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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게 아니라 미련한 거

by 강혜진

백설 공주가 아니라 마녀 같았다. 마녀가 30센티 자를 세워 손등을 내려칠 때도 나는 ‘악’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피아노를 지워 버린 일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줄은.

이모 집에 가면 사촌 언니가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모습이 꼭 공주님 같아 보였다. 부러웠다. 며칠을 졸라서야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지만, 종일 들판을 뛰어다니던 내가 새까만 손톱 밑 흙을 털어내고 건반 앞에 앉아 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덟 살 때의 일이었다.

허리는 꼿꼿이 세워야 했고, 손은 달걀을 쥔 듯 동그랗게 말아 건반을 눌러야 했다.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이는 것도 고역이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건반 소리가 느려지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향긋한 꽃냄새가 먼저 풍겨왔지만, 그 향기와 어울리지 않게 표정은 늘 굳어 있었다. 진한 눈썹은 화가 난 듯 보였고, 목소리도 날카로웠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운 얼굴에 날씬한 체형을 지닌 선생님은 내 눈엔 공주 같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자를 세워 손등을 내리치던 그 사람은 공주가 아니라 마녀였다.

연습 한 번, 동그라미 하나. 빗금 하나, 울음 하나. 그렇게 꾹꾹 참고 연습했지만 실력은 늘지 않았다. 가진 것 하나 변변치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손찌검 한 번 당해본 적 없는 내가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 할머니는 까닭을 물으셨다. 마녀 같은 선생님이 자로 손등을 때린다고 말하며 붉게 부어오른 손을 내밀자 할머니 얼굴은 단숨에 굳었다. 그날 저녁,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학원에 찾아간 할머니는 결국 학원비 봉투를 되돌려 받아오셨다. 그 뒤로 나는 피아노가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훗날 오르간을 연주하며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때였다.

진주교육대학교 기숙사 앞에는 음악관이 있었다. 그 옆으로 피아노 연습실이 줄지어 있었다.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작은 방들이 이어졌다. 방 안에는 피아노와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문이 간신히 열릴 만큼 비좁은 공간에서 한 사람씩 들어가 연습을 했다. 대부분 실기 평가를 준비하기 위한 연습이었지만, 가끔 졸업 공연을 앞둔 선배들이 다른 악기를 연주할 때도 있었다. 운 좋게 옆방을 쓰게 되면 뜻밖의 귀호강을 하곤 했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 경진이에게서 빌려 온 피아노 교재 세 권을 들고 연습실을 찾았다. 다시는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교사가 되려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 학원에 다니는 것도, 교습비를 마련하는 것도 내 형편에 맞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연습실이 비는 순간 얼른 들어가 “도 둘, 셋, 넷. 레 둘, 셋, 넷.” 박자를 맞춰 혼자 연습하는 것뿐이었다.

실기 시험을 앞두고 욕심을 부려 실력보다 어려운 곡을 골랐다. 손가락은 음표를 따라가지 못했고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그날 할머니께 선생님을 고자질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있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상상이 꼬리를 물자 손가락은 더더욱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또래의 한 여자가 찬송가 책을 들고 서 있었다. 기독교 동아리 선배라며 힘들어 보이니 잠시 쉬자고 했다. 좁은 의자에 붙어 앉은 그녀는 학번과 고향, 전공, 교대에 온 이유까지 묻기 시작했다.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묻는 말에 대답을 꼬박꼬박했다. 선배는 마침내 교회에 같이 다니자며 내 휴대폰 번호까지 물었다.

그 순간, 옆방에서 연습하던 룸메이트 수지가 문을 벌컥 열고는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야, 강혜진! 지금 연습 안 하고 뭐 하는데?”

내게는 고마운 호통이었다. 수지는 선배에게 예의 바르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선배님, 죄송해요. 저희 연습해야 해서요. 나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수지의 한마디에 선배는 조용히 나갔다.

왜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거절 한마디 못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날은 내게 ‘착함’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한 첫 번째 날이었다.


고3 시절, 자율학습 시간마다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묻겠다며 내 책상 앞에 줄을 서곤 했다. 그래서 정작 내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자율학습 감독을 맡은 선생님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독서실에 가라고 하신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독서실에 다닐 형편은 되지 않았다. 나는 설명하면 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둘러대며 상황을 넘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험회사 전화를 몇 시간씩 붙들고 있곤 했다. 가입할 생각도 없으면서 거절하지 못해 대화를 이어간 것이다. 한 번은 휴대폰 배터리가 꺼지자 상대방이 오해할까 싶어 내가 먼저 다시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라디오에서 들은 한 텔레마케터의 말이 떠올랐다.

“욕하거나 화내는 사람보다 더 힘든 고객이 누구인지 아세요? 거절을 못 해서 몇 시간이나 상담하다가 마지막에야 ‘가입할 생각 없어요’ 하는 사람이에요. 처음부터 거절했다면 서로 시간 낭비가 없었을 텐데 말이죠.”

착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 싫은 소리를 못하는 마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만 헤아리느라 정작 내 마음은 무시하고 지냈다. 아마 먼저 나에게 착해지는 법을 알았다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남의 목소리만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잃는다. 요즘은 나를 소중히 대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며 오히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여유가 생겼다. 이제 그 마음은 거절하지 못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 내는 마음이다.

그날, 선배를 내쫓아 준 수지가 부러웠다. 수지는 피아노 실기에서 A+를 받았고, 나는 간신히 B를 받았다. 사람들은 나를 착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착한 게 아니라 미련한 거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를 위한 답안지는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느리고 서툴더라도 내 목소리를 먼저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언젠가는 수지처럼 필요한 순간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남 모두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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