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제다
최근 들어 도피를 상상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고등학교 3학년 때와는 다른 먹먹함이 나를 가두고, 나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간다.
막연히 타인과 다른 삶을 꿈꾸었던 나.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 나는 이제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특별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걱정과 이 사회의 시스템은 나에게 일종의 억압을 선사한다.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쉽게 취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다르고 싶다. 특별하고 싶다. 일종의 도전을 하고 싶다.
어쩌면 나의 이 도전에 대한 갈망 자체가 일종의 자기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르게 살 자신이 없기에, 나약하기에, 용기가 없기에 그러한 상상만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도망가고 싶다. 이러한 고민이 없는 곳으로. 멀리 있는 저 서역의 땅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 현실의 고민들이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저 너머로.
최근 들어 도피를 상상한다. 푸른 들판을 뛰어가며 아름다운 하늘을 만끽하는 상상을 한다. 아름다운 절경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나의 눈에 담는 나를 상상한다. 동시에 그러한 나를 찍고 짧은 영화를 만들어보는 상상을 한다.
과거의 나는 시간으로부터의 도피를 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시기로부터 탈출하여 자유가 보장된 시간대에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지금일 것이라고 믿고 살아갔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또 다시 감옥에 갇혀있다.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사회라는 현실에 얽매여 있다. 이 사회와 대학교, 부모님과 나에 의해 나는 묶여 있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도 두렵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희망이 있었다. 조금만 참으면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나의 꿈을 펼쳐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은 십 년 이상의 시간을 둘러싸고 있다. 나는 갇힌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보다 무서운 것은, 돈이다. 그 벽을 깨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두렵다. 그것을 일궈내기 위해 결국 그 현실 속에 갇혀 있을 상상을 하면 지긋지긋하다. 도망가고 싶다. 그런데 도망갈 돈이 없다. 그러기 위해 도망가지 말아야 한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나는 도망가서 돈을 벌고 싶다. 근데 도망갈 돈이 없다. 돈이 문제다. 아니 사회가 문제다. 아니 세상이 문제다. 아니 인류가 문제다. 아니 어쩌면 문제는 나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나약하여 꿈을 펼쳐내지도 못하고 도전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문제이다. 내가 문제이다. 내가 문제이다. 내가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