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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자, 현수

by 알럽ny

현수는 기뻤다. 지긋지긋했던 가난에서 벗어나 노운구가 아닌 과천에 내집을 마련한 사실이 뿌듯했다. 하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아 산 집이었고 내어줄 전세금 까지 포함하면 들어가서 살기까지 최소 7-8년은 필요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 하기전까지 오롯이 내집로 만들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휴직한 희영은 그렇게 시작된 현수의 부동산 투자를 알지못했다.





종자돈을 모은 현수와 희영은 부동산 수업을 들었다. 비싼 비용이지만 모아둔 종자돈이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빨리 어디에든 등기를 치고 부자가 되고 싶었다. 조원들끼리 함께 임장을가고 시세지도를 그리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었고 다들 마음도 잘 맞았단 그렇게 만난 이들이 함께 투자를 하고 투자 성과를 공유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자연스럽게 가족같은 관계가 되었다.





스터디원들의 모임은 매달 한 번 있었다. 수그러들 줄 모르고 오르던 부동산이었다. 사기만 하면 올랐고, 눈만 뜨면 부동산 이야기였다. 주말이면 시간되는 조원들끼리 모여 임장을 다니고 근처 맛집투어를 했다. 인연은 3년이 넘게 이어졌다. 어느 날엔 양주에 어느 날엔 평택을 갔고 조원 중 하나는 꼭 계약을 하고 돌아왔다. 계약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가족들 명의를 빌리기도 했다. 계약한 다음 주 단톡방에 몇 백이 올랐다는 이야길 들으면 축하를 해주면서도 현수는 불안했다. 자신만 뒤쳐지는 것 같아서, 이 좋은 기회를 눈 앞에서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수저 색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현수는 원석이와 친했고 종종 투자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끼리 분기별로 모여 맥주 한잔마시는 자리에서 현수는 자신이 봤던 물건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다음 주에 투자하는 오피스텔 이야기도 했다. 오피스텔이긴 했지만 자리가 좋았고 그 당시 시세로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강릉까지 가는 기차가 있었고 백화점도 있었다. 현수는 자신이 다녔던 서럽대와도 가까워서 마음이 간다고 했다.





이야길 듣던 원석은 마음이 동했다. 자신보다 월급도 적고, 적은 돈으로 시작한 현수네가 과천에 자가를 가진 것을 보고 내심 놀라움과 부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원석은 지수와 알딸살뜰 모은 돈으로 마련한 킹십리역 인근에 구축 24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수인분당선이 있어서 자신의 출퇴근이 수월했고, 강남역까지 가기에도 환승을 한번만 하면 되었다. 그때는 아이가 어릴 때여서 아이보다는 부부의 출퇴근을 최우선으로 두고 선택했었다. 비록 빚은 많았지만 차근차근 빚을 갚아나가는 재미도 느끼고 있었고, 집값도 교통덕분인지 우상향하고 있었다. 안정감을 느꼈고 지수도 행복했다. 다만 아이가 자랄 수록 24평은 좁았다. 주말마다 좁은 집에 들어차 있는 아이의 책과 장난감에 갑갑함을 느꼈다. 지수도 마찬가지였고, 가끔은 정리되지 않은 집을 보면서 서로 짜증을 내며 다투기도 했다. 34평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이 어렸을 때 가져보지 못한 교육을 아이에게 시킬 수 있는 좋은 지역에 살아가고 싶었다. 더 나은 입지로 이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원석은 현수에게 자신도 투자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수는 놀란 눈으로 웃으면서 원석에게 말했다.

니가 웬일이야. 그때 부천 등기 칠 때 같이 하나 하자고 했더니 재수씨가 자금 관리해서 안된다고 했잖아. 그리고 머리 아픈 건 질색이라고 했었지? 돈이 거저 벌어지지는 않지. 노동소득으로 자본소득을 이기긴 어려워. 사실 불가능에 가깝지. 아 그때 내가 산본에 이야기한 아파트 그거 5천 올랐어. 그때 필요했던 돈이 2천이었나? 3천이었나? 아무튼 그래 잘 생각했어. 너처럼 저축만 하고 빚만 갚으면서 살아가기엔 집값이 너무 올랐어. 다음 주에 같이 가보자. 내가 잘 아는 부동산이야. 내꺼 보는 김에 니것도 좋은 물건으로 부탁해 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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