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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n 10. 2024

유난히 짜증 나는 하루

짜증이 눈을 가려 보지 못한 것

오늘은 유난히 짜증이 많이 나는 날이다.


출근하는 길에는

지하철 줄을 새치기당했고,

자리 생긴 앞 좌석에 아줌마가 덥석 나를 밀고 앉아버렸고,

급히 길을 가는 사람에게 어깨빵을 당했고,

물론 사과는 받지 못했고,

아침에 먹은 밥이 상했는지 속이 매스껍다.


퇴근하는 길에는

누군가의 토사물을 밟아버렸고,

예고 없는 비가 내렸고,

차가 빗물을 튀겨 아끼던 옷이 더러워졌다.


놀랍게도 이 모든 일들이 하루 안에 벌어졌다는 것.


'짜증이 많이 나는 날.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그렇게 한참을 구시렁거리며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처음 보는 식물이 있었다. 다육이었다.

아마 엄마가 사 온 거겠지.


나는 다육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았다.


'과연 짜증만 가득했던 하루였을까?'


출근하는 길에는

먼지 없는 하늘에 숨 크게 들이마셨고,

지나가는 강아지가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고,

동료가 수제 마카롱을 선물해 줬고,

점심에 먹은 죽이 꽤나 맛있었다.


퇴근하는 길에는

유난히 신호가 타이밍 좋게 바뀌었고,

갑작스레 온 비에 엄마가 마중을 나왔고,

내 옷을 깨끗하게 빨아 주셨다.


짜증이 가득했던 날. 아니, 짜증으로 감사함을 가렸던 날이었다.


분명 고맙고,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 가득한 하루였다. 단지, 아주 조금의 짜증이 모든 행복을 가렸던 것이었다.


눈을 뜨고 깊게 호흡하면 비로소 삶에 깃든 모든 순간이 보인다.


어렵겠지만, 힘들겠지만 나의 모든 순간을 봐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설령 짜증이 감사보다 많은 날 일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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