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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구나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읽고

by 스마일쭈

2022년 18세의 한 청년이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라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는 뉴스가 며칠 동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바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었다.

엄청난 쾌거라며 흥분하는 뉴스를 보고 호기심에 콩쿠르 영상을 찾아보았다.

전에도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등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며 멋지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그의 연주는 뭔가 결이 달랐다.

콩쿠르 중인데도 평소의 모습인 듯 여유로웠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관중들과 소통하면서도 본인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연주가 끝나자 감동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고, 몇 번을 봐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기립박수를 치게 되었다.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임윤찬의 스승이 손민수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또한 탁월하고도 특별했다. 손민수는 "건반 위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러셀 셔먼을 사사했는데, 셔먼의 인문학 정신이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1세대 피아니스트로 "현존하는 100대 피아니스트"에 선정된 바 있는 백혜선의 에세이 출간소식도 보게 되었는데, 언젠가 읽어 봐야겠다고 하고 잊고 지냈다.

시간이 흘러 전업주부로 산지 7년 만에 직장에 다니게 되고 6개월 만에 퇴사를 하면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일단 휴식을 취하며 몸을 회복하고 나니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계발서와 재테크 책을 열심히 보았다.

처음엔 자극도 받고 동기부여가 됐지만, 계속 읽다 보니 이 말이 저 말 같고 수억수십억 하는 이야기들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두뇌가 아닌 마음을 채워주는 책이 간절해진 시기에 신기하게도 잊고 있던 이 책이 내 앞에 나타났다.

경력만 보면 국제 콩쿠르를 휩쓸었고 서울대 음대교수로 최연소 임용되는 등 성공의 아이콘인데 왜 에세이 제목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인지 의문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그건 겸손의 뜻이었다. 50년이 넘도록 연주를 이어가고 있고 매일 8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을 해오면서도 그저 운이 좋았고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이라고 말하는 백혜선 피아니스트.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 긴 시간 동안 연마할 수 있는 것도 본인의 그릇이 크다는 증거인데 말이다.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연주하는 모습만 떠오르는 데 실상은 고독한 수행자였다.

마치 대사만 다 외운다고 훌륭한 연극배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 듯, 연습을 통해 기교를 쌓는 것은 기본이고 틀에 박히지 않은 자신만의 연주로 감동을 주기 위해선 내면을 풍부하게 채워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흑백영화를 보고 시를 읽는다.

또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라면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내면의 소리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직업인으로서 연주자는 변명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매번 최선을 다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야 한다는 프로의 자세는 바로 전에 읽었던 최강야구 김성근 감독과 같아서 ('인생은 순간이다') 반갑기까지 했다. 그녀는 반복 연습 말고는 그 답이 없다고 말했다.

수없이 좌절하고 극복해 온 거장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책을 읽고 나니, 그리고 그녀의 연주 영상을 찾아보고 나니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가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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