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탄광 마을
예전에 독서 모임을 할 때 로버트 뉴턴 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을 읽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독서 지도를 위해 고른 책이었는데 노동하는 고된 삶 속에서 주인공 소년이 아버지의 병과 죽음으로 철이 들고 어른이 되는 모습에 그날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성장통이라기엔 사회에 책임과 임무를 다하는 존재로 속해 가는 과정이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나'는 남아있지 않구나 싶어 서글퍼졌다. 시드니 스미스와 조앤 슈워츠가 만든 그림책 '바닷가 탄광 마을'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다.
1950년대 캐나다 동쪽 노바스코샤주 케이프브리튼섬의 탄광 마을, 바다가 보이는 푸른 언덕 작은 집에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동생과 소년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일하러 집을 나서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배웅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매일의 아침이 시작된다. 아버지가 탄광으로 출근하는 동안 소년은 자연의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다.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젖고, 낡은 놀이터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거리를 걷다가 날씨가 좋으면 할아버지의 무덤을 찾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나를 묻어주렴.
땅 속에서 오랫동안 힘들게 일했으니."
바다는 잠잠하고 조용하지만 아버지는 갱도 열차를 타고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암흑의 터널 속에서 석탄을 캐고 있다. 소년은 항상 자신의 하루에서 문득문득 고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아버지와 바다를 생각한다. 저녁이 되면 온몸이 검은 재로 덮인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고, 웃는 얼굴로 소년을 안아준다. 그리고는 함께 저녁을 먹고 발코니에 나와 앉아 노을을 바라본다.
자유로운 펜 드로잉과 파스텔톤의 수채가 만나 아름다운 바닷가 탄광 마을을 그려냈고 하얀 파도와 반짝이는 바다는 과슈 물감으로 더욱 빛난다. 담담한 고백과도 같은 서사와 따뜻하게 빛나는 그림으로 이 이야기를 더욱 뭉클하게 만든다. 글작가 조앤 슈워츠는 "소년이 보내는 매일의 감정과 생각은 소년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인생의 틀을 만들어 나간다"라고 했다. 이야기 속 소년은 자신의 일상에서 존재의 의미와 본질을 어렴풋이나마 느꼈을까. 대를 이어가는 탄광에서의 삶은 소년을 철이 들고 어른이 되게 한다.
문득 생각한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시간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숙명과 책임감 같은 것이 따라오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며 남는 것은 체념일까, 긍지일까. 단단하게 뿌리내린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양분 삼아 일상을 살지만, 잊고 있다가도 가끔 서글프고 두렵다.
<그림책 추천>
*바닷가 탄광 마을/조앤 슈워츠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영선 옮김/국민서관/2017.12.29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찰리 맥커시 글그림/이진경 옮김/상상의힘/2020.4.20
*메멘과 모리/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권남희 옮김/김영사/2024.1.23
*나 혼자/데이비드 스몰 글그림/김승일 옮김/미메시스/20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