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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l 11. 2024

사람 아닌 자들이 떠나라

사내 성추행 생존자를 지켜본 이야기

배추머리 김병조님 명언


 M은 칭찬받는 계약직 사무직원이었다.

 진작 정규직 전환이 되어야 했지만 회사는 이해할 수 없는 규정을 들먹이며 미뤘다. 더 이상 미룰 핑계가 없어진 어느 해였다. 얼마 있으면 정규직원이 되어 조금은 마음 편히 회사를 다닐 수 있겠다 기대하고 있었다. 몇 달 전 부서를 옮기며 업무와 사람에 적응할 무렵 그 일이 터졌다.

 자상한 선배인 척 업무를 도와주던 기혼 동료가 M을 성추행했다. 뭐 하시는 거냐고 소리 지르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날 이후 M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직원은 업무능력은 보잘것없었지만 사람 괴롭히는 일에는 지능적이고 집요했다. 몇 없는 직원 사이를 오가며 M을 소외시키고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켰다.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까운 지인과 가족에게 하소연했지만 들어줄 수는 있어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원형탈모가 왔고 면역 기능은 무너졌다. 상담을 받으며 약을 처방받았다.     

 사 노조에 도움을 청했지만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사측 노무법인에 사건을 폭로했다.

 M은 녹음 자료, 병원 진료 기록, 증인을 확보하고 가해자와의 분리를 요구해 타 부서로 옮겨갔다. 가해자는 너무나 당당했고 여기저기에 더러운 거짓말을 퍼뜨리고 다녔다. 그러나 인사팀과 노무사는 계속 판결을 미뤘다. 이들은 회사 체면과 유지를 위해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퇴사를 각오하고 신문사 기자에게도 연락해 봤지만 조심스러웠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공직에 있는 지인이 참다못해 본사 인사과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이 일을 묵과할 수 없으니 신문사에 알리고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다 하겠다고. M이 했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가해자는 바로 정직 3개월을 받았다.

 

 회사를 떠난 사람은 M이었다. 더 정확히는 쫓겨났다. 증인 진술했던 동료는 불이익을 받았고, 몇몇 여직원과 여성 임원은  M의 반대편에 섰다. 가해자는 지금도 그곳에서 오피스 와이프까지 만들어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직을 했지만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추스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은 내 가족의 이야기다.


  내게도 불쾌하고 힘든 기억들이 있다. 어떻게 알아보는 것인지 그들은 먹잇감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반항하지 못할 것을 알고 물리적인 힘이나 위계 혹은 인정을 빌미삼아 상대를 누른다. 자신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걸까. 남자만 가해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조카나 아들뻘 되는 남성에게 낯 뜨거운 수작을 걸며 손을 대는 여자들도 본다. 역겹다.


 못 견디게 기분이 더러운 진짜 이유는 스스로 삶의 시간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힘든 마음을 떨치고 싶어 별짓을 다하지만 생각의 끝머리에서는 '내가 얼마나 약하고 만만해 보였으면...... 대체 어디서 실수를 한 것일까' 자책하며 불안해한다. 똥이 무서워 피하기도 하는 것이다. 불쑥불쑥 수치스럽고 화나고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지구를 떠나는 중이 될 수 없으니 일단 살기로 한다. 그러다 보니 살아가고 있다.



<그림책 추천>

*문어의 방/그로 달레 글, 스베인 뉘후스 그림/신동규 옮김/위고/2021.11.5

*빨간 모자/에런 프리시 글,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서애경 옮김/사계절/2013.4.2

*거미와 파리/메리 호위트 글, 토니 디터리지 그림/장경렬 옮김/열린어린이/2004.11.5

*좋아서 껴안았는데, 왜?/이현혜 글, 이효실 그림/천개의그림/201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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