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94세에 돌아가셨다.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드셨고 그 흔한 지병도 없었다. 할머니는 고모댁인 거제도에서 지냈다. 원래는 우리가 모시고 살았는데 나보다 2살 어린 남동생이 대학1학년 때 쫑파티를 끝내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래서 거제도에서 사시던 고모가 엄마 힘들다고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고모는 식당을 했다. 고모가 식당에서 일하는 사이 할머니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쓰러셨다. 여러 시간이 지나할머니 식사를 챙기러 간 고모가 쓰러진 할머니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는데 고관절이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뒤 급격하게 건강이 안 좋아진 할머니는 치매 기와 함께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장사를 하는 고모는 할머니를 돌볼 수 없어서 같은 동네에 사는 작은집에서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갔다. 작은 엄마도 전업주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하면서 할머니를 돌보는 게 힘에 부쳐해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다들 직장을 다녀야 먹고살 수 있는 형편들이라 결국은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고모 말씀으로는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기 싫다며 울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라 시설도 좋고 바닷가 앞이라 경치도 좋은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계속 집에 가고 싶다며 매일 같이 고모한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마음이 안 좋았던 고모는 다시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차마 묻지 못 한 둘째 아들의 안부
할머니가 다시 작은집으로 오시기 얼마 전 아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놀래서 잘 못 되실까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비밀로 했다. 아들을 잃고 또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엄마를 고모가 거제도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고모는 이혼을 하시고 혼자 사셨기 때문에 엄마랑 지내면서 엄마를 위로해 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와 거제도에 내려갔다. 다음날 할머니를 보러 작은 집에 갔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서 나를 보더니 눈물을 흘렸다. 나도 울고 할머니도 울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아들 홍이를 가리키며 "할머니, 쟤 누군지 알아?" 물었더니 "니 껍데기 홍이 아이가?"라고 했다. 남편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야?" 물었더니 "조서방이잖나"... 몇 번 보지도 못한 손주사위와 외증손자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둘째 아들인 우리 아빠를 제일 좋아했다. 아빠는 아무리 바빠도 할머니를 뵈러 1년에 2~3번은 꼭 거제도에 내려갔다. 그런 아빠가 안 오는 이유가 궁금했을 만도 한데 "아빠는 왜 같이 안 왔노?" 묻지 않으셨다. 이미 느낌으로 알고 계셨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셨을까? 이렇게 만난 것이 할머니를 본 마지막이다.
할머니, 잘 가!
내가 인천으로 돌아오고 얼마 뒤 병세가 안 좋아진 할머니는 다시 요양원으로 갔다. 요양원에서도 늘 집에 가고 싶다며 우셨다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임종하셨다. 장례식을 치르러 거제로도 내려갔다. 90살을 넘기고 돌아가셨기에 장례식장 분위는 오히려 친척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모임처럼 즐거웠다. 고모는 할머니 화장터에서 영정을 보며 " 엄마, 가서 큰 오빠, 작은 오빠랑 손자 휘윤이 만나서 재밌게 살아. 사느라 고생 많았다." 그렇게 할머니와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