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 : 개인이 실제로 잃은 것은 없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무엇을 빼앗긴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 혹은 개인이 이상적으로 기대하는 삶의 조건과 실제 생활과의 격차에서 비롯되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긴장 상태.
최근에 결혼식을 많이 다녔는데, 가는 결혼식마다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결혼식이었다. 나도 결혼 준비를 하면서 임신을 했었지만 결혼식 직전에 유산하고, 그 후로도 임신이 되질 않아 결국 얼마 전엔 일을 관두고 임신 준비만 하는 중이었다. 몇 달간의 내 한 달 사이클은 배란기 전-배란기까지 배란테스트기에 집착을 하다가, 배란일 이후에는 임신 테스트기의 노예로 사는 거였다. 유산 이후 처음 임신 준비를 할 땐 배란 초음파도 보러 가곤 했는데 내가 사는 곳은 설상가상 분만취약지라 산부인과가 멀어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마다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요가도 하고, 각종 영양제부터 임신에 좋다는 대추차나 맛없는 흑염소 즙을 매일 챙겨 먹으며 나는 늘 노력했다. 남편도 먹기 싫어했던 엽산을 유산 이후 내내 챙겨 먹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아직 20대니까 쉽게 될 거야- 생각했는데 벌써 연말에 다다르고 있고 난 아직도 임신하지 않았다. 쉬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임신에 관한 문제는 더더욱 그랬다.
지난주에 간 결혼식의 피로연에, 임산부인 신부 한복 위의 배를 어른들이 쓰다듬으며 칭찬 일색인걸 보기 힘들어서 밥을 먹다 말고 나온 후로 임신한 사람들의 결혼식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가기 힘들었다. 지난주 결혼식을 다녀온 후로 며칠 비참해하며 울고 난 후로는 바로 다음주에 뒤이어 있는 결혼식은 더 가기 싫었다. 이번에 다녀온 결혼식은 남편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라 어쩔 수 없이 갔어야 하는데, 내 또래의 여자친구가 임신을 해서 결혼을 서두르는 거라고 했다. 나는 이 시기에 진해지지 않는 임테기와 씨름하며 또다시 화학적 유산의 과정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시댁 어른들이 또다시 아기에 대해 묻는 걸 견딜 자신이 없어서 몸이 안 좋아 가지 않겠다 했지만 가족행사는 참석해야 한다며 결혼식 직전까지 참석여부를 묻기에 마지못해 가겠다하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며칠 전부터 죽상을 하고 가기 싫어했다. 결혼식 전날 남편의 정장을 꺼내 다리면서도 혼자 훌쩍거리며 울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잔뜩 흐려진 임신테스트기를 끝으로 결혼식 전날 늦은 생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화학적 유산의 과정을 받아들이고 또다시 평소보다 많은 양의 생리에 오버나이트를 차고 결혼식장까지 왕복 여덟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녀왔다. 남편이 반을 운전하고, 내가 반을 운전했지만 아무리 나눠서 운전할지라도 500km를 운전하는 건 쉽지 않았다. 늦어진 생리만큼이나 생리통도 엄청났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시간마다 진통제를 먹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도착한 결혼식장에서 올 초 결혼식 이후로 처음 뵙는 시댁 어른들이 반겨주시면서 어김없이
'아직 아기를 가진게 아니냐' '결혼한지 몇달인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냐' '다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애부터 빨리 가져야 한다' '얼른 2세를 만들어라'
말씀을 하셨다. 듣기 힘들었지만 억지로 웃으면서 그때마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반갑게 다가온 남편의 할머니는 남편과 내 손을 꼭 잡고 아기 소식을 물으며 매일 기도를 하고 계신다고, 얼른 손주를 안겨달라 하셨다. 역시나 노력하고 있다고, 얼른 가지겠다는 내 말 뒤로 남편은 사람 좋게 웃으며 '셋은 낳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결혼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융단폭격처럼 쏟아진 임신에 대한 얘기들로 마음이 힘들어서 그때부턴 억지 미소를 띠고 표정관리를 하며 울지 말아야 한다 나를 수없이 다독이면서 멍하니 남편 옆에 그저 서있었다. 그 와중에 시댁 어른들이 신부를 보러 가자고 신부대기실로 날 잡아끌길래, 난 못 가겠다고 말하곤 신부대기실 앞에 서있었다. 결혼식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식에선 내내 맞은편의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못하는 걸 해낸 신부를 보면 무너져버릴 걸 알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이동하는 인파들 사이에 끼어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남편이 가족사진을 같이 찍어야 한다고 날 잡았지만 찍고 싶지 않았다. 시댁 어른들이 남편에게 왜 내가 사진을 안 찍냐고 찾아서 남편이 '내 얼굴에 트러블이 나서 사진 찍기 싫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고 했다.
피로연에서 남편의 옆자리에 앉아 대충 밥을 먹고, 또다시 한복을 입은 신부가 인사를 하러 온 걸 보자마자 나는 쫓기는 사람처럼 서둘러 남편에게 차 키를 받아 허둥지둥 그 자리를 벗어나 먼저 차로 향했다. 뛰듯이 다급하게 차로 돌아와서 문을 닫고 나서야 참았던 눈물이 끝도 없이 흘렀다. 아무리 울어도 마음이 후련해지진 않았다. 분명 이럴 것 같아서 오지 않으려고 했던건데.. 오늘의 나는 영락없는 실패자인 것 같았다.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오늘 임신에 대한 물음에 수도 없이 답한 '노력' , 그 노력을 계속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떤 노력을 어떻게 더 해야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내가 노력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는 건데, 노력해서 되지 않는 일이 끝없이 날 무력감 속에 빠뜨렸고 아기를 갖지 않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 같은 말들이 죽을 만큼 괴로웠다. 다 그만하고 싶었다. 이미 나는 이전의 유산들로 너무 지쳐있는데 세상은 내 실패 따윈 관심이 없었다. 그저 끝없이 해야 한다고 몰아치고만 있었다. 어느 순간부턴 나조차 '왜 해야 하는지' '왜 아기를 가져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 모르는 채로 그저 집착하고 있었다. 내 목표가 아닌 목표를 좇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20대, 분명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아기를 가지지 않은 친구가 대다수인데 왜 내가 이런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지 비참했다.
-정말 나는 아기를 갖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가? -결혼한 지 8개월, 아직 아기를 갖지 않은 게 죄인가?
답이 없는 끝없는 물음만 내 곁을 맴돌았다.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던 유산 이후로 오로지 임신 준비를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내 삶을 다 포기하고 오로지 임신에만 매달렸는데, 계속 임신하지 않으면 내가 더 죄인이 될 것 같았다. 솔직히 이젠 임신을 해도 행복할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나를 잃고 목적지도 없이 폭주하는 기관차가 된 것 같다. 내가 절벽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걸 느끼고 있는데, 더 무서운건 내가 누구보다 목적을 잃은 나의 주행을 날 파괴하면서라도 끝내길 간절히 바란다는거다.
나는 그만 죄인이 되고 싶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거, 내가 살면서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분명 아무도 내게서 뭔가를 뺏어가지 않았는데 왜 나는 이런 비참한 감정들을 느껴야 하는건지.. 내가 느끼는 무력감들 속에 끝없는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무력감같은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을 느끼는 것도 싫다. 그만하고 싶다. 나는 충분히 지쳤다. 매일 눈을 뜨기 싫다. 이제 그만 아프고싶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그럼 더이상 아픈일도, 매일 배란테스트기나 임신테스트기를 하며 초조해야할 일도, 눈물로 밤을 지새울 일도 없을텐데. 모르고 싶었던 괴로운 온갖 감정들을 알아가며 힘들지 않아도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