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밥그릇을 걱정하는 사람>
나는 오랜 기간 영화, 드라마 스텝으로 일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아주 가난했다. 스텝으로 일을 할 때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지만 기약 없이 쉬는 시간이 생기면 생각이 많아지고 많은 생각은 자연스럽게 걱정을 만들어낸다. 이런 우울감, 무기력감은 나 스스로 세운 목표에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오랜 기간 동안 단지 시간을 흘려보낼 뿐 뜻있게 쓸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짓눌리는 경우가 많았다. 걱정할 것이 없으면 만들어서 하는 것이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경우들이 많았고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나는 길을 지나면서 파지를 줍는 아주머니를 보고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나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비난하고 공격했다.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은 더욱 내 불안을 부추겼다. 그저 바다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배 위에 앉아서 속수무책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는 꼴이다. 환자처럼 의기소침한 나는 평소와 같이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려 하는데 계산대에 주인아주머니는 삼각김밥을 건네었다.
"이거 유통기한이 지난 지 별로 안 되었는데 가져가서 먹어, 아무 이상 없어"
아주머니는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세심하게 목소리와 표정을 신경 쓰고 있었다.
"(잔뜩 우울한 표정을 하고) 고맙습니다."
가난은 얼굴에도 드러나는 모양이다. 좁은 반지하방을 벗어나 나를 발견해 주는 것은 편의점 아주머니, 아저씨 부부뿐이다. 세상에 다들 자기 밥그릇에 관심 있는 사람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타인의 밥그릇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의기소침하고 시큰둥하게 김밥을 받았지만 속으로는 참으로 감사했다. 빨래터에서 밥을 빌어먹던 한신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보답을 하겠다는 한신의 말에 빨래터 아주머니는 "대장부가 스스로도 먹여 살리지 못하다니! 내 하도 불쌍해서 밥을 준 거야! 어찌 너에게 보답을 바란다는 말이냐?" 오히려 비난을 했다고 한다. 훗날 한신은 노파에게 보답을 천금으로 보상을 한다. 세상에는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악인들이 가득하다. 그중에 가장 나쁜 악은 선을 가장한 악이다. 나는 어린 시절 티브이 화면 한 구석에 불우이웃을 돕는 전화의 금액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좋아한 기억들이 있다. 때문에 그 이익을 부정하게 취한 인간들을 뉴스에서 보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다. 나쁜 복지단체들은 후원을 받은 금액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고 타인을 도운 적은 금액을 부풀리기 바쁘다. 그 피해는 단순히 그 금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데 있다. 최근에 해외 전쟁으로 피해를 받은 도시의 복구를 위한 복지단체의 모금활동을 나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또 그런 사람들은 다시 뉴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대로 작은 나눔으로 선의 가치를 실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삶의 예술가들이라고 부를 만하다.
<단골집의 마음>
나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생활범위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생활이 삶에 지루함과 무료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나의 하루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에 하나는 점심을 먹는 것이다. 우리 동내에는 수많은 밥집이 있지만 단지 두 곳만이 내 단골집이 될 수가 있었다. 내가 단골집을 정하는 기준이 있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이다. 밥을 먹으러 가는데 무슨 장사를 하는 사람의 태도까지 보는 것인가? 나는 항상 돈이 부족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오히려 팔아주고 싶은 마음에 음식을 더 시키기도 한다. 내가 쓰는 돈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나에게 있어 돈을 쓰는 것은 상대방을 응원하는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 서울 중심에는 유명한 전자상가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고 PC게임의 메카로 2000년대 초반까지도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황금알을 낳는 길목"이었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손님을 기만하고 호구로 취급하는 사태들이 만연해졌다. "손님 맞을래요?"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나 또한 전자상가를 구경하면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지나갈 때는 뒤에서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다. 2010년이 넘어서 인터넷의 발달로 손님들이 전자상거래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시세를 비교하는 사이트들이 생겨나면서 오프라인 시장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런 몰락에서 "자업자득"이라는 말을 쓸 뿐 동정하는 여론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손님에 대한 기만 사례를 보면 또 유명한 장소가 수산시장이다. 수산시장은 바가지요금, 상품바꿔치기, 저울 치기와 같은 수법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겨 왔다. 즉각적인 보상, 단기적인 이익때문에 수산시장은 장기간 신뢰를 잃어왔다. 우리는 어린 시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동화를 보면서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동을 보며 바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이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고 사회의 성장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며 이익을 챙긴 집단들은 2025, 2026년 사회의 불황과 무관하지 않다. 장사라는 것은 단순히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장사란 반대로 손님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인사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인사라는 것이 손님으로서 대단한 대접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건 찾아오는 손님을 긍정하고 환영하는 일이다. 행여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나가는 손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매장이 이동하지 않는 이상 손님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단골집으로 이용하는 식당들은 단지 손님을 그저 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가치를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 호인들이다. 자연스럽게 손님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모텔 청소 아주머니>
촬영일을 하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숙박을 하는 일이 잦다. 운이 나쁠 때는 담배냄새가 배어 있거나 잠시도 몸을 누이고 싶지 않은 더럽고 눅눅한 이부자리를 이용해야 하지만 운이 좋으면 깔끔한 방을 쓸 수가 있다.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방에서 하는 일은 많지가 않다. 방에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는 정도이다. 하지만 술자리를 치울 때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나는 돈을 내었으니 얼마든지 이 방을 지저분하게 써도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이 먹은 것들을 최소한 쓰레기통에 넣어두는 사람이 있다. 한 번은 촬영으로 춘천에 머물던 때를 기억한다. 방이 아주 깨끗하고 창밖으로 트인 풍경이 서울과는 달라서 마음에 들었다. 아침에 잠시 편의점을 다녀오는데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내 방에서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고 방에서 하는 일은 잠을 자는 것뿐이라 여전히 방은 깨끗했다. 나는 청소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주머니에게 물과 수건만 새로 채워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아주머니는 "배게피랑 이불을 바꾸어 주겠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 모습이 놀라웠다. 아주머니는 내가 빨리 휴식을 할 수 있게 서둘렀다. "베개 피는 매일 바꾸어 줘야 해~" 손이 어찌나 빠른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도 매일 청소해 주고 신경 써야 해 얼룩이 생기기 시작하면 지워지지 않아" 짧은 대화지만 나는 아주머니가 아주 따뜻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프로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숙소가 깨끗한 방을 유지하는데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코로나 시기 우리의 생활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특히 캠핑이 유행을 하고 차박이라는 말도 유행을 하였다. 하지만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 때문에 동내주민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진실로 선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들키지 않았다고 해도 나 스스로는 알고 있는 일이다. 고개를 돌린다고 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행동이 숨어있는 자신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일이다.
<파지를 줍는 사람, 구두를 고치는 사람>
나는 응암동에서 거주를 할 때, 대림시장 한가운데 상가주택에 살았다. 처음에는 넓고 저렴한 방이 마음에 들었지만 거주를 하면서 점점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방에 바퀴벌레가 아주 많았다. 특히 시장에는 바퀴벌레가 먹을 것들이 아주 많아서 덩치도 정말 컸다.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불쑥!!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서 불쑥!! 한 번은 잠을 잘 때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바퀴벌레를 손으로 덥석 잡았는데 손을 가득 채우는 묵직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른 불을 켜고 그 바퀴벌레를 확인했는데 눈도 얼마나 큰지 우리는 눈을 마주쳤는데 바퀴벌레도 아주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것을 화장실 변기에 내렸다. "잘 가 바퀴벌레야" 또 집주인이 옥탑방 옆으로 지어놓은 불법건축물을 철거하는 공사소음으로 나는 결국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남향에 빛이 잘 들어오는 좋은 방을 구하게 되었다. 새로운 장소에 정착을 하면서 조금씩 동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익기 시작한다. 우리 동내에는 종이, 파지를 줍는 아저씨가 있다. 작은 몸에 군살 하나 없는 분인데 성실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어느 날 마주 오는 아저씨는 나를 보고 급하게 손을 몸 뒤로 숨기는 모습을 보았다. 아저씨는 한쪽 손이 없으셨다. 나는 태연하게 옆을 지나갔지만 손을 숨기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문득 나는 초등학교 친구 중에 한쪽 귀를 잃은 친구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친구는 머리를 한쪽으로 길러서 귀를 덮어버렸다. 호기심이 많은 친구들이 귀를 구경거리처럼 보고 있으면 당황하던 친구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아저씨의 마음에 상처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나는 항상 부지런히 종이 박스를 치우는 아저씨의 모습을 대단하다 생각했다. 또 동내에 구청 옆으로 나무들이 길게 늘어선 예쁜 길이 있다. 그 끝에는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구두 수선집이 있다. 수선집 아저씨는 어떤 이유인지 허벅지 아래로 다리를 잃으시고 전동휠체어에 의존을 하며 살아가신다. 자신의 다리는 다쳤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걸음을 위해서 구두를 수리하시니 이것 또한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예술가들>
정주영 회장님은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 현대의 창업주이다. 특히 1971년, 한국은 배를 만든 경험도, 조선소도 없었기에 차관 승인이 거절될 위기에서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 건설 자금을 빌리기 위해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아가 주머니에서 500원권 지폐를 꺼내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라고 설득하여 차관 도입에 성공한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이다. 1972년 울산에서 조선소 기공식을 가졌으며, 불과 2년 만인 1974년 6월, 세계 최초로 조선소 완공과 유조선 2척의 명명식을 동시에 거행하며 현대조선소의 시대를 열었다. 그런 정주영 회장님이 평소에 강조하는 말이 있는데 검소함과 성실함이다.
"우리 다 밥 3끼 먹고 똑같이 일을 한다"
"자기가 주어진 위치에서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어렵게 살고 아주 긍정적으로 쉽게 즐겁게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즐겁게 재밌게 자기를 그 위치에서 할 수 있다"
한 번은 인터뷰에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정주영 회장님은 "자신은 조금 성실한 노동자이고 부자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라고 말한 인터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정확하게 찾아보려 했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틀릴 수 있음, 주의)
한 번은 방송에서 농약통을 짊어지기 위해서 40년 동안 운동 중이라는 할머니가 러닝을 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는 "러닝머신이 3대째라니까요. 내 나이에 농약통 짊어지고 다는 사람 별로 없을 거예요" 말씀하신다. 각자의 위치는 다르지만 나는 할머니가 정주영 님처럼 아주 성실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헌신을 다하는 모습이 아주 닮아 있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코로나와 경제위기상황에서 코인과 주식의 열풍이 불었다. 그 혼돈의 시장에서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있는데 왜 힘들게 푼돈을 벌어가면서 노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노동을 하며 일을 하는 사람의 가치를 폄하하는 말을 했다. 노동을 하면서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정말 바보들만 남은 것일까? 나무를 서 있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 흙속에 숨어서 일을 하는 뿌리 덕분이 아닌가? 게임에서도 아이템의 가치를 지켜주지 못하고 불법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상황에서 운영자가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게임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사회가 선의 가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선의 가치를 행할까? 조롱당하고 멸시당하는 것이 노동자라면 우리 스스로 각박한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불행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살고 있는 집, 고요한 밤에 누워서 잠을 기다리고 있으면 밖에서 플라스틱을 찌그러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잠을 청하는 늦은 밤에도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통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추운 밤 그들은 어디에 몸을 누이는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