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김밥>
1997년 우리나라는 큰 위기를 맞으니 바로 IMF 금융위기이다. 그 당시에 분위기는 아주 흉흉했던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절도 강도 사기 등의 재산범죄와 폭력범죄 생계형 범죄들도 많이 일어났다. 나는 당시 너무 어린 나이여서 그런 것들을 자세히 알 수도 어려움을 체감할 수도 없었지만 뉴스에 금모으기 운동을 보며 IMF라는 단어만큼은 익숙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런 경제적인 이유에 김밥천국은 1990년대 후반에 저렴하고 다양한 메뉴로 전국적으로 인기를 누렸다. 내가 살았던 동내 김밥천국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입구에는 당당하게 김밥 한 줄 1000원이라는 글자가 붙었던 일을 기억한다. 김밥천국은 특히 운동회와 소풍날에는 특히 더 사람들이 붐비고 활력이 넘치는 가게였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뭔가 소풍날에는 직접 김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김밥집을 이용하지 않으셨다. 소풍 전날이면 나는 엄마와 같이 김밥재료와 과자, 음료 장을 보았고 소풍날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는 일을 하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소풍날 아침 엄마는 정성스럽게 만든 김밥을 차곡차곡 도시락통에 담고 남은 김밥을 아침으로 내어주시고 더 남은 김밥은 통에 담아서 소풍을 마치고 돌아와서 간식으로 먹을 수 있게 식탁에 놓아두신다. 그런 다음에 엄마는 또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시니 엄마의 존재는 초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소풍이라고 하면 학교 근처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고 돌아오는 것 말고 특별한 것은 없지만 역시 하루 동안은 공부를 하지 않고 일찍 끝나고 집으로 오는 것이 좋았다.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가방을 한구석에 던져두고 컴퓨터를 킨다. 당시에는 재믹스 페미컴 같은 팩게임에서 벗어나 컴퓨터 게임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별의 커비 꿈의 샘, 알라딘, 삼국지 영걸전 같은 게임을 즐겨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야무지게 엄마가 식탁 위에 놓아둔 김밥통을 챙겨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나는 소풍을 가서 먹는 김밥보다 항상 집에서 먹는 김밥의 맛이 좋았다. 그리고 절반쯤 먹었을 때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나보다 2살 터울의 형이 조금 더 늦게 집으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나는 절반의 김밥을 조금 침범하면서 겨우 김밥의 뚜껑을 닫고 다시 식탁 위에 형 것을 남겨둔다. 하지만 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게 가는지 결국 나는 또 남은 김밥까지 다 먹어치우고 용서를 기대할 뿐이다.
<김밥의 가격변화>
시간이 지날수록 물가는 점점 올라갔다. 1000원의 김밥은 가격은 유지하면서도 점점 안에 들어가는 재료는 부실해지고 점점 얇아져 갔다. 결국에는 1000원의 가격이 무너지고 아주 짧은 1500원의 시간을 지나 2010년 가까이에는 2000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김밥천국 입구에 붙어있는 1000원 숫자에는 임시방편으로 2라는 숫자로 1이라는 숫자를 덮어 놓았다. 그럼에도 김밥은 여전히 저렴한 가격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음식이었다. 2025년 서울 지역의 평균 김밥 가격은 2025년 11월 기준 3,700원까지 올랐다. 참치김밥 4500원에서 5000원 정도 하니 이제 김밥이 서민음식이라는 말은 동의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어릴 때 "만원에 행복"(2003년~2008년)이라는 프로그램이 유행을 했다. 만원의 행복이라는 것은 배우, 가수 혹은 유명 연예인이 만원의 돈으로 한 주를 버티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김밥천국 돈까스가 9천원 치즈, 고구마 돈까스가 딱 1만원이다. 김밥집 앞에는 더 이상 숫자를 바꾸어 놓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앞자리에 숫자를 그냥 때어놓고 000원이라는 숫자만 남았다. 그리고 더욱이 프리미엄 김밥이라고 하는 것들도 있는데 그것은 5천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있다. 몇 번은 프리미엄 김밥집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많은 갈등을 하다가 일어나 매장을 나온 기억이 있다. 가격 고민 없이 사 먹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살다 보니 추억이라고 하는 것이 일방적인 경우가 있다. 나는 추억이라고 생각한 것을 상대방은 기억조차 하지 못 하면 묘한 상처를 받고는 한다. 이제 내가 먹었던 돈까스와 김밥들은 나 혼자 붙잡고 있는 추억처럼 느껴진다. 다만 소비자는 적응을 해 갈 뿐이다.
<소풍의 놀이>
소풍날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선생님의 인솔을 따라서 공원까지 걸어간다. 학교 체육복은 노란색인데 공원으로 가는 길로 길게 학생들로 노란색 줄이 생긴다. 소풍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잡상인들이 손수례를 끌고 주변에 모이는데 그 품목이 아주 다양하다. 번데기, 솜사탕 같은 불량식품은 물론이고 은장도같은 것들도 팔았다. 나는 은장도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를 했지만 그것은 눈으로 보기에 그럴듯하게 보일뿐 연필도 깎을 수 없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무 곳에 쓸 일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또 바보짓을 했다는 것을. 공원에 모여서 하는 프로그램들이 몇 개 있는데 보물찾기와 장기자랑이 기억에 남는다. 보물찾기는 "꽝" 혹은 "공책" "연필" 같은 상품의 이름이 적힌 작은 종이를 선생님이 먼저 공원에 있는 나무와 돌사이로 숨겨놓고 학생들이 그것을 찾게 하는 원초적인 게임이다. 다음으로 장기자랑은 학생들이 친구들 앞에 나와서 춤이나 노래를 하는 것이데 나는 부끄러움이 많고 자존감이 낮아서 누구 앞에 나서는 일도 못 하고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가장자리를 차지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기꺼이 친구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아이들이 참 자존감이 높은 친구들이다. 앞에 나서서 춤이나 노래를 하는 것이 무엇이 대단한 것이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소한 것들을 방치하면 항상 큰 문제가 된다. 양치를 잘하지 않으면 치과선생님을 만나게 되어있다.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자존감 낮은 사람들은 좀처럼 건강한 인간관계, 이성관계를 형성하기가 힘들다. 나의 낮은 자존감은 옷을 입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나 스스로 예쁜 옷, 편한 옷을 판단하고 입을 줄을 모르고 단지 타인이 보았을 때 이상하지 않은 옷을 입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을 했다. 역시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유명브랜드의 옷을 입고 광고판처럼 다니는 일을 하지만 정말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괜한 이유가 아니다.
<새우잡이 춤>
일본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그가 최후의 승자라고 해서 항상 이기는 싸움만을 한 것은 아니다. 아주 비참할 정도로 패배를 한 기록들이 있다. 1572년 당시 오다 노부나가의 포위망으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위기 속에서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있는 이에야스가 가장 강력한 다이묘 다케다 신겐을 방어하게 되었다. 다케다 신겐은 특히 전국시대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진 군벌로 평가받는다. 신겐은 오다 노부나가를 침공하기 위해서 대군을 이끌고 이에야스 진영으로 들어간다. 이에야스는 중과부적이라 여기고 하마마쓰 성에서 농성을 하지만 신겐은 그냥 이에야스의 군대를 무시하고 지나가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에야스도 보통 인간은 아니다. 가신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신겐의 군대를 저지해기 위해서 뒤따라가 공격을 하니 이것이 미카타가하라 전투이다. 신겐과의 전투에서 이에야스는 대패를 하고 도망가는데 일설에는 이에야스가 도망을 가는 와중에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말 위에서 똥을 지렸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에야스의 엉덩이를 보고 하인이 무슨 일인지 묻자 이에야스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된장이라고 둘러댄 것이 미소된장국(미소시루)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1572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다케다 신겐에게 처참할 정도로 무너진 이에야스가 미처 전열을 다듬을 틈도 없이 다케다군이 다시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모인 가신들이 풀이 죽어있는 참에 이에야스가 난데없이 최고참 가신인 타다츠구에게 "새우잡이 춤을 추게" 라고 명령을 내린다. 다케다군이 코앞까지 쳐들어 온 판에 최고참 가신인 타다츠구에게 모든 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새우잡이춤을 추라는 이에야스의 명령에 모두들 아연실색하였으나, 타다츠구는 자신의 지위나 체통에도 상관없이 노골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걸 본 가신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새우잡이춤을 추면서 긴장감과 우울함만이 가득했던 분위기는 용기와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반대로 나는 눈치왕이다. 극장에 갈 때 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는 경우가 없다. 왜냐하면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가 재미있게 보고 있나? 보고 있지 않나? 만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니 자존감이 낮다는 의미를 스스로 아는 일도 오래 걸렸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타인과 비교하고 눈치를 보며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