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벽증이 있다 싶을 정도로 깔끔을 떨며 살았다. 속옷, 걸레, 수건, 양말 등 삶을 수 있는 것은 죄다 팔팔 삶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를 했고 바닥도 손걸레질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싱크대나 욕실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락스를 뿌려 곰팡이를 죄다 없애고 먼지 한 톨 없이 닦고 또 닦으며 살았다. 아들이 음식을 먹다가 옷에 흘리면 바로 갈아입히고 입에 뭐라도 묻으면 즉시 닦았다. 젊을 때라 힘든 줄도 몰랐다.
다시 일을 하고 싶어졌다.
결혼 생활을 부천에서 시작해서 아들이 4살 되던 해 남편의 이직으로 천안으로 내려갔다. 천안에서 4년을 살다가 또 남편의 이직으로 다시 인천으로 올라왔다. 아들이 어릴 때는 잔병치레가 많이 육아에만 집중을 했다. 친정도 시댁도 지방이라 오롯이 독박육아였다. 결혼 전 입시학원 강사로 일을 했었다. 초중등 국어 강사로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아들이 어느 정도 크니 일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남편은 박봉이었고 외벌이로는 생활이 빠듯했다.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일은 아이들과 어울려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학원 강사로 다시 재취업을 하고 싶었지만 8년의 경력 단절은 재취업을 하기에는 너무 큰 아킬레스건이었다. 더군다나 입시학원은 퇴근시간이 보통 저녁 10시가 넘으니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을 맡길 곳도 없었다.
홈스쿨?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공부를 한다고?
마침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홈스쿨'이라는 공부방 창업 열풍이 불었다. 상가를 임대해서 학원처럼 운영을 해도 되지만 살고 있는 집에 방하나를 공부방으로 꾸며 학원처럼 아이들의 학습을 케어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와~ 이거 완전히 나를 위한 거 아냐?" 당장 사업 설명회를 갔고 홈스쿨 가맹 사업을 시작했다. 집에서 일을 하니 아들 사교육비도 안 들고 아들을 케어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선생님, 변기가 막혔어요...
처음 공부방을 시작했을 때는 타인들이 우리 집에 드나드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상담을 하려면 개인적인 공간인 집을 노출해야만 했다. 특히나 남자아이들이 소변을 봤다 하면 변기에 묻히고 바닥에 흘리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손잡이나 책상, 의자 특히 화장실 변기는 꼭 소독을 하고 락스 청소를 했다. 어느 날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화장실에 간 아이가 한참을 오지 않았다. 화장실 문을 두드렸더니 아이가 "선생님, 변기가 막혔어요"라며 울먹였다.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아이가 물을 계속 내려서 대변이 변기에서 넘쳐흘러 욕실 바닥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oh. my god! 일단은 당황한 아이를 진정시켜 내보내고 고무장갑을 꼈다. 세탁소에서 주는 일회용 옷걸이를 구부려 변기를 마구 쑤시고 물을 내리기를 수십 번 반복하고 나니 조금씩 변기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닥에 떠다니는 대변들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긁어모아변기에 넣고 또 물을 내리기를 수십 번... 작은 화장실에 냄새가 진동을 하니 숨을 참다가 구역질 하기를 반복하며 사태를 완벽하게 수습했다.
완벽한 적응
나는 7세 한글반부터 고1까지 아이들을 가르친다. 취학 전인 7세 아이들이나 초등 1학년아이들 중 아직도 화장실에 혼자 못 가는 아이들이 있다. 예전 같으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 화장실 뒤처리를 했을 텐데 이제는 냄새는 나는 것 같지도 않고 응가를 한 아이들 변기물도 대신 내려 준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홈스쿨 운영 14년 차가 되고 보니 원래 나는 이렇게 털털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얘들아 변기가 막혀도 괜찮아. 선생님이 고무장갑 끼고 다 해결해 줄게. 착하고 밝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