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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가 SOGA Nov 13. 2024

[집] 꿈을 담은 점, 선, 면

집 설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설계가 가장 즐거웠어요.

U건축사무실과 우리 집 설계가 시작됐습니다. 머릿속으로만 그려 본 집이 세상밖으로 나와 도면 위에서 실체를 갖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대로 구현이 가능하기도 하고 제약으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기도 했어요. 또한 건축가님들의 제안이 더 좋을 때도 많았고요. 이 시기가 저의 집짓기 여정 중 가장 재미도 있고 마음도 편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설계에서 좋은 건축물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건축주 입장에서는 완성된 건축물처럼 실체가 있지 않은 설계도에 높은 비용을 들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설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부실한 설계도는 시공 현장에서 더 많은 변수를 만듭니다. 미리 검토되지 않은 문제점을 현장에서 맞닥뜨릴 경우 일정에 쫓겨 충분한 고려 없이 허둥지둥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들이 많아질수록 시간적, 비용적으로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게 되니까요. 따라서 저의 경우는 건축 규모에 비해 설계비만큼은 좀 더 여유롭게 책정을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옳았음을 시공을 하며 여러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계사무실과의 미팅은 1주일에 1회 진행되었어요. 건축가님들이 매주 결정해야 할 것들을 몇 가지 안과 함께 제시해 줍니다. 그리고 서로 회의를 하고 다음 미팅 전까지 저희의 의견을 더해 결정을 합니다. 그러면 저희의 요청을 반영하여 다음 스텝으로 나가는 것이죠. 저와 아내가 의욕이 가득해 수정도 많았는데 건축가님들은 조금도 싫은 내색 없이 성실히 반영해 주셨어요. 지금도 U건축사무실과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인터넷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 설계 때 참고하려고 스크랩해 둔 집 이미지들. 특히 첫 번째 집은 그대로 따라 짓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었어요.


설계를 진행하며 영감을 얻기 위해 인터넷에서 소개된 서울의 예쁜 집들을 찾아가 구경을 가곤 했습니다. 근사한 고급주택이 즐비한 판교의 주택단지, 다양한 협소주택들이 시도되고 있는 후암동은 참 여러 번 갔었습니다. 실내는 아파트, 오피스텔 등의 모델하우스들을 찾아가 참고했고요. 아무래도 당시 가장 최신 기술과 트렌드가 적용된 내부 공간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일 테니까요. 여담으로 당시엔 지인의 집에 놀러 갈 때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을까 하고 볼쌍사납게 남의 집을 두리번거려 핀잔을 받기도 했었네요.



욕심이 점점 커져서 큰 일이에요.

땅이 크지 않아 저희는 여러 층으로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허용된 여건에서 저희 집은 3층까지 건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가족의 주거공간과 제 업무공간을 넣어야 했어요. 그래서 주거공간으로 2개 층을 나머지 1개 층으로 사무실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평생 한 번 일지 모를 집 짓기라고 생각하니 욕심이 더 생기더군요. 경락잔금대출로 이미 대출도 많은 상황이고 건축이 진행되면 추가 대출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약간의 수입도 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치더군요.


'카페나 식당을 위한 상가도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세를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대출상환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3개 층 만으로는 집, 사무실, 상가를 다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건축가능 면적(연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지하층도 넣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지상 3층, 지하 1층까지 총 4개 층으로 이루어진 집을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을 잘 모르던 시절 지하층 건축비가 더 적게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외장도 필요 없고 그냥 땅만 깊게 파면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지하층 공사는 토목 공사, 지하수 처리, 구조적 보강, 방수 및 단열, 그리고 추가적인 환기 및 설비 설치 등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더 많은 자재비와 기술적 요구로 인해 전체 비용을 증가시키고요. 지하층은 지상층에 비해 평당 1.5배에서 2배 정도 시공 비용이 더 많이 들게 되더군요. 


다음 고민은 각 층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가였습니다. 특히 상가를 몇 층으로 할지가 가장 논쟁이 많았던 부분이었죠. 대부분 사람들이 다른 건물들처럼 1층에 상가를 넣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더군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원래도 사람들 왕래가 적은 곳인데 굳이 여기까지 평범한 가게를 찾아올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상가, 특히 요식업을 위한 가게라면 이곳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상가를 3층으로 올리자. 건물이 올라가면 대공원 숲을 조망할 수 있으니 이 가게만의 특별함이 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옥상도 날씨가 좋을 때는 야외 루프탑으로 이용할 수 있어 손님을 맞을 수 있는 공간도 훨씬 넓어질 테니까'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더군요.


"상가는 1층이지. 당연한 거 아니야? 1층이랑 3층은 받을 수 있는 월세 차이도 커"

"그렇게 외진 곳까지 힘들게 걸어와서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누가 3층까지 걸어 올라가겠어?"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 건 이유가 있는 거야."


다 일리가 있는 말들이었습니다. 마음을 바꿔야 하나 고민도 됐고요. 그러나 집 짓기를 선택한 것부터 남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 것인데 이제 와서 같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나중에 후회하며 남 탓을 하느니 제 마음이 가는 대로 해야죠. 어차피 어떤 결과이건 책임은 오롯이 제 몫이니까요.


주방 겸 거실조차도 방이 있는 1층보다 넓은 2층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크지 않은 집이라 최대한 개방감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층별 배치와는 정 반대로 집의 설계가 되었습니다. 

● 지상 3층 ~ 옥상 : 상가, 화장실

● 지상 2층 : 주방, 거실, 다용도실

● 지상 1층 : 침실 2, 화장실

● 지하 1층 : 사무실, 세탁실, 욕실, 창고


그다음 각 층별로 공간을 나누는 작업이 꽤 까다로웠어요. 넓은 집이었다면 큰 고민 없이 시원시원하게 나눌 수 있었겠지만 공간 크기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과감하게 포기할 것들은 포기하고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은 어떻게든 껴 넣어야 했습니다. 버려지는 공간이 있어서는 안 되니 작은 자투리 부분까지 챙겨 활용할 수 있도록 했고요.


그 외에도 전기, 조명, 배관, 난간, 창문 등 셀 수 도 없이 많은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여놓을 가구와 설비들 까지 고려해서 정해야 했어요. 설계가 시공비를 결정하다 보니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비용을 아끼겠다고 무조건 빼거나 저렴한 사양으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집을 짓는 의미까지 퇴색할 테니까요.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공부해 그 적정선을 찾아야 했습니다. 때때로 고민해야 것들이 너무 많아 벅차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 지어질 우리 집에서 보낼 시간들에 대한 기대로 모든 과정은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당시 매주 설계사무실에 전달사항들을 이런 식으로 정리해 보냈습니다. 그냥 구두로 전달해도 되지만 이렇게 정리해 드리니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착오가 거의 없었습니다. 저 역시 나중 수정안에서 요청사항이 제대로 반영이 됐는지 확인하기도 수월했고요.


설계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더군요. 여기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앞으로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니까요. 도면 위의 작은 점, 선, 면 하나가 우리 가족의 일상을 만들게 될 테니 수 없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6개월에 거쳐 설계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원래는 3개월 정도로 계획됐는데 제가 욕심이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설계도를 가지고 구청을 방문해 건축허가를 받았습니다.


설계를 하며 완성될 우리 집을 생각하며 그린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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