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대비 : 건강_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Leo Tolstoy-
가끔은 20대, 혹은 30대인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다. 젊은 나이에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40대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아아, 그럭저럭 나이를 먹었구나, 살 만큼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자동반사적으로 든다. 안된 건 마찬가지이지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 같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바로 40대다. 만약 내가 차에 치이거나 창문에서 떨어지거나 병에 걸려 죽게 된다면 아마 나는 ‘40대 주부 한 모 씨’라는 이름으로 뉴스에 등장할 것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수희, 36p]
한수희 작가님의 책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에 실린 40대 주부 한 모씨의 밋밋한 인생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40대는 아까운 죽음이라고 불리기에는 나이를 꽤 먹었다. 40대라는 나이는 20대 30대보다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나이니까. 그럼에도 40대인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먼 미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다. 어떤 사고, 어떤 병이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찾아올지 모른다. 미리 걱정하고 괴로워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고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르니 죽음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답해보자.
70대 저자 마쓰바라 준코가 쓴 <장수지옥>에는 노년기의 생활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취재의 시작은 오래 사는 게 두렵다는 주제였으나 취재 중에 일본에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령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는다. 병이 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노인들은 죽기를 바란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사회가 된 일본은 상황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일본도 노인 돌봄에 들어가는 비용증가 문제로 건강보험료가 올라가고 있다. 질병이 있어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노인들은 유료 노인홈이나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 등에 들어가서 살 수 있으나 이러나저러나 고독하고 쓸쓸한 것은 마찬가지다.
책 전반에서 질병과 생활고로 힘든 노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과 관련된 연명치료와 고독사, 자택 사망, 자연사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연명치료
며칠 전 엄마랑 대화를 하던 중에 이모할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80대인 이모할머니는 현재 요양병원에 계신다. 처음 치매가 걸리셨을 땐 집에서 자식들이 모셨으나 이후 치매가 심해지시면서 파킨슨병까지 얻으셨다. 간병에 어려움이 있어 요양원으로 모셨다. 어느 날 요양원 의사 선생님이 밥을 잘 드시지 못하니 목에 구멍을 뚫어 호수를 삽입하고 그쪽으로 식사를 넣어드리면 어떠냐고 물었고 자식들이 망설이자 의사 선생님은 구멍을 뚫었다 불편하면 다시 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자식들은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동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은 후회한다고 한다. 목에 뚫린 구멍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이 많고, 감염 위험도 높아졌다. 힘들더라도 자연스럽게 둘 것을 그랬다고 이모할머니를 더 힘들게 한 것 같다고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가 자신은 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해두었으니 절대 삽관을 하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의료가 발달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기력이 쇠하면 자택에서 자연사를 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자본이 결합하면서 연명치료라는 개념이 생기고 삽관을 통해 음식을 섭취하면서 생명을 연장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부모님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고독사
고독사를 떠올리면 혼자 거주하던 독거노인이 사망 후 한 달이 지나 발견되어 슬픈 죽음을 맞이했다와 같은 신문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스토리를 생각하게 된다. 고독사는 나쁜 것, 슬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장수 지옥>에도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가즈미(65세) 뇌일혈로 쓰러져 사후 1주일 되던 날 발견 가즈미(65세) 씨의 고독사에 대해 말하면서 작가는 폐 끼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행복한 죽음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을 것이다. 마시던 와인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있었고, TV도 켜진 채였다.
[장수지옥_마쓰바라 준코_131]
고독사는 외롭고 슬픈 죽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상을 꾸리다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서 간다? 가족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못한 부분은 아쉽지만 마시던 맥주잔과 책을 두고 깔끔하게 떠날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고독사를 권한다거나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고독사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일상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트랜즈 코리아 2024>에도 나온다. 하나뿐인 자식이 독립하고 부부가 살다 한 사람이 먼저 죽는다. 어쩔 수 없이 1인 가구가 되므로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장수지옥>에 등장한 가즈미 씨도 1인가구였지만 저자와 모임을 하면서 살아간, 스스로 돌봄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고독사를 조금만 달리 보면 죽음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자택사망, 자연사
우리 할아버지는 폐암 말기로 돌아가셨다. 발견했을 때 이미 수술도 할 수 없을 만큼 전이되어 항암치료를 하다 치료를 관두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시고 한결 편안해하셨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한 달여를 누워계셨고 암 발병 후 6개월 정도 살다 가셨다. 내가 10살 때이니 30년 전이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신 지인의 어르신들은 모두 집 밖에서 돌아가셨다. 암이었든 치매였든 사인이 무엇이든, 병원 혹은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대부분은 집 밖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얼마 전 유튜브로 이시형 박사가 나와서 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70대 이후로 건강검진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암은 몇십 년 세포가 변형되어 생기는 병이고 그것을 발견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은 ‘순노화’하고 싶다고 하셨다. 예전에 그랬듯 나이가 들어 노쇠하면 자연스럽게 떠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병원,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정답일까? 나의 조부모도, 부모님도, 나도 집에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돌아가시는 일이 좋지 않을까?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어 봐야겠다. 나의 사망진단서에는 자택 사망, 자연사(노환)가 적히길 바라본다.
<장수 지옥>을 읽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연명치료는 거부할 것이고, 고독사를 내 스스로 삶을 영위하다가 깔끔하게 떠나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집에서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마흔에 내가 바라는 죽음은 이런 죽음이다.(물론 나이 든 나의 생각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장수 지옥>에 나오는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10가지 지침을 참고하여 한번 생각해 보라.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지, 내가 바라는 죽음은 어떤 죽음인지.
1. 연명치료 여부 결정하기
2. 유언장 작성하기
3. 가족과 친구에게 자신의 의사 전달하기
4. 구급차를 부를 것인가? 말 것인가?
5. 고독사에 대한 어떤 입장인가?
6. 마지막은 집에서 아니면 시설에서?
7. 사는 곳에 방문 진료 의사가 있는가?
8.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9. 자기 나름의 사생관이 있는가?
10. 지금을 즐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