과정을 거친 뒤에야 임관을 하다 보니 그들보다 7개월을 늦게 임관했다. 당장에야 계급은 달랐지만, 임관한 해가 2010년으로 같았던 그들을 어차피 내후년 같은 날에 대위로 진급할 것이기 때문에 - 물론 소소한 사고가 없다면 말이다. - 그들을 앞으로 동기가 될 그녀를 미리 배려해 주었다. 지금 선후배 따져봐야 서로 동기가 되는 날이 왔을 때 불편해지는 것은 그녀가 아닌 그들이기에. 그래서 그녀는 중위들의 모임에 단 하나뿐인 소위, 그리고 홍일점으로 끼어있을 수 있었다.


"후임은 정해졌어?"

"응. 내일부터 인수인계하기로 했어."

"아, 그래서 언제 모여? 뭐 먹을 건데?"


전속부관 임무를 수행하던 동기가 "영어반"이라는 교육기관 지원에 선발되어 곧 전출을 간다기에 동기들끼리 송별회 날짜를 정하던 참이었다. 잠시 앞으로 그 동기를 이어 임무수행할 '후임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관님~  시계 다섯 개만! 엇, 실장님, 안녕하세요?"

"충성! 보좌관님, 요즘 얼굴 보기 너무 힘든 거 아닙니까?"

"그러게요. 실장님이 너무 바쁘셔서 그런 것 아니에요~? 사무실에도 좀 놀러 오고 그러세요!"

"제가 어떻게 가요. 보좌관님이 오셔야지."

"아, 그건 또 그렇네요. 헤헤~"


그녀는 전속부관에게 항상 '부관님'이라고 호칭했다. - 군생활 14년 차인 지금도 그녀는 띠동갑 후배인 전속부관을 부를 때는 항상 '부관님'이라고 호칭한다. 지휘관을 바로 옆에서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랄까. - 사단장 표창을 심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결정된 표창을 발행하는 업무를 하는 그녀는 부상으로 지급되는 기념품을 수령하러 종종 비서실에 들르곤 했다. 동기인 전속부관은 자리에 없었고, 마침 오랜만에 보는 비서실장(육군 상사)이 반가워 까르르 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그녀가 처음 사단에 전입 왔을 때부터 여러 가지로 잘 챙겨준 데다, 그녀도 그렇고 비서실장도 그렇고 서로 친화력이 좋아서 자주 보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무엇보다 교육기관에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비공식적인 군대예절과 애티튜드를 많이 알려주고 도와줬던 사람이라 계급을 떠나 그녀가 의지하는 군생활의 선배이기도 했다.


"보좌관님, 우리 전속부관님 새로 왔어요."


캐비닛에서 기념품을 꺼내며 비서실장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비서실에 들어올 때 못 보던 사람이 전속부관 옆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다른 볼일이 있어 왔다가 기다리는 사람인 줄 알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기억이 스쳤다.


"아, 네~ 안녕하세요."

"충성! 길 소위입니다."


그가 인사했다.


'뭐야. 전속부관인데 왜 이렇게 키가 작아? 저렇게 말라서 사단장님 경호나 제대로 하겠나? GOP에 있었다면서 왜 이렇게 하얗지?'


그녀는 알고 있는 지인 중에서 훤칠한 경호원인 한 사람을 떠올리며 전속부관이라는 이미지와는 살짝 동떨어진 그를 보고 다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부관님 좀 잘 챙겨주세요. 업무 때문에 자주 볼 텐데. 보좌관님이 1년 선배잖아요."

"어휴~ 제가 뭘 안다고 챙겨요. 실장님이 둘 다 챙겨주셔야지."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시작된 그녀와 비서실장의 대화에 끼어들며 그가 재차 인사했다.


"네, 종종 봐요."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과는 달리 첫 만남에서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마주치는 그 순간만 유독 낯을 가리는 그녀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얼른 비서실장이 건네주는 기념품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비서실을 나서려던 찰나, 문득 지난번 다른 사무실에 들렀다가 본 문서가 떠올랐다.


"우리 새로 온 부관님은 출신이 뭐예요?"

"..예? 아.. 저는 3사 46기입니다."

"아, 부관님이 그 친구구나?"

"예?"

"아.. 아니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담에 또 봐요."


이런, 급발진했다. 그의 당황하고 어버버 한 표정을 인식한 순간 그녀는 아차 싶었다. 궁금한 것은 그때그때 확인하고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의 입은 두뇌의 필터링 없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살짝 민망해진 그녀는 호다닥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와~ 저 사람 어떻게 오긴 왔네. 신기하네~ 그런데 전속부관하기엔 키가 너무 작다. 우리 사단장님 키가 꽤나 크신데. 옆에 서면 키 차이가 엄청나겠어. 되게 없어 보이겠네...'


왜 때문에 그의 키를 그렇게나 안타까워했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녀는 민망했던 조금 전 그 순간은 호기롭게 잊은 채 의미 없는 중얼거림과 함께 그녀의 사무실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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