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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선 윤일원 Jun 24. 2024

백제의 미소, 앙코르의 미소, 사람의 미소

양옆에 본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를 두고 훤하게 웃고 있는 영감탱이...


연암당 여름시즌 여행 “완행열차 타고 떠나유~”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백제의 미소,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으로부터 시작되어 해미읍성에서 점심을 먹고 제20전투비행단에서 끝 맺음을 하였다.     


이른 아침 06:19 용산역에서 삽교로 가는 완행열차를 타니 벌써 붐비기 시작한다.      


KTX는 돈값을 하여 옆 사람과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어떻게 알고 승무원이 득달처럼 달려와 “손님, 이야기는 밖에서 해야 합니다” 라는 경고 아닌 경고로 “그냥, 잠이나 자자”의 여행이 되었지만, 완행열차는 이와 달리 시끌벅적해도 어디 득달처럼 달려오는 사람이 없다.     



“공간을 지배한 자 천하를 지배한다.”     


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인식체계다.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자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골골마다 사람이 사니, 이곳 내포 땅도 한강 이남이요 금강 이북이라, 한남(한강 이남)정맥과 금북(금강 이북)정맥 사이다.     


내포 땅에 우뚝 솟은 산이 해발 678미터  가야산이다. 가야산을 둘러싸고 예산, 서산, 홍성, 태안, 나아가 당진, 아산에 이르기까지 너른 들판을 만들었으니, 자존심이 쎈 충청도 양반은 애써 이 지역을 '내포평야'라고 스스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내포 땅에는 위기에 강한 무수한 인재를 배출하였으니, 고려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충무공 이순신, 의병장 최익현, 독립운동가 윤봉길, 김대건 신부, 청산리 전투 김좌진 장군, 개화파 김옥균, 상록수 심훈, 남로당 박헌영, 만해 한용운이 이지역 출신이다.      




"인간은 공간의 지배를 당한다"     


내 인물론이다. 그들은 부드럽지만 옹골차다. 어찌 백제의 미소를 닮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백제의 미소 마애여래 삼존상은 개심사 너머 용현계곡 가파른 절벽에 자리 잡아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불과 65년 전, 1959년이니 우리의 인식체계는 늘 이렇게 시간이 뒤 엉켜있다.     


국립부여박물관장인 홍사준 선생이 보원사 터 발굴을 조사 하던 중 지나가는 할배로 부터 우수운 이야기를 하나 듣는다.     


“부처님은 잘 모르겠고유, 저 갓바위에 가믄유, 양옆에 본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를 두고 훤하게 웃고 있는 영감탱이가 있는디유. 본마누라는 영감도 밉지만, 다리 벨 벨 꼬꼬 앉아 손가락을 볼 타구를 찌르고 비실비실 웃고 있는 작은 마누라가 더 미워 돌멩이를 손에 들고 냅다 던질라고 벼르고 있지요. 근데 가만히 보면 유, 입술이 방텡이 되고 왼 팔목이 없어진 것을 보면 몰래 맞은 것 같아유. 그래도 영감탱이는 작은 마누라가 좋다고 고개를 살짝 그쪽으로 돌리고 있으니 세상 모를 일이어유”      


내 아무리 근사한 이론으로 쓰인 마애여래 삼존상의 미학적 글을 읽어도 가슴에 와닿지 않았지만, 할배의 구수한 이야기는 금세 무릎을 탁치게 만드니 비유의 현실성 때문이다.      


지금 세대는 도대체 뭔 말인지 조차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 세대는 먼발치에서 보아 왔고, 그때 당시 할아버지 세대는 지배적 인식체계로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을 수 없다.    

 

그런 것처럼 내 백제의 미소 주인공은 제주도 돌하르방 충청도 버전이다.      


둥그런 얼굴에 큰 눈, 펑퍼짐한 코, 두툼한 입술, 불룩한 양 볼이 어디 우리가 상상하는 북방민족의 특유 형태인 갸름한 얼굴에 찢어진 눈매, 날카로운 콧날, 가는 입술 형은 더구나 아니다.     


오호라, 빗속의 상상의 나래는 백제의 미소가 분명 캄보디아 앙코르의 미소를 닮았으니, 아니 시기적으로 앙코르 미소가 백제의 미소를 닮았다고 해야 하니, 이는 백제가 분명 해양 세력의 끄트머리로 바다의 문명을 이은 것이 분명하도다.     




“형식은 본질을 지배한다.”     


여름 보슬비가 장대비가 되어 앞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애써 보원사 폐사지를 향하는 내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일탑일금당형(一塔一金堂型)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봐왔던 불국사는 금당(대웅전) 앞에 두 개의 탑인 다보탑과 석가탑을 두었는데, 여기는 금당 하나에 탑 하나를 세웠으니, 양식이 다른 것은 인식이 다른 것이고, 인식이 다른 것은 비전이 다른 것이다.     


해미읍성에서 홀딱 젖은 몸으로 버섯전골에 면천 막걸리를 마주 대하고 젖은 양말을 벗으니 “충전 USB 포트 단자에서 물기를 감지했어요”라는 경고가 핸드폰 바탕화면에 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축하받을 일이 나이 듦의 징표인 환갑, 진갑, 칠순, 팔순, 구순밖에 없다면 이 또한 갑갑한 인생이다. 내 국제PEN클럽 정회원이 된 마당에 이를 자축하는 기념으로 “점심은 내가 쏜다”를 외치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     


“사람의 법은 땅이요, 땅의 법은 하늘이요, 하늘의 법은 도이니, 그 도의 법은 스스로 그러함이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노자> 제25장)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본받으려는 이, 우리 연암당은 서울에 딸을 두고 단둘 신혼집을 차린 홍 단장 관사에 이르니 또 커피에 자연산 살구, 죽순 볶음을 꺼내면서 슬그머니 막걸리를 또 내놓는다. 오호라, 이것이 저절로 미소짓게 하는 사람의 법의 아닌가?   


#백제의미소 #서산용현리마애여래 삼존상 #앙코르미소 #도법자연 #면천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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