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창민 Jun 25. 2024

각진 방, 각진 벽

내 삶에서 아파트는 #2

시골 허름한 집에서 태어났다. 의사와 간호사의 조력 없이, 오롯이 엄마와 나의 힘으로 나는 태어났다. 좋지 않은 환경, 죽었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잘 나왔다.


집은 흙과 돌로 만든 초가집에, 지붕만 슬레이트로 바꾼 까치구멍집이었다. 까치구멍집은 주로 경북 북부지방에 분포한 전통 가옥이다. 할아버지 이전 때부터 대대손손 살았던 우리 집은 새마을운동 때, 지푸라기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꿨다.


나는 문명을 접한 82년생인데,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모두 깜짝 놀란다. 아내와 딸아이도 고개를 절레절레. 조선시대였어? 되묻는다. 하하 호호, 내 시골살이 이야기는 가족의 재밌는 대화 주제다.




집 구조는 디귿자(ㄷ) 모양이다. 정면으로 바라본다고 하면, 오목한 중앙에 마루가 있다. 마루 오른편이 안방이고, 왼편이 작은방이다. 안방에서 바라보는 앞쪽으로 부엌이 나와 있다. 부엌에서 불을 때면 바로 안방이 따뜻해지는 온돌구조다. 부엌문은 마루 앞 측면에 나 있고, 부엌에서 옆 뜰로 나가는 문이 또 있다. 고양이가 이 문을 자주 이용했다.


마루 왼편 작은방 옆에는 ‘고방’이라고 불리는,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바라보는 쪽에서 창고 앞쪽에는 건넌방 하나가 더 있고, 건넌방 앞쪽으로는 외양간이 있다. 외양간에서 불을 때면 건넌방이 따듯해지고, 그 불로 쇠죽을 끓여 소를 먹였다. 외양간 옆에 외양간이 하나 더 있고, 그 옆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 디귿자 집 앞으로는 마당이 들어서 있다.


까치구멍 우리 집에서 나는 태어났고, 가족은 안달복달 살았다. 


가치구멍집의 모양은 실제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모습의 집이었다.(사진출처: 두산백과)

 



집터에 기반을 잡고, 적당히 굵은 나무를 터 모서리와 벽이 될 곳 중간중간에 세운다. 돌을 한 줄 쌓고 흙과 짚을 섞은 진흙을 시멘트 삼아 바르기를 반복. 나무를 다시 엮어 벽에 세모로 기대 세우고 지붕을 얹었다.


까치구멍집이 각질 리 없다. 벽은 물결처럼 휘어있고 바닥과 벽의 모서리는 둥글었다. 각지지 않았다. 나무에는 옹이가 그대로 박혀 있었다. 벽지가 오래돼 떨어질라치면, 벽에서 흙이 떨어졌다.


문은 뒤틀리고 오래돼 잘 닫히지 않았다. 문풍지를 바른 문이어서 단열은 언감생심. 구멍 뚫리기 일쑤였다. 방에는 지네와 벌레가 쉼 없이 들어왔다. 자연으로 만든 집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연이 만든 전통 가옥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건 좋은 추억이다. 


뒤뜰에는 감나무와 밤나무가 컸고, 그늘진 처마 밑에는 이끼가 수북하게 자랐다. 앞마당 귀퉁이에는 항상 소똥 거름이 산처럼 쌓였다.


사람뿐 아니라 소도 같이 살았다. 불을 때면 소도 같이 따듯해졌다. 마루와 방, 부엌, 외양간, 야외 화장실이 이어져 있었다. 화장실은 재래식 그 자체였는데, 특히 비가 많이 올 때나 추울 때 사용하기 힘들었다. 당시에는 당연한 듯이 이용했지만, 지금 다시 쓰라고 하면 못 쓸 거 같다. 아내가 여자친구였던 시절, 재래식 화장실을 보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재래식 화장실은 누구든 쉽지 않다.  



   

시골 부모님이 읍내 아파트를 처음 산 건, 내가 중학교를 입학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읍내로 가야 했다. 부모님은 읍내에 갓 지은 아파트를 샀다. 지금처럼 대단지 아파트나 높이 솟은 아파트가 아니라, 5층 높이로 땅을 따라 길쭉하게 지은 3개 동이었다. 100세대 정도가 모여사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우리 아파트는 2층에 있다.


처음 살아본 아파트라는 곳. 아파트 집으로 가려면 계단을 밟아야 했다. 집이 각진 네모였다. 벽과 바닥도 각졌고 반듯했다. 흙이 아니었고 콘크리트였다. 현관문에 자물쇠도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이 집 안에 있었다. 신세계였다. 새로운 문명이었다.


부모님은 아파트를 처음 사고, 나의 국민학교 졸업 잔치를 그 아파트에서 거행했다. 시골집이 아니라 아파트에서. 상을 몇 개나 펴고 음식을 차렸다. 동네 사람 몇 명과 학교 선생님들을 불러서 한턱낸 듯싶다. 그렇게 나는 까치구멍집을 나와, 읍내 작은 아파트에서 처음 살았다.


이전 01화 <아파트>에 들어가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