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다림의 시작
과거 한때의 나는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였다.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나 병원에서의 일은 보람 있고 좋았지만 밤낮이 바뀌는 생활 속에서 늘 피곤했고, 몸은 쉴 새 없이 고단했다.
몸도 마음도 점점 메말라가던 날이 반복되던 와중에,
내게 선물처럼 찾아온 작은 생명을 잃었다.
내 안에서 자라던 작은 심장이 멈췄다는 소식을 들었던 순간.. 그때부터 나의 시간도 멈췄다.
몇 달간 울기도 많이 울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믿을 수 없었다.
긴 시간 병원에서 일하며 한 번씩 유산을 겪은 선생님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게 내 일이 되니 미칠 것만 같았다.
꼬물거리던 아기의 초음파와 뒤이어 마지막으로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멈춰있던 아기의 잔상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꿈속에서도 악몽을 꾸다 울며 일어나는 날들의 반복이었고, 일어나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미 아기가 없는 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첫 아이를 잃은 고통은 내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날들이 이어지며 더 이상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유산 이후에도 몇 달간 계속 임신 시도를 했지만 꾸준히 실패했고 결국 다음 아기를 위해 교대근무와 불규칙한 생활을 내려놓고, 직장을 떠났다.
물론 오래 일해온 간호사로서의 삶에 대한 미련도 있었지만 오직 언젠가 다시 찾아올 아기를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오직 나 자신을 돌보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고,
그간 좋아하던 대다수의 것들도 자연스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임신을 위해 밀가루 음식, 빵, 과자나 달콤한 간식들을 한순간 끊어버리고, 야식이나 튀긴 음식도 먹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들은 그동안의 내겐 큰 행복이었지만, 그것들을 멈추는 건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이 모든 멈춤의 이유가 다시 만날 아기를 위해서였으니까.
누군가는 멈춤을 잃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 삶에 임신준비를 했던 일 년간의 멈춘 시간은 새로운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내가 잠시 내려놓은 시간들은 모두 아기를 만나기 위한 길 위에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길 끝에서 비로소 지금의 나는 소중한 아기를 품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걸어온 멈춤의 길들이 모두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더 큰 행복의 길이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