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대해서>
우리는 아이들의 덩치가 커 가면서 자연스럽게 정신도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 같은 경우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스스로 정신적으로 깨어나 있으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쉽게 타인에게 선동되고 잘못된 사상에 빠지기가 쉽다. 나는 20살을 한참 넘기면서도 성격, 생각, 감정, 같은 단어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 장점은 모르는 단어를 많이 검색해 볼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작용" 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나 스스로의 대화" 라고 생각한다. 학생 때 부모가 미숙한 아이들의 자아가 되어 움직이면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을 멈추게 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솔직해지는 일이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진다. 오히려 부모는 자식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생각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할 때 "이런 일도 똑바로 못 해" 그 문제를 단박에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는 과정을 지켜봐 주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바른 훈육이다. 부모는 자신들이 항상 옳다고 여기고 아이들에게 복종을 요구한다면 아이들은 부모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목소리와 욕구를 억누르고 기꺼이 순종하는 꼭두각시가 되는 일은 선택한다. 아이들의 선택을 부모는 기쁘게 여기고 "착한 아이" 라는 명예를 주며 장난감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고만 든다면 아이는 망가지고 말 것이다. "이런 공부는 네가 원해서 하는 거잖아" 자신이 버틸 수 있는 데까지 참고 있는 아이들은 어느 순간 부모와의 소통을 포기하고 침묵을 선택하면서 안전한 방안에 자신을 숨길지 모른다. 항상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는 것 밖에 모르는 아이의 달라진 태도에 "착한 우리 아이가 변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식이 잘 못 되는 걸 보고 있으란 말이야?" 스스로를 방어하고 정당화시킨다. 우리는 자신의 순수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어리숙하다 미숙하다고 오판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두 가지 경험을 종종 한다. 하나는 작품이 나오기도 전에 철저한 조롱과 재판을 끝내고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나는 특정한 작품을 보려고 극장에 들렀는데 관객은 아무도 없어 혼자 극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영화를 볼 때 규칙이 있다. 영화는 보다가 중간에 끊기고 다음에 볼 때는 꼭 처음부터 보는 것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에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예고편이나 그 어떠한 정보도 보거나 듣지 않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온 나는 "응 의외로 나쁘지 않은데 이런 점이 재미있고 좋았던 것 같아" 생각을 하며 나왔다. 영화에 대한 여운이 남아서 휴대폰으로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니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 밖에 없었다. "다들 영화는 본 것 맞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경험은 반대의 경우이다. "명감독의 복귀작!! 할리우드를 깜짝 놀라게 하다!!" "평론가 누구 누가 재미있다 극찬한 영화" "뛰어난 영상미 놀라움의 연속!!" 호들갑을 떤다. 막상 영화를 보는데 그것은 단지 "나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 멋지죠?" 말하고 있을 뿐 도저히 산만해서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게 무슨 이야기야?" "이건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영화가 아니야!!" "그럼 어떻게 접근하는 건데??"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얼른 극장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권위 있는 평론가나 지식인의 말을 반박하기 어려워한다. 내가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그것에 반박을 하면서 외톨이가 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뿌리치고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란 보는 사람에 의해서 다르게 존재하기 때문에 타인이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본다의 의미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 즉 인간성을 비추는 거울을 통해 다시 나를 보는데 진정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무리를 모으면 사람들이 생각이 많아진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람이 많을수록 깊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다수의 의견이나 이익에 편승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일에 익숙해지고 존중하는 것이다.
<일체유심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으로, 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이며 특히 <화엄경>에 나오는 중요한 가르침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과 존재가 마음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행복과 불행, 친함과 멀어짐, 아름다움과 추함 등이 외부의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일화'가 대표적인 일화이다. 젊었을 적 원효는 촉망받는 유능한 승려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려고 했었다. 첫 번째 입당은 실패로 끝났고 두 번째 입당 시도에서 가는 도중 날이 어두워져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차에 동굴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웬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어서 거기에 든 물을 들이키곤 달고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다음날 날이 밝은 뒤 일어나 주변을 본 뒤 원효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동굴의 정체는 파묘된 무덤이었고, 그가 마셨던 건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경악한 원효는 구토를 했는데, 직후 썩은 물도 목이 마를 때 모르고 마시니 달았다는 것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고는 스스로 유학을 포기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나무 위키> 또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우리 모두 머리를 깎을 필요는 없다. 한 번은 뉴스에서 살인 사건이 보도가 되었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집에는 그가 작성한 살생부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는 마음에 상처를 입힌 사람은 사소한 사건도 빠짐없이 살생부에 기록해 놓아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살인은 조금의 동정도 필요가 없는 행동임은 틀림이 없다. 다만 나는 저 사람은 참 괴로운 마음으로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속삭인다>
사람의 생각은 속삭인다. 때문에 세상사람들은 더욱 소란스럽게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려놓는 일을 한다. 홈쇼핑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멘트들이 자주 쓰인다. "마감임박!! 마지막 할인!! 한정수량!!"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생각을 할 여유도 없게 끊임없이 말을 요란스럽게 쏱아낸다. 이런 행위들은 사람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흐려놓아야 더욱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정치적인 이슈들이 생길 때마다. 연예뉴스를 국민들에게 뜯어먹을 고기로 던져주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큰 소리를 내다보면 세상은 어느새 너무 시끄럽게 변해있다. 사회는 사람들이 깨어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의 것인데 국민들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고 먹고사는 일에 바빠야 기득권들은 안전하게 도둑질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진 술 취한 사람 우화가 있다. 어떤 사람이 크게 취해 정신을 잃은 채 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발견되어 공작의 집으로 실려 갔다. 사람들은 그의 몸을 잘 씻기고 좋은 실내복을 입혀 공작의 침대 위에 눕혔다. 그가 깨어나자, 사람들은 마치 그를 공작인 것처럼 극진히 대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이 잠시 정신을 잃은 채로 살아온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이 우화가 사람들 사이에서 왜 인기가 높을까? 인간 상태를 제대로 상징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술 취한 사람 상태로 살아가는데, 가끔 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성을 발휘하여 실은 자신이 군주임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세상은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일을 좋아한다.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네모난 화면의 빛에 노출되어 살고 있다.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기 위해서 온갖 자극적이고 소란스럽고 선정적인 영상들로 본능에 자극한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휴대폰에 눈을 떼지 못하도록 사람을 중독시키고 정신을 망가뜨린다. 휴대폰의 영상들은 내가 원하지 않는 요리 영상, 야구 영상, 게임 영상 온갖 것들을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제안한다. 그들은 사회의 건강한 가치를 만드는 일보다 타인의 관심과 시간을 빼앗아 돈으로 바꾸고자 하는 일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아직 결론도 나지 않은 사건, 사고나 타인의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어도 상관없이 타인의 관심을 끌 수 있게 누구보다 자극적으로 전시해 놓는다. "이런 삶의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다. 반대로 우리의 정신을 보존하기 위해 가까이해야 할 것은 조용한 환경이다." 이런 중독의 위험성을 알고 있더라도 사람들은 끊어내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사람의 본성과 의지와 충돌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에 이른다. 공부를 하면서도 휴대폰으로 영상을 틀어두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운동을 하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아주지 못한다. 멀티태스킹이라는 것은 어떠한 일에도 몰입하지 못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단지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몇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인터넷 강의를 틀어두고 휴대폰을 보면서 마음에 안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결국에 집중과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루에 한정된 에너지, 정력, 시간을 원하는 곳으로 양을 몰아가듯이 모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몰입과 집중력을 회복해 간다면 결국에 내가 집중하는 일 외에 것들은 같이 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해지고 거슬리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데 방해가 되는 여러 가지 문제는 피해 갈 생각이다. 그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림 이외의 어떤 것에도 주의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고흐 <영혼의 편지>
사랑하는 것을 만난다면 다른 일에 집중을 나누는 일은 하고 싶지가 않다. 휴대폰의 너머에서 집중력을 빼앗기 위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숨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타인의 목소리에 집중을 하면서 잃어버리는 것은 단지 내 목소리다.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으며 타인의 목소리를 따르거나 추종하며 살게 되어있다. 정보가 넘쳐나고 온갖 소음들에 정신이 팔리게 하는 세상에서 내 목소리에 집중하고 경청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차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 목소리는 항상 속삭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대한 믿음>
면접이란 누구에게나 긴장이 되는 일이다. 마음이 절실해지면 우리는 개성을 잘라내고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어떤 조직은 튀는 사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조직의 특성을 알고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숨기고 그들의 생각에 순종하기를 택한다. 어느새 조직에는 같은 말을 하는 사람밖에는 남지 않는다. 이런 조직에서 "창의성" 은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성이 보존되어야 한다. 글을 쓸 때도 우리는 스스로도 솔직하지 못하는 생각들이 있다. 마음에 일어나는 것들은 이유가 있다. 오염되지 않은 생각,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외면하고 타인을 신경거나 다른 작가의 흉내를 내기 시작하면 글의 매력도 사라진다. 특별한 생각들은 평이한 생각이 되고 만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행동해 보지도 못하고 타인의 의견을 따라만 하다 실패하는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된다. 결국에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우리는 나 이외의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다.
모세, 플라톤, 밀턴이 남긴 가장 뛰어난 공로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이 책과 전통을 무시했고, 남들의 말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는 데 있다.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빛줄기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 개인에게는 음유시인이나 현자들에게서 나오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빛보다 자기 마음속에서 샘솟는 한 줄기 빛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에게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생각을 별로 주목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 버린다.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내일 어떤 낯선 사람이 우리가 늘 생각하고 느꼈던 바로 그것을 아주 그럴듯하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타인에게서 우리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끄러운 상태가 된다.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우리는 자기 생각을 절반도 옳게 드러내지 못하고,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신성한 생각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긴다. 하지만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 신성한 생각은 자기 형편에 알맞고 확실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충실하게 밖으로 표현해야 마땅하다.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은밀한 마음속에서 당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그대로 진실이 된다고 믿는 것, 이것이 천재(genius)의 행동이다. 당신의 머릿속에 숨은 확신을 밖으로 드러내면 보편적 의미를 획득한다. 가장 깊숙한 것은 적절한 때가 되면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세상에 내가 믿지 못하는 것들에 타인의 믿음을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타인이 그럴 수 있을까? 온 세상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조롱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나 스스로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편견>
세상은 다양한 편견으로 가득하다. 나는 시끄러운 장소를 정말 싫어한다. 때문에 나는 대화를 나눌 때에 상대방이 듣기에 필요한 소리 크기를 넘어가는 일이 없다.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너는 덩치에 안 맞게" 라는 말을 자주 쓴다. 또 조금 흔한 편견으로는 "가난한 사람은 착하고 부자들은 악하다는 것" 물론 부자들이 돈이 많다는 이유로 쉽게 타인의 추종을 받거나 동경의 대상이 되지만 그 사람이 전세사기나 투자사기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부동산과 관련된 기업의 사람들이 먼저 알게 된 정보로 부동산을 사들이는 행위들이 발각되면서 국민들의 질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들은 그런 비리를 저지르며 힘 있는 사람이 되고 그들의 목소리는 곧 정의가 되는 것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나의 후배가 부동산기업의 비리를 보고 "나는 왜 저기에 속해지 못 했을까" 하는 말을 듣고 나도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들은 다른 국민들로 하여금 상대적인 박탈감을 일으키고 가치관을 분열시킨다. 또 다른 편견으로 "장애인 혹은 노인들은 착하다." 이런 편견들은 "세상은 선하다" 강하게 믿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길을 건너기 위해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빨간 신호에 천천히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 차가 없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버스를 손으로 막아가며 길을 건넜다. 그 뻔뻔한 모습을 보고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확신했다. 일본에는 아주 자존감이 높기로 유명한 호스트 선수가 있다. 언젠가 인터뷰에 나와서 "NO라고 말을 할 줄 모르는 남자의 YES는 가치가 없다" 말했다. 뭘 먹어도 "맛있다! 맛있다!!" 말하는 사람의 말은 믿기 힘들지만 "이건 좀 입에 안 맞다" 혹은 "덜 익었나?"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이 좀 투덜거려 보일지는 모르나 "이거 진짜 맛있다!!" 말을 해주면 정말 가치가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노인분들 중에도 정말 존중받아 마땅한 어른도 있고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온 사람들도 있는데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존중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선하게 살아온 어른들의 가치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추운 겨울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이 음식을 받아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참 힘든 시기에서 열심히 사는구나" 앳된 얼굴을 보며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곧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체 신호를 무시하고 사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겉을 보고 우리는 그의 진정한 인간성을 알 수는 없다. 때문에 나는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진한 향수를 뿌리는 일을 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다시 내가 편견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역발상>
역발상이란 쉽게는 상황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역발상에는 아주 재미있는 사례들이 있다.
1. 어느 날 대규모 사과농장에 큰 태풍이 몰아쳐 사과의 90%가 낙과해 버리는 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과농민들은 농사를 망쳤다며 우울해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많은 농민들이 예년에 비해 이익이 꽤 줄어들거나, 개중엔 적자가 난 농민도 있었다. 그러나 한 농민은 생각을 뒤집어 남은 10%의 사과를 '안 떨어지는 사과'라고 이름 붙여 학부모들에게 팔았으며, 예년보다 훨씬 뛰어난 흑자를 보았다. '90%나 떨어졌다' 를 '10%는 떨어지지 않았다'로 뒤집은 것. 이것이 아오모리현에서 팔리는 합격사과의 기원이다. <나무위키>
2. 칠천량 해전은 정유재란 당시였던 1597년 7월 16일 새벽, 경상도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의 해협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군의 기습을 당해 괴멸당한 전투다. 피해규모는 판옥선 148척 침몰 및 실종, 거북선 3척 침몰 전사자는 7000~8000명 사이라고 한다.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 장군님은 복직된다. 임금인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시키려 하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장계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이후 1척 추가)라고 올린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은 명량에서 10배가 넘는 일본함선을 마주하게 된다. 이마저도 압도적인 전력차이에 감히 명령에도 나아가지 못하고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 한 척만 홀로 수비를 하고 있다가 뒤늦게 아군이 합류하면서 전세를 뒤집으며 전쟁을 큰 승리로 이끈다.
3. 개인적으로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잘 녹지 않아서 먹기가 편하다고 생각한다. 데헷
4. 몽골의 러시아 침공 당시 러시아는 추운 지역이라 감히 몽골군들이 쳐들어 오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몽골의 장군 수부타이는 오히려 강이 얼어서 말들이 건너기 쉽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해내기 어려워했던 러시아를 침공했다.
역발상의 사례는 다 소개를 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항상 어떠한 일에도 한 가지 면만 있을 수가 없다. 빌딩이 높을수록 그림자도 길고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다. 때문에 우리는 양면을 다 들여다보아야 보다 정확하게 그 사태를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영화를 하면서 잘 나가는 스타 배우를 보는 일이 많다. "참 저 사람은 걱정이 없이 살겠다."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뉴스에서 안 좋은 소식으로 모습을 비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살면서 자신이 짊어지는 인생의 짐은 자기 자신밖에는 모른다.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추어 자신을 초라하게 느낄 필요가 없고 자신의 상황이 좋다고 해서 너무 들뜬 기분을 느낄 필요도 없다. 긍정적인 요소들이 분명히 있는데 부정적인 요소들만 보고 있으면 온통 그것이 전부 인 것처럼 보인다. 하루에도 많은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지만 단 한 가지의 나쁜 일에 우리는 그것을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하루를 망쳐버리는 일이 있다. 수험생의 경우 시험이 두려워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절벽 끝에 서 있는지도 모르고 "더 절박하게" "더 절실하게" 뒤에서 등을 떠미는 행동들을 한다. 그리고 시험을 치른 이후에도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시험을 잘 못 보았다고 망한 20살 청년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에게 당시에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그들의 생각을 그렇게 각박하게 좁은 시야를 만들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부정적인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동전의 양편처럼 긍정적인 일들을 같이 가지고 있다. 복중화 화중복 복안에 화가 있고 화안에 복이 있다. 걱정할 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 하는 것이 인간이다. 다만 비가 올 것을 걱정해서 미리 우산을 피고 있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