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고 눈을 맞춘다
'가르치는' 것이 조심스럽고 무겁다. 누군가의 시간을 맡아 도움을 주어 내 쓸모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조바심이 난다. 수업을 하기 전과 후 달라지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이면서도 스트레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증장애우(라 불리는)와 함께 하는 수업이 힘들었다. 강의실에 들어가면 선생님들만 나를 보아준다. 학생 누구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부분은 수업 끝날 때까지 자신의 강박 행동에 집중하거나 의미 없는 소리를 지른다. 센터에는 직업 교육이 가능한 분들도 있지만 내가 수업하는 반은 아니었다. 소통 자체가 힘든 이들이 센터에서 나나 다른 강사님들의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어떤 성장을 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계기가 있었는데, 수업에 함께 참여하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였다. 이들이 한 시간 의자에 잘 앉아있는 자체로 대단하고 그 역시 수업의 성과라는 것이었다.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을 비웠다.
이름을 부른다. 이것은 당신을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는 마법의 주문이다. 인사를 건네고 예쁜 옷을 입었다며 칭찬도 해준다. 상대는 듣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색연필을 손에 쥐었다는 자체를 칭찬해 주고 동그라미 하나 그리는 것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뻐했다.
그렇게 네 달쯤 지났을 때였다. 강의실 문을 열었는데 잠깐이었지만 학생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주었다. 본다는 것에 이렇게 울컥해진다. 그때 자폐가 있는 Y가 내 쪽으로 오더니 머리를 들이밀었다. Y는 소통하거나 칭찬받고 싶을 때 자기 머리를 쓰다듬게 하고 서로의 주먹을 하이파이브하듯이 툭 친다. Y 씨, 오늘도 반가워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주먹을 툭 쳤다. 의식을 마치자 Y는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실 앞에 나가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한다.
이날은 하정산 작가님의 그림책 '모기와 춤을'을 읽어주었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꼬마야 꼬마야'와 같은 구전노래를 글로 풀며 야영장에서 모기의 침입을 맞닥뜨린 가족의 밤을 리듬감 있고 쾌활하게 그려낸 책이다. 노래 가사를 따라 읽자 신기하게도 몇 학생들이 그림책의 그림에 시선을 두고 집중을 했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놀이를 함께 하고 매시간 구호처럼 외치는 박수 동작을 했다. 한 학생이 박수에 대한 설명을 하자 미리 손뼉을 치려는 듯 손을 모은다. 이 작은 호응에 어느 때보다 뿌듯했다.
모든 관계는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들과도 그렇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이제는 덜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싶어 조금 마음이 놓인다. 어쩌면 이 만남은 내가 성장하는 수업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책 추천>
*관계/안도현 글, 이혜리 그림/계수나무/2006.11.20
*내 이름은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산디야 파라푸카란 글, 미셸 페레이라 그림/장미란 옮김/책읽는곰/2023.9.22
*이름을 알고 싶어/M.B.고프스타인 글그림/이수지 옮김/미디어창비/2020.2.14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신시아 라일런트 글그림/신형건 옮김/보물창고/2004.11.25
*내가 엄마라니!/라이언 T. 히긴스 글그림/노은정 옮김/토토북/2020.7.30
*모기와 춤을/하정산 글그림/봄개울/202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