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상처, 내 아이의 첫 길
드디어 찾아온 나의 출산일, 수술 예정시간이 12시라 10시까지 춘천에 도착해 입원을 했다. 수술 전날밤 12시부터 물포함 금식을 했고, 입원하자마자 코로나 검사와 함께 입원설명을 듣고 페인버스터, 무통, 영양제는 미리 결제하고 병실배치를 받았다.
전날 떨리는 마음에 밤을 새우다시피 한 터라 피곤하긴 했지만 수술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움만 더 커졌다.
병실에 간단하게 짐을 풀고 산모복으로 환복을 하고 나니 '이제 정말 출산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만삭의 배도 마지막이니 수술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겨봤다.
수술 전 처치로 제일 굵은 바늘인 18G로 한쪽팔에만 수액연결하고, 항생제반응검사하고 소변 줄 꽂고 태동검사를 한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때부터 수술 들어가기 전까지 태동 모니터링을 하는데 안 그래도 이 전날 밤부터 배뭉침이 좀 잦다 생각이 들긴 했는데 모니터상 수축이 강하게 계속 잡혔다. 수축 때문인지 아기 심박수도 내내 160-170대로 높았다. 아마 집에서부터 진통이 있었을 거랬는데 모든 게 처음인 나는 그게 진통인 줄도 몰랐었다.
다만 화천에서 춘천으로 한 시간 동안 넘어오며 방지턱을 넘거나 구불거리는 길을 올 때 유독 심하게 뭉치는 느낌이라 힘들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날이 마침 아기를 낳는 날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뒤, 수술실로 들어가자마자 극도의 긴장으로 수술실은 추웠는데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대학시절 모성간호학 실습할 때 제왕절개 수술과정을 직접 봤던 터라 수술대를 본 순간 그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자꾸 생각나서 더 무서웠다. 주치의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땀을 닦아주면서 격려해 주셨지만 너무 무서워서 손도 덜덜 떨렸다. 곧이어 마취선생님이 간단하게 마취할 때 자세를 설명해 주셔서 새우등 자세를 하고 마취하고, 하체가 뜨끈해지는 느낌과 함께 맨 정신으로 수술했다. 배에서 뭔가 하고 있는 게 느껴지다가 다 같이 배를 꾹꾹 누르더니 허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아기가 나왔다.
아기의 목에는 여전히 탯줄이 두 번 감겨있었고 몸무게는 지난주 예상몸무게 그대로 3kg이었다. 탯줄이 감겨있는 게 힘들었던 건지 일주일 동안 몸무게도 늘지 않았다.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그제야 마음이 놓여서 살짝 눈물이 났다. 아기 얼굴도 잠깐 보여주시고, 나와 아기의 사진도 찍어주셨다. 그 뒤로 수면마취를 하고 후처치를 한 뒤 깨어났을 땐 회복실이었다.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먼저 들어온 페인버스터와 무통주사, 영양제랑 수액을 맞고 하루동안은 꼬박 누워있었다. 마취가 서서히 풀리면서 아랫배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간호사님이 수시로 자궁이 수축되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배를 꾹꾹 누를 때마다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팠다.
수술 당일과 다음날엔 방에 아기를 데려다줘서 잠깐 안아보기도 하고, 남편도 아기를 안아봤다.
남편의 아기 안는 폼은 영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연신 싱글거리며 좋아하는 남편을 보는데 우리가 오래 기다렸던 순간이라 정말 너무 행복했다.
매일 하루 두세 번씩 퉁퉁 부은 다리에 공기압 마사지기도 하고,
마취가 서서히 풀릴 때 다리도 조금씩 움직이면서 다음날엔 소변줄을 빼고 일어나 걸으면서 하루빨리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술 삼일째 되던 날, 폴대를 잡고 간신히 걸으며 신생아실로 아기를 보러 갔을 땐 정말 모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이 잊혔다.
당장의 수술 부위의 통증보다 아기를 보고, 안아보며 강하게 밀려온 벅찬 감정은 말로 다 담을 수 없었다.
배를 가른 아픔 속에서도, 내 눈앞에 살아 숨 쉬는 작은 생명은 이미 나의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들었다.
제왕절개라는 선택은 두려움과 책임의 무게를 동반했지만,
이 상처와 흉터는 내 아이를 세상에 데려오기 위한 가장 용감한 길이었다.
아픔을 품고도 삶을 이어가는 몸처럼, 나 또한 이 날을 품고 매일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