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아파트는 #14
한때 집을 사고, 이 동네에 눌러살자는 생각을 휘몰아쳐서 했다. 문제는 이사였고, 아이의 학교였다. 서울에 살고부터 지금까지 전세로만 살았지, 집을 소유한다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내가? 집을? 말이 돼? 그럴 돈은?
서울에 살면서 7번 이사했다. 많지는 않았다. 이사가 귀찮아서 전세로 한 번 살면, 4년 이상은 살았다. 전세금을 좀 올려주더라도 재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사도 계약도 이젠 지겹다. 매번 새로운 집을 알아보고, 전세금을 받아서 더 보태서 새로운 집주인에게 보내주고, 중개수수료 주고. 신경 쓸 것도 많고 번거롭다.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까, 가슴 졸여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다음 이사가 예정돼 있을 때, 집을 보러 다녔다. 돈은 부족했지만 일단 하나 사보자, 마음먹어봤다.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산책 겸 갔다. 사는 동네 어귀에는 오래됐지만 큰 아파트 단지가 있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다. 아이는 단지 내에 놀이터 그네를 보고 뛰어가 그넷줄을 잡았다. 신나게 그네를 이리 휘적, 저리 휘적 재밌게도 탔다. 나와 아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봐봐. 여기가 복도식인데, 59제곱미터야. 좀 오래됐지만 고쳐 쓰면 세 식구 살기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 거 같은데..”
아내는 뒷말을 멈춘 듯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대답해 줬다. 좀 더 넓은 곳이면 더 좋겠지만, 우리 가정의 재정을 감안할 때 59제곱미터가 적정해 보였다. 지금 전세금만큼만 추가로 대출을 받으면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빌린 돈은 어째 어째 몇십 년 동안 갚으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계산했다.
잘 아는 중개소 사장님에게 전화해, 마침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갔다. 집을 구매할 목적으로 집 보러 간 건 생전 처음이었다. 집에는 나 같은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벽지는 누렇게 변색돼 있었고, 작은 방에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겉은 유명 브랜드 아파트였지만, 집 안은 사람 다 비슷하게 살고 있는 허름한 모습 그대로였다. 낡고 오래된 곳이었는데, 정비는 하나도 안 돼 있었다.
나와서 중개소 사장님은 “주인이 전세로만 돌린 집이다”라며 부연 설명했다. 집에 주인이 살지 않고 셋집으로만 돌리다 보니, 리모델링이 하나도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집인데 주인이 살지 않는 집. 뭐, 나도 세 들어 살고 있으니. 다들 그렇게 집을 사고 세를 놓고 집을 팔고 돈을 버나 보다. 세를 안고 산다는 개념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이게 다른 말로 갭투자 또는 갭투기다.
집을 사는데 내 돈이 아니라, 내가 대출받은 돈도 아니라, 집을 사는 동시에 전세를 놓아 집을 사는 행위. 집을 살 때 많은 돈을 투입하지 않고 집을 사는 행위. 집값과 전셋값 사이의 차이–이를 갭(gap)이라는 영어로 표현하다니, 표현방법도 신기방기하다-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경제적 논리.
처음 듣고는, 신기했다. 그래서, 집 살 사람들이 전셋값을 보는구나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갈 전셋값만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었구나.
눈으로만 보고는, 결국 나와 아내는 그 아파트를 사지 못했다. 대출받을 용기도, 가까운 곳이지만 아이를 전학 보낼 용기도 없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 옆에 오래되고 한 동짜리여서 조금은 싼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지겨운 이사를 한 번 더 했다. 그러고 보니, 서울로 와서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된 거다. 엘리베이터 없는 시골 읍내 아파트에서 살아본 후로, 꼭 20년 만에 다시 아파트로 왔다. 내 것도 아니고 한 번도 손댄 적 없는 낡은 아파트지만, 세 식구가 살기에는 충분했다.
전세금을 일부 올려주거나 반전세로 월세 일부를 추가로 부담하는 것으로 전세 계약을 2번 갱신하는 동안, 눈으로 구경해 보고 사지 못했던 브랜드 이름을 가진 그 아파트는 값이 2배 이상 뛰었다.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이제는 보러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래나 저래나 못 사는 건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