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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홍차 Aug 03. 2024

나는 환자랍니다.(1)

따뜻한 에세이 한 잔. 네번째.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걸 써야 하는데, 지인들에게 웃으며 가볍게 말하던 평소와 다르게 펜이 무겁다. 매번 내 글을 소리내어 읽는 아들 때문이려나. 잘 모르겠다.


 저는 암환자입니다.


 그나마 '착하다'는 갑상선암이다. 여러분께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다. 암이라는 게 요새 흔하다 보니,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생사의 기로에 서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다 보니.


 2019년, 엄청나게 피곤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시간이 허락할 때 마시듯이 집어삼키고.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남들 다 키우는 아이 히나 키우면서 피곤한 거 생색낸다고 할까 봐 참고 참았는데 어느 날 보니 목에 커다랗게 목젖이 하나 더 생겼다.


검사하느라 주사바늘자국이 남아있는 제2의 목젖.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약을 받아먹어도 그 목젖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쭐레쭐레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일주일쯤 후에 진료실 문을 열었는데, 암이란다. 갑상선암. 속상해서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내 담당교수님 앞에서 소리 없이 뚝뚝 눈물을 흘렸다.


 왜 울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암이라는 말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음에도 눈물이 났으니까. 드라마에서처럼 뭐 귀에서 삐-! 하며 이명이 들리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더라만.


집에 와서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남편을 기다렸다. 엄마한테는 의연하게 말한다고 나름 노력했으나 곧 남편이 조퇴를 하고 달려와 안아주니 또 눈물이 났다. 그제사 뭔가 실감이 났다. 내가 큰 병에 걸렸다는 것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의 꼬맹이를 보면 난 또 울테고, 그럼 꼬맹이는 아마 놀랄 테니까.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아이가 보고 놀라기 전에, 울만큼 미리 다 울어두자 싶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불안함이지만, 아이가 엄마 없이 자라게 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 되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암덩이가 붙어있는 갑상선을 떼어내고, 암세포가 번져갔을 림프절들을 떼어내고, 그것들을 검사한 결과 남들보다 미세암세포가 다른 곳에 전이됐을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이 순간과 순간들이 날 계속 불안하게 만들었다.


 추후에 정신과에서 불안증 때문에 상담받을 때 난 말했다. 암세포들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아서 무섭다고. 그랬더니 교수님이 답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지금 어쩔 도리가 있느냐고.


 그 말씀이 묘하게 서운하면서도 너무나 맞는 말이라 결국 수긍했다. 그래. 뭐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지금 어쩌겠어. 하나하나 제거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손쓸 수 없는 일에 대해 불안함이 몰려올 때면 난 저 말을 떠올리며 진정하려고 노력한다. 아직까지는 비록 비상약으로 처방받은 안정제가 필수지만 약빨인지 뭔지 몰라도 '그래서 내가 지금 어쩌겠어' 한방이면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진다.


 현실도피, 회피 혹은 체념쯤 되는 이것은 삶에 있어 언뜻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나처럼 모든 것에 날이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도움이 된다. 손쓸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올해 완치판정을 받기 전, 운 나쁘게도 암이 재발되었거나 다른 곳에 전이가 됐을까 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이런 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어 브런치에 올리자고 마음먹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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