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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ther time 자축인묘 Aug 13. 2024

잿빛 하늘

아부지..아부지...아부지...

잿빛 하늘   

                 

 영도네 집은 'ㄱ'자로 펼쳐진 일반 시골집이지만 세간살이는 남 부러울 곳 없이 지내는 시골에서도 알부자로 통하는 곳이었다.

         

한옥연구소 (네이버 블로그)

영도는 집안의 장남이라 어른들이 금이야 옥이야 정말 귀하게 키운 아이였다.

다른 집 아이들과는 좀 차원이 달랐다.     

부지런하신 영도 아버지는 아이들보다 한참 일찍 식사를 하시고 밭이며 논으로 다니셔서

아침 식사 때 대장은 항상 영도 차지였다.

          

영도 동생은 밑으로만 여동생이 셋이나 있었다.

오빠 영도가 밥 먹기 전에는 동생들은 밥상에 앉아도 수저를 먼저 들 수가 없었다.     

영도 할머니는 여자가 먼저 수저를 들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정말 정말 옛날 사람이었다.

           

한 번은 영도와 두 살 차이 나는 바로 아래 동생 영숙이가 먼저 수저를 들어 영도 할머니의 속사포에 기절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어디 오빠도 안 왔는데 먼저 수저를 들어! 기집애들이 아침부터 부정 타게~~ 어여 오빠 델꾸와 오빠 학교 늦어 어여!!"  


영숙인 그런 할머니도 싫었고 오빠는 더더욱 미웠다.

     

"오빠! 빨랑와 할머니가 오빠 안 오면 밥 못 먹게 해 빨리~~~ 어유~~ 내가 이 집에서 나가든가 해야지 뭐 조선 시대도 아니구 뭐야 맨날 어유 지겨워~~ 지겨워"

아직 초등(국민) 학생인 영숙이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좀 심하긴 심한 집안이었다.

   

드디어 영도가 세수는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밥상머리에 앉았다     

“할머니 나 물!!~~~”     

“으이구 우리 강아지 영도도 잘 잤어 우리 새끼~~ ”

하시며 주전자에서 시원한 물을 따라주며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을 만지듯 영도의 볼을 쓰다듬으셨다.    

옆에 앉은 여동생들은 모두 아니꼬워하는 눈으로 할머니와 오빠를 흘깃 쳐다보았다.

    


 아침을 먹자마자 영도는 용수리에 사는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던 수길이, 동현이, 홍철이와 같이 학교로 출발했다.       

잿빛 하늘 pexels-pixabay-414634 인용

그날따라 비가 올 것처럼 잿빛 하늘이 영도의 아침을 맞았다.     

학교는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히 도착되는 그래도 시내버스를 타고 오는 기영리나 용성리 아이들 보단 엄청 가까운 곳이었다.

     

학교에 거의 도착할 때쯤

안 그래도 뭐가 올 것 같은 하늘이 마치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황토물  (연합뉴스)

곧 신작로 주변은 누런 황토물로 범벅이 되었다.     

영도를 비롯한 친구들은 가방을 앞으로 돌리고  고바위 학교 정문을 통과해 옆으로 나있는 여든 일곱 단의 계단을 쉴 새 없이 올라 교실에 도착했다.  

   

“에이~~ 옷 다 젖었네~ ” 하며

수길이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젖은 옷가지를 툭툭 털며 투덜거렸고

pexels-apasaric-1530423

홍철이는 이쁘게 난 덧니를 보이며 웃으며 “에이 다 젖었네~~~”하며 옆에 있는 영도를 보았다     


영도도 앞에 메고 온 책가방을 내려놓으며

“오늘 재수 꽝이네~~~ 집에서부터 비가 왔으면 우산이라도 가지고 올 건데 에이~~”

역시 영도도 마찬가지로 투덜거렸다.  

  

그런데 같이 올라온 친구 중에 동현이만

다른 친구와는 달리 가방을 먼저 살피며 책이 젖지는 않았을까 연신 가방을 훑어보았다.

     

그때 수길이가 한마디 했다.

“야야야~~ 쪼끔 젖어두되 그래야 새 공책으로 사지 걱정 하덜 말어~~~!!!”     

수길이는 님처럼 책과 공책이 젖을까 걱정에 빠져있는 동현이를 보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라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고 있었다.

     

아침 조회시간이 끝나고 첫 번째 수업이 시작될 때쯤  

교무실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며 주번인 태한이가 영도에게 교무실에 가보라 연락을 주었다.

     

영도는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교무실에서 부르지 속으로 생각하며 교무실 복도에 다다랐다.

     

“똑똑~~”


영도는 교무실문을 열고  성 재영 담임선생님 쪽으로 다가가며     

“부르셨습니까? 선생님~”  

성 재영 선생님의 얼굴을 본 순간

뭔가 불길한 예감이 영도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영도야 놀라지 말고 들어... 음... 음...”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차마 입에서 이런 말을 꺼내야 될지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선생님 뭔데요?”  

   

성 재영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음... 영도야 이제 영도도 이 정도면 다 컸으니 네가 집에서 장남이고 남자는 너 혼자니까...   

오늘 소낙비 올 때 아버지께서 몰고 가신 경운기가... 음... 빗길에 미끄러져... 미끄러져...”   하시며

영도를 와락 끌어안으셨다.
경북 PHOTO 뉴스  인용

 선생님도 말을 끝내지 못하며 영도를 안고 울음을 그치지 못하셨다.     

순간 영도는 눈물이 소낙비 보다 더 많이 흘렀다.


선생님의 우시는 모습과 영도의 그칠 줄 모르는 울음소리는 교무실 전체로 울렸고 수업을 준비하시던 선생님 모두는 같이  눈물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네이버 블로그)

영도는 교무실에서 울면서 교실로 들어갔다.

시끄러웠던 교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수길이와 홍철이는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하고 영도한테 다가가

     

“왜? 왜 그러는데? 집에 뭔 일 있어?”

영도는 말은 안 하고 연신 울며 방금 전 풀어놓은 책가방을 다시 싸는 것이었다.

      

반장인 재성이도

“왜 그러는데? 어?”     

그래도 영도는 말이 없었다.

계속 울고 있는 영도를 보면서 교실에 있는 친구 모두는 말은 안 해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고 영도는 가방을 메고 방금 전 등교 시 걸어온 길을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영도의 눈에선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정도로 뜨거운 뭔가가 계속 흘러내렸다.

집에 가는 동안 영도는 계속 이 한마디만 하며 돌아갔다.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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