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거나?
" 뭣들하고 있는 것이냐~ 빨리 채비를 할 것이야 어서~~"
파천을 준비하는 내금위장 (內禁衛將) 박성(朴聲)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 전하~~~ 어찌 궁(宮)을 버리고 가신단 말입니까? 이는 조선을 버린단 말과 다르지 않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궁(宮 ) 밖에서 통곡하며 울부짖는 이가 있었으니 왕실의 종친인 해풍군 이기(海豊君 李耆)였다.
"전하~~ 정녕 조선을 버리신단 말씀입니까 전하~~~~ 전하~~~ 전하~~~"
왕실 종친과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온 대궐 안에 퍼지고 있었다.
"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내가 조선의 지존이니라~~ 어딜 간단 말이냐~~~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선조의 불호령에 궐 밖 종친과 백성들은 그제야 통곡을 멈추며
" 성은(聖恩 )이 망극(罔極 )하옵니다 전하~~~ 전하~~~ 전하~~~"
때는 왜군이 조선땅을 밟은 지 열 이레가 지난 사월 스무아흐레였다
" 자~~ 자~~ 자~~ 방금 임금님의 육성(肉聲)을 못 들었는가? 어서 들어가자고~~~ 나라님은 절대로 우덜을 버릴 분이 아니시니~~~ 어서 들어들 가시게나~~~ 어서!!!"
백성들 중 익명(匿名 )의 한 사람이 소리를 내며 해산을 유도하고 있었다.
" 어여~~~ 안 그려도 나라님께서 머리가 지끈 거리실 건데 우덜이 여기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여~~ 어서 "
그는 무수리 서희의 오빠인 서사(徐邪)였다. 마침 어제 성은(聖恩)을 입어 서희의 신분은 수직 상승이 예고된 때였다.
" 전하~~~ 종친과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 참이시옵니까? 전하?"
영의정 유룡의 질문이 선조를 향하고 있었다.
" 어허~~~ 영상!!!!! 영상은 어찌~~~ 짐을~~~~ 흐흠~~~"
선조는 심기가 날카로움을 헛기침으로 말하고 있었다.
"영상 대감~~~ 어찌 전하의 뜻을 그리 헤아리지 못한단 말입니까 영상 대감~~~ 그럼 그 상황에 전하께서 파천을 한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겠소이까?? 어찌 됐던 그 순간은 모면을 하고 훗날을 도모해야 될 것 아닙니까~~~~ 답답하기는 ~~~ 답답해 답답해~~~~"
내금위장 박성의 우락우락한 볼살이 흔들리며 의정부의 최고 대신 영의정 유룡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었다.
" 파천을 가신다 하더라도 백성들에게는 왜? 파천을 몽진(蒙塵)을 해야 되는지는 솔직히 설명을 해야 훗날 사직을 바로 세울 명분이 서는 것입니다. 전하~~~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시려 하시옵니까 전하~~~"
영의정 유룡과 조정 대신들의 간언(諫言)이 이어지고 있었다
" 흐음~~~~ 흐음~~~ 그대들이 내게 그게 할 말이라 하시는 것이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대들이 알아서 했어야 되는 것을~~~~"
선조는 헛기침만 하며 불편한 자리를 피하려 하고 있었다.
" 어허~~~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 들었단 말입니까? 답답들 하십니다 답답들~~~ "
"전하~~~ 파천은 이 내금위장 (內禁衛將) 박성(朴聲)에게 맡기시고 채비를 하시옵소서 전하~~~"
내금위장 박성은 위세 당당하게 신하들의 간언을 묵살하고 있었다.
" 알았느니라~~ 내 내금위장만 믿을 것이니~~~~ 흐흠~~~ 흐흠~~~"
선조는 헛기침을 두 번 하고 자리를 뜨고 있었다.
" 미우라!!! 한성 입성(入成)은 언제 되겠나?"
부장 미우라를 찾는 이는 제 1선봉장 고니시 유키나카 (소서행장 小西行長)였다.
" 하이!!! 장군~~ 현 정세로 봐서는 닷새 안으론 입성이 가능할 것입니다 장군~~"
미우라의 답은 간결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 조센~~~ 조센~~ 어찌 이리도 허술 하단 말인가~~~ 어찌~~~ 성(城)에 군사가 없는 곳이 태반이니~~~ 이것이 어찌 군대라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내성(內城 ) 외성(外城 )이 전부 다~~~"
"좋다~~~ 미우라 닷새는 너무 길다~~~ 나흘 안으로 한성땅에 도달해서 조센 임금 항복 문서를 받아야 될 것이야~~~ 조센~~~ 조센~~~~ 하하하하하하~~~"
고니시는 한성땅에 도착하자마자 조선 임금 선조로부터 항복문서를 받고 정명가도(征明假道) 명나라로 가는 길을 열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일본 내에서 전투로 잔뼈가 굵은 고니시는 대부분의 영주들은 전투가 기울어지면 할복을 하거나 항복을 하여 영지(領地 )를 바치는 것이 불문율이었기 때문에 현 조선의 일련의 상황인 파천, 몽진은 상상을 못 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 상선!!! 채비는 다 된 것이냐? "
선조는 한시가 급하게 한성을 벗어나려 재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예~~ 전하~~ 대신들과 궁인을 합하여 대략 백여 명이 파천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하~~"
상선의 답이 있자
"그럼 서희(徐戱)도?"
"예~~ 전하~~ "
"흐음~~~~ 흠"
어제 성은(聖恩 )을 받은 서희를 비롯해 후궁들과 내시부와 내명부의 일부 인원과 조정 대신을 포함 파천길에 오르는 이는 고작 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어제 성은을 입은 서희를 챙기는 선조는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지존이라 우쭐대는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최악의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 빨리 이곳을 떠야 될 것이야 어서~~~~ 흐음~~~~ "
" 내금위장!!! 한성은 누가 지킨다 했는고? "
선조는 파천길에 시간을 끌어줄 이가 누군지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있었다.
" 예~~ 전하~~ 병조 참판 홍신(洪信)과 도원수 김원, 부원수 진각이옵니다 전하~~ 믿을 만한 자 들이오니 걱정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전하~~~"
"그래 다시 한성에 오는 날엔 그들에게 큰 상이 있을 것이니 그리 교지(敎旨 )를 내리거라!!"
" 예~~~ 전하~~~ 분부 받들겠나이다 전하~~~~"
" 이기~~ 이기~~~ 무신 일이꼬?? "
최장군 호색은 벌겋게 불타오르는 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이~~~ 혜가(혀가)빠지게 한성땅에 왔드만 이기~~ 이기~~ 무신 일이꼬?? 으잉??"
" 보소~~ 이기 몬일인교??"
흥분해서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백성들 중 한 명을 붙들고 호색이 묻고 있었다.
" 보면 모르오~~~~ 궁에 불 지르지 않소!!!!! 이런 개, 돼지보다 못한 놈 때문에 저렇게 하지 않소이까??"
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이는 호색에게 설명하면서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 보소~~~ 아재요!!!! 단디 설명 좀 해 보이소?? 뭐라 카는 깁니꺼??? 예???"
호색은 나긋나긋하다던 서울깍쟁이 말투가 아닌 저주와 분노에 찬 이야기를 들으며 자세히 설명해 줄 것을 청하고 있었다.
" 이 개, 돼지, 쥐똥 만도 못한 나라님... 아니 아니 그 **가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갔지 않소이까?? 어제만 해도 자기는 백성들 버리고 안 간다고 해서 우덜은 철떡 같이 믿고 있었는데~~~~~~~ 이 개 망나니 보다도 못한 ***를 어찌 조선의 지존이라 할 수 있겠냐고~~~~ 어찌~~~ 이 버러지만도 못한~~~ 비키시오!!!!! 내 깡그리 다 불 싸지를 것이야~~~ 왜놈한테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 한 가지요~~~~~ 에이 이 더러운 세상~~~~~~"
호색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아이~~~ 이기~~ 이기~~~ 참 말이란 말입니꺼?? 우찌?? 지 자슥들을 버리고 간단 말입니꺼??? 우찌???"
"나라님 자슥이 백성들 아입니꺼?? 아인기라예??!!! 내 이래 부산서 이 짝 한성까지 우야둔동 왜군들 몰아낼라꼬 이래 이래 이까지 왔다아입니꺼?... 근데 우째 자슥들 베리고 애비가 토낏단 말입니꺼???"
호색 또한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나라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호색은 이 또한 수습을 해야만 되었다.
"하~~~~ 아무리 그 캐도 이건 아이다 아입니꺼 예???"
호색은 백성들의 광기에 찬 행동을 보며... 말리고 있었다.
"당신~~~ 당신도 그 개, 돼지 만도 못한 놈이랑 같은 편이요??"
순간 분노한 백성들이 호색 앞으로 모이고 있었다.
" 아무리 그캐도~~~ 우리가 이래 하몬 지 살 깎아먹는 거랑 다를게 모가 있는교? 안 그렇습니꺼??"
호색은 흥분한 백성들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니~~~ 이자가? 여기 이 자도 같은 놈이요~~~ 이자도~~~"
분노한 백성들이 호색 앞으로 모이고 있었다.
" 보소~~~~ 증말 이래 할 낍니꺼?? 우야둔동 왜놈덜은 막아야 된다 아입니꺼~~ 그캐야 토낀 자슥들 뒤에 죽이든 살리든 할 거 아입니꺼~~~ 안 그렇습니꺼??!!! 내도~~~ 진즉에 부모형제 동료 장수 마카 다 죽었습니더 왜넘덜 한테.... 그놈덜 목은 한놈이라도 더 따야 되지 않겠는교??? 내 지금 죽으나 뒤에 죽으나 똑 같습니더.... 자 함 죽이 보이소~~~~ 자~~~"
호색은 지금 죽으나 뒤에 죽으나 매 한 가지라며 백성들에게 목을 내놓고 있었다.
" 그런데 당신은 누군데 이렇게 앞장서서 우덜을 막는 것이오??"
호색의 당당함에 분노한 백성들은 잠시 멈추고 있었다.
" 내는 저 부산포서 한성까지 오게 된 최장군 호색이라 캅니더~~~ 말했듯이 내는 목심따윈 구걸할 생각도 연명할 생각도 없습니더~~ 그저 저 호랑말코 같은 왜넘들 목 하나 더 딸라고 이래 질긴 목심 버티고 있는 깁니더... 압니더 압니더~~ 을매나 쏙에 천불이 나고 하는지 지도 잘 압니더~~~ 근데 말입니더... 왜넘들이 쳐들어 안 왔으몬 이런 사단도 없었을 낍니더 안그렇습니꺼??? 아재들하고 우야둔동 왜넘덜 목은 더 따 보입시더~~ 안 그렇습니꺼??? 예??? 아재요??"
호색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서로 얼굴을 살피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탄하고 있었다.
" 그래.. 맞는 말이지... 왜놈들이 쳐들어 안 왔으면 우덜이 이렇게 하지도 않고 저 개,돼지 만도 못한 나라님 욕도 안할 것을.... 죽일넘은 왜놈이 먼저지 먼저야~~~."
그러나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은 이미 붉은 화염에 쌓여 하나둘 대들보가 쓰러져 나가고 있었다.
불을 지른 백성도 전소(全燒)되어 쓰러지는 궁궐을 바라보는 백성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 이기~~~ 이기~~~ 이기~~~ 내 우짜면 좋겠습니꺼? 이신(李臣) 행님요!!!! 내는 지금 우해야 되는교??? 지금!!!"
허물어지는 경복궁을 바라보며 호색도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침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화마(火魔)로 무섭게 타오르는 붉은 경복궁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최장군 호색의 눈물이 빗물이 되어 흘러도 소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