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내가 느이 식구 잘 먹으니 많이 가져가라 했잖어. 그거 보고 두 봉지나 준다고 네가 대답까지 했으면서!"
그랬나.
친정엄마가 밭에서 갓 뽑은 어린 쪽파로 김치를 담그셨다. 예술이었다. 얻어온 가방에 김치가 두 봉지나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집에 갈 것이 잘못 왔구나 싶어 바로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저렇게 화를 내신다.
"얘 좀 봐! 너가 얘기해 놓고 왜 기억을 못 하니?"
날카로운 쇳소리는 이제 내 귀를 뚫는다.
"아유, 알겄어요. 깜빡했나 부지, 암튼 잘 먹을게요."
왜 저렇게까지 화가 나셨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실없이 헤헤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이 순간 나는 밥상을 어질렀다가 혼나는 일곱 살 아이였다.
며칠이 지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사실 오래전에 치매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우울로 인한 인지기능 저하가 원인이었다. 정밀검사 결과를 앞두고 우리 모두는 정말이지 심난하고 두려웠는데 엄마 본인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치매로 정신줄을 놓으면 당신 모습 흐트러지지 않게 항상 깨끗하게 꾸며 달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노년에는 죽음이나 질병에 저렇게 담담할 수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증상이 더 진행되지 않아 잘 지내고 계신다. 나는 요즘 자꾸 일정을 잊어버리고 동생에게 몇 번이나 확인하곤 했는데 엄마가 얘기를 전해 듣고 파김치로 통화까지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셨나 보다. 그런 것까지 어미를 닮아 치매 전조가 나타나는가 싶으셨을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겁이 나셨던 거였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시냐며 걱정 마시라 했다. 어쩐지 알 것 같은 엄마의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날 밤, 우습게도(그러나 나는 웃지 않았다) 자다 깨서 조용히 핸드폰을 켜고 마른침을 삼켰다. 조심스럽게 40대 조기 치매를 검색창에 입력하고 30분을 그렇게 머무르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다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