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아파트는 #13
아파트는 후회의 연속이다. 2011년에 결혼했으니까, 그때 샀어야 했다. 아파트가 이렇게 속절없이 오를 줄 그때는 차마 알지 못했다.
결혼하고 살림집을 차렸다. 혼자 살고 있던 나름 깔끔한 빌라에 아내가 들어왔다. 작은 빌라였는데, 막다른 길 언덕에 있었고 5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다른 집보다 전세금이 쌌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저렴한 것을 좋아한다. 돌이켜보니, 임신하고 5층을 엘리베이터 없이 오르락내리락했던 아내에게 조금은 미안하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비싼 아파트들이 즐비한 아파트 대단지가 있었다. 신혼생활을 하면서, 나와 아내는 자주 주택가 비탈길을 나와 대단지를 지나 지하철역이 있는 번화가에서 영화 보고 밥 먹고 장도 봤다.
“아파트 많네, 여기 아파트 찾아보고 하나 사서 살까?”
진짜 살 건 아니지만,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올려다보는 아파트는 대단해 보였다. 언젠가 하나 사긴 해야 하는데, 진짜 살 수 있을까.
지금으로 치면 좀 이른 나이, 서른에 결혼했다. 그때는 생각했다. 마흔이 되면 살 수 있을 거야. 10년 후에는 집값이 좀 더 안정되지 않겠어? 세상 물정 몰랐던 나는 막연하게 미래를 기대했다. 당시 살던 집 주변의 아파트는 평수 따라 좀 달랐겠지만, 4억 원 정도 했던 거 같다. 신혼집 전세금이 1억 정도였으니까, 그 액수의 아파트는 언감생심. 1억도 큰돈인데 거기에 4배인 4억이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실로 서울의 집값은 넘사벽. 13년이 지난 지금, 4억은 10억이 훌쩍 넘었다. 지금은 더 넘사벽이 됐다.
서른의 사회초년병은 헛똑똑이었다. 책을 많이 읽었다. 사회과학과 사회, 정치, 정책에 관심이 많았다. 나름대로 사회가 잘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경제와 사회를 논하는 책을 읽었는데, '향후 집값은 처참히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책이었다. 그 저자는 요즘도 주식시장이 어떻다, 하면서 유튜브에 출연한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이후, 우리나라 경제도 어려웠고 부동산 경기도 하향 안정화됐다. 결과론이지만, 서울의 집값은 2008년부터 2015년 정도까지 하강곡선을 그렸다. 내가 졸업학 결혼하던 그 시절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떨어질 거라는 기대 아닌 기대가 있었던 거 같다. 나는 책을 믿었다. 나는 책만 읽은 헛똑똑이, 책만 읽었지 현실을 몰랐던 시골 선비 같은 사람이었다. 책만 탓할 일이 아니다. 그때도 집 살 돈은 없었다.
혹자는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돈을 못 번다고. 누가 자기 돈 다 들여서 집을 사냐고. 내 돈 조금 넣고 남의 돈 빌려서 사는 거지. 그리고 오르면 팔고. 집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니까. 많은 말속에서도, 나는 돈을 빌릴 성정이 못 됐다. 빚을 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엄두가 안 났고, 무서웠다.
돌아보면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 신혼집에서 2년 정도 살다가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이제야 세 식구 완전체가 됐다. 애를 낳고 아내는 친정에 자주 있었다. 어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이를 절대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내는 친정에 계속 있었고, 나는 처갓집 근처로 이사를 감행했다. 마침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났다. 타이밍 좋다. 어떤 집으로 가야 할까. 돌려받을 전세금 내에서 가야겠지. 조금 더 보태서 가야 하나. 2013년쯤이었다. 그때 집을 샀어야 했어.
포털 부동산사이트를 뒤적여 보면, 그때 아파트값은 지금의 절반 가격이었다. 왜 그때는 살 생각을 못 했을까. 지나고 나니 후회가 된다. 서른 초반의 나는 아파트를 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살 생각조차 못 했다. 그때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 비싸졌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다.
집 없는 설움은 그러니까 코로나19가 한창 퍼지던 시국에 정점을 찍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오를 거 같지 않던 집값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뉴스는, 경기를 호전시키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고 설명해주고 있었다.
아하, 내가 늦었구나. 그전까지 나는 오르는 전세금을 구하고 맞추면 살아낼 수 있을 거라 희망했다. 작은 기대였다. 전세금을 조금씩 늘려 전세를 구한 게 어디냐, 자조했다. 하지만 집값이 먼저 오르고 전셋값이 오르는지,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 올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값과 전셋값이 함께 올랐다. 내가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집값은 오르는 속도가 더더욱 빨랐다. 그 속도를 따라갈 수조차 없다.
말 그대로, 집값은 자고 일어나면 올랐다. 또 자고 일어나면 올랐다. 그 1~2년 동안 집값은 2~3배 뻥튀기돼 있었다. 이제는 서울의 아파트는 몇 억이 웬 말, 10억이 기본이 됐다. 무슨 조화일까.
“어쩌지, 집값이.. 휴..”
아내와 뉴스를 보면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전세계약이 끝나는 내년이 걱정이었다. 왜 결혼했을 때,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아파트 하나 장만할 생각을 못 했을까, 자책했다.
가슴속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후회가 밀려왔다. 답답함, 초조함, 막막함 같은 게 마구 섞여서 올라왔다. 휴,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나와 아내 딸아이, 세 식구가 편안하게 살 공간은 서울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울 집값이 무섭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집을 산다는 것, 빚을 진다는 것, 레버리지와 프리미엄, 갭투자 또는 갭투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빚 없이 열심히 살면 될 줄 알았는데, 세상은 도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물음을 안고,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서울에서 너무 오래 버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