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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민 Jun 28. 2024

열쇠

내 삶에서 아파트는 #3

시골집과 아파트의 차이는 각진 벽과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현관문을 잠그고 다닌다는 점이다. 시골집은 잠금장치 자체가 없다. 무의미하다. 담은 있으나 마나였고 대문은 없었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 누구나 들락날락거렸다.


하루는 엄마가 전화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걱정했다. 집에서는 많이 쓴 사람이 없는데, 엄마는 누군가 도둑 전화를 쓴 거라고 추측했다. 그럴 만했다. 누구나 집으로, 방으로 들어올 수 있는 집 모양새 아닌가. 알뜰살뜰 사는 엄마는 일하러 나갈 때 전화선을 뽑아 전화기를 장롱에 감췄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감추기는 며칠 가지 못했다.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옛날 열쇠


아파트는 자물쇠가 달려 있고, 나는 열쇠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했다. 철제 현관문은 육중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열쇠를 가진 사람만 들어온다. 요즘은 이마저도 전자자물쇠로 바뀌었다. 열쇠 없이도 번호로 문을 여닫는다. 띠디띠딕 누르면 문이 열린다.


그때도 전자자물쇠였다면 더 편리했겠지만, 나는 종종 깜빡하고 열쇠를 집에 놓고 다녔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집에 일찍 왔다. 1층에서 계단을 오르고 2층 현관문 앞에 섰다. 가방 지퍼를 열고 손을 넣어서 잡동사니를 뒤적거렸다. 열쇠가, 안 만져진다. 아차, 방에 놓고 나왔다. 누나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놀다가 올까, 어떡하지.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잠시 고민했다. 아하, 발코니 창문이 열려있지.


1.5층 계단 창문 밖을 보고 사람이 지나가는지 봤다. 사람이 없을 때, 난간으로 나가서 우리 집 창문을 열고 창살을 손으로 잡고 발을 딛고 올라섰다. 창문 안으로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다. 2층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더 높은 곳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열쇠를 깜빡할 때면 종종 활용하는 집 들어가기 신공이었다.


하루는 창문을 열고 발코니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발코니와 거실 사이에 있는 미닫이를 열려고 힘을 줬는데, 꼼짝하지 않았다. 안에서 잠겨있었다. 이럴 때면, 누나가 하교할 때까지 발코니에 갇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휴대폰이라도 있었다면 전화라도 했을 텐데, 때는 90년대 중반 그럴 수 있었겠는가. 하릴없이 기다릴 수밖에.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발코니 창문 아래로 걸어오는 누나가 보였다. 휴.     


“누나야! 문 좀 열어줘.”




자물쇠와 열쇠가 만나 문이 열린다. 아파트는 드나드는 문이 한 개다. 현관문만 잠그면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안전하다. 범죄와 타인의 방해로부터 해방되는 보금자리가 된다.


시골집은 문의 의미가 없었다. 대문 자체가 없었다. 돌담도 의미가 없어서, 사방 어느 곳에서든 사람이 드나들 수 있다. 좋게 보면 개방적이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이지만, 안 좋게 보면 타인의 시선에 노출돼 있고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허름한 다가구나 단독주택이 많았던 예전에는 강도나 좀도둑이 더 많았다.


아파트는 살기에 편리한 면도 있지만, 위치가 높고 현관 잠금장치가 잘 돼 있고 사방이 콘크리트로 둘러 쌓여 안전하다. 현대 아파트는 외부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집이 됐다. 우리 집 도둑 전화를 쓰는 사람도 당연히 없어졌다.     


몇 번 발코니 넘기로 집에 들어온 적을 빼고는, 나도 아파트 열쇠를 잘 챙겨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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