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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 EP01. 이렇게 행복해도 되니?

인생 최고의 도시

by 임지훈

[여기 꽤 좋잖아?]

20240306_095937.jpg 남미의 독립운동가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거리

이과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비행기, 이동할 때 언제나 마찬가지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많은 남미 여행자들이 인생여행지로 꼽는 후기도 있었지만,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밀레이로 바뀐 후 더욱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져 더 이상 저렴한 아르헨티나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늦은 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자마자 거리 곳곳에서 넘치는 활기가 나를 맞이했다. 밤인데도 식당들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피자나 스테이크를 썰면서 활기찬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환한 표정을 보니, ‘여기가 정말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던 그곳이 맞나?’ 싶었다. 마치 물가 걱정은 남의 일이라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행복한 장면 속에서 또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앞으로 가족 단위로 구걸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웃는 사람들과 그 앞 유리창 너머에서 생계를 위해 손을 내미는 사람들. 한 시야에 담긴 이 두 모습은 너무나 모순적이었다.


[남미의 파리]

20240306_092441.jpg 시내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

해가 떠오르자 도시의 전혀 다른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광장으로 향하니,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나를 맞이했다. 분명 아르헨티나답지 않은 이집트식 건축물이지만, 도시에 묘하게 잘 어우러져 있었다.

어젯밤에는 보이지 않던 도시의 아름다움이 아침 햇살 아래에서 드러났다. 곳곳에 자리한 유럽풍 건축물들이 인상적이었고, 이곳이 왜 남미의 파리라 불리는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한때 유럽보다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20240306_112838.jpg 암환전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진폐다발

아르헨티나는 인플레이션 덕분에 환전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200달러를 바꿨을 뿐인데, 손에 든 것은 거대한 현금 다발이었다. 돈을 받고 펼쳐보니 마치 현금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고통받고 있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색다른 추억이었다.


[아르헨티나와 소고기]

20240306_094117.jpg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즐겨 먹는 엠빠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뭘 먹고살까? 어느 나라를 가던 그렇지만 나는 그 나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음식을 먹는 편이다. 아르헨티나는 사실 대부분 그다지 역사가 길지 않아 이렇다 할 전통음식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페인 식민지시절 전해진 엠빠나다 그리고 넓은 팜파스 지역에 방목하는 소에서 나온 소고기 스테이크가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물론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아 피자 역시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배를 채울 겸 마켓에 들러 엠빠나다를 구매했다. 500페소니까 당시 물가로 약 700원 정도밖에 안 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치킨 엠빠나다 2개를 산 후 벤치에 앉아 끼니를 해결했으니, 1달러 정도로 한 끼를 해결한 셈이었다. 피가 두터운 구운 만두 느낌이었으니 맛도 괜찮았다.


20240306_133514.jpg 내부 인테리어를 축구 관련으로 장식한 레스토랑
20240306_124419.jpg 스테이크를 숟가락으로 썰어주는 퍼포먼스

우리나라에서 스테이크는 자주 먹기 힘든 음식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1일 2 스테이크가 가능했다. 숙소 근처 식당 어디를 가도 2만 원 이하로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었고, 마트에서 사 와 직접 구워 먹으면 3천 원 정도로 즐길 수 있었다. 첫 스테이크는 나름 유명한 식당에서 분위기를 낼 겸, 축구선수 메시도 자주 방문한다는 '라 브리가다'라는 식당에 방문했다.

내부 인테리어만 보면 축구소품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축구 관련 아이템으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꽤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였다. 나는 아르헨티나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초리조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스테이크가 부드러운 걸 보여주려는 듯 숟가락으로 썰어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사실 맛은 그냥 평범했다!) 메시가 자주 찾는다는 유명세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식당인 듯했다.


20240307_121325.jpg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스테이크 하우스

다음날 점심 역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스테이크와 밥 그리고 글라스 와인까지 주문했는데 15,000원도 안 되는 착한 가격(!). 오히려 맛도 이 식당이 훨씬 괜찮았다. 아르헨티나에 오면 왜 사람들이 황홀해하는지, 또 왜 소고기를 꼭 먹으라고 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저렴한데도 부드럽고 육즙이 넘치는 맛은, 이곳이 왜 스테이크의 천국으로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해 주었다. 고기를 좋아한다면 언제 한번 꼭 방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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