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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04. 2024

사랑하게 될 것 같아

[26분 13초] 11화

[2008년]


"오늘도 고생 많았다."

에블린은 고개를 돌리며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았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시간의 텀을 조금 더 두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이들의 대답은 엇박자였다. 균형 있진 않았지만 제법 조화로워 듣기 좋았다.

"이걸로 4번째 모임이구나."

에블린은 종이 뭉텅이를 흔들며 말을 덧붙였다.

", 스위라는 잠시 남아주겠니? 부탁할 게 어."

"알겠습니다."

미소 짓는 그녀 몰래 에블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종이손이라도 베였으면 좋겠다. 그럼 이쁜 핏물이 종이에 번질 텐데'




거대한 스탠드 속 전구가 온 동네를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을 때, 그녀는 에블린 단둘이 있다.

그녀는 50장 정도 되는 종이 뭉텅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열 장씩 스테이플러로 찍으면 되는 거죠?"

여전히 부드러워 보이는 그녀의 손목은 탐스러워 보였다. 잡고 싶은 욕구를 애써 참았다.   

"스위라, 사실 선생님이 너에게 남으라고 한 이유는 따로 있단다."

"?"

고개 숙여 입술을 오물거리는 에블린은 주춤거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국어 성적이 오르지 않았더구나. 혹시 선생님의 진도가 너무 빨랐던 거니?"

그녀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요! 제가 원래 국어를 잘 못하거든요. 특히 비문학에서 많이 삐걱거려요."

그녀의 얼굴은 서서히 내려가더니 이내 바닥의 표면과 수직이 되었다. 에블린은 생각하는 척 자신이 계획했던 말들을 꺼냈다.

"그렇구나. 혹시 너만 괜찮다면 보충수업 끝나고 1시간 정도 더 봐줄까 하는데, 어떠니?"

그녀는 에블린을 바라보며 양손을 두 번 가로저었다.

"지금으로도 충분해요! 혼자 더 공부하면 될 거예요."


에블린은 오른쪽 볼살을 가볍게 들어 올리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차, 자잘한 스킨십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그녀가 부담을 느껴 자신을 피할 수도 있었다. 마음이 너무 조급했다. 웃으며 손을 휘적거리는 그녀를 너무 귀엽게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을 때 손바닥 아래로 살짝 닿은 그녀의 귀는 기분 좋게 바래져 에블린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서둘러 손을 아래로 떨궜다. 다행히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괜찮단다. 나도 마침 시간이 되고, 스위라의 성적이 올라야 선생으로서의 자존심을 킬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주먹을 힘없게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려요. 정말 감사합니다."


책상에 걸터앉았던 에블린바닥으로 뛰어다. 깊은 잠에 빠 마른 나루 위의 먼지들은 폭탄 맞은 것처럼 4센티 정도 위로 붕 뜨고 다시 잠에 들었다.

"단, 개인 수업은 스위라 집에서 할까 하는데 어떠니? 다른 학생들이 보면 선생이 누구를 편애하네 마네-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말이야."

그녀는 맑은 연갈색 동공을 위로 올렸다. 교무실 천장의 하얀색 전등과 책상 스탠드 주황 등이 그녀의 눈동자에 앉았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다 이내 입을 열었다.

"부모님9시에 퇴근하셔서, 그전까지는 괜찮을 것 같아요! 누가 집에 들어오는 걸 안 좋아하시거든요 아, 선생님면 좋아하시려-"

에블린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걱정 마렴, 오시기 전에 끝낼 테니."

에블린이 말한 '끝'은 다른 의미였지만 그녀가 알리 없었다.




에블린은 교무실 의자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이진 않았지만 상상으론 이미 그녀와 손을 잡고 운동장 몇 바퀴를 뛰고 있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그녀와 단둘이 있게 되는 건가, 하고 에블린은 자신의 벌게진 볼을 양손으로 감 쌌다.

"스-위-라, 사랑하게 될 것 같아."

''

그때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둔탁한 소리로 보아 체격이 큰 남자 것 같았다.

"어, 게일이구나. 점심시간에 교무실은 왜 왔니?"


게일, 자신과 종종 마주치곤 했지만 딱히 견제할 대상은 아니었다.

'뭐지?'

평소같이 인사하는 에블린과는 달리 게일의 동공은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하며 방금 내뱉은 혼잣말의 음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 보았다. '들릴만한 거리가 아냐.'

거리가 가까웠다 하더라도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방해받았을 게 분명했다.

'고로 게일은 내 말을 듣지 못했다.'

에블린은 생각했다.


에블린은 널브러져 있는 게일을 일으키려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게일 무시한 채 여전히 앉아 있는 채로 머리를 짚었다.

"괜찮아요, 의자가 안 보였나 봐요. 꽤 아프네요."

게일에게 건넸던 에블린의 왼손은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게일은 재빨리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게일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힘은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무게가 아닌 사막에서 피어난 장미 한 송이를 먹기 위한 몸무림 같았다. 

'얘 뭐지?'

게일의 앞에는 어떠한 자도, 방해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뭐에 걸려 넘어졌다는 , 그러나 에블린은 이런 잔 신경마저 모조리 긁어모아 그녀에게 전부 쏟고 싶었다. 하루 종일 그녀의 향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에블린은 뒤돌며 손짓했다.

"그래, 보건실에 가보거라."

창가 너머로 그녀가 바지를 털고 있었다.

'나의 것, 미아.'

에블린이 그녀와 자신만의 미래를 그리고 있을 때, 게일은 그의 뒤편에 서서 입고리를 들어 올렸다.

"찾았다."

에블린은 들었다. 게일의 자그마한 목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뒤돌아 있어도, 음의 방향이 반대여도, 밖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게일의 목소리를 들다.

'뭘 찾았다는 거지?'

그러나 지금 돌아봐서는 안된다. 게일이 뒤돌아 섰을 때, 그때 봐야 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게일이 마침내 뒤돌아 낡은 문을 옆으로 밀었을 때 에블린은 몸을 틀고 눈을 위로 추켜올렸다.

'도무지 신경 쓰이는 녀석이야.'

에블린은 게일이 서 있던 빈 공간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가만, 게일이 교무실에 왜 왔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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