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입버릇처럼 엄마를 데리고 세계일주를 떠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50이라는 나이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일본은커녕 비행기 타고 가는 여행은 제주도가 전부였다.
아빠 손을 잡고 갔던 제주도 여행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아빠는 병원에서도 '엄마랑 해외 가려고 돈 모아뒀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허공을 맴도는 희망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아빠의 여권을 꺼내 보였다.
한 번도 스탬프가 찍히지 않은 깨끗한 여권.
엄마와 함께 지구를 돌겠다던 그 약속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떠남과 함께 빈 여권으로 남았다.
그걸 보는 순간, 아빠의 미련이 고스란히 전해져 눈물이 났다.
'세계일주'라는 단어는 아빠의 유산이자, 우리 가족의 미완성 퍼즐이 되었다.
엄마 역시 홀로 세 아이를 키우느라, 후엔 아파서 해외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다.
이제 여권에 끼워둔 부모님 사진은 나의 가장 소중한 동반자다.
어쩌다 해외를 방문할 때면, 사진을 바라보며 묻는다.
"엄마, 아빠, 여기 어때?"라고.
아이들에겐 "할머니 할아버지도 같이 여행하는 거야."라고 답한다.
그 말끝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지면, 마치 부모님도 함께 웃고 계신 것 같다.
40대 후반, 아이들이 자라며 생긴 여유는 나를 더 먼 곳으로 이끈다.
발리 해변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를, 파리 에펠탑에서 아빠가 포즈를 잡는 상상을 하며.
여권의 사진은 빛바래지만, 마음은 오히려 따뜻해진다.
막내가 대학에 가면, 그 꿈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겠지.
아빠, 엄마도 함께 갈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