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인생의 시간

by 녹음노동자

<슬픈 죽음>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한다"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말했다.


가장 처음 기억에 남는 죽음이라고 한다면 중학교 때 내 친구의 죽음이 떠오른다. 까까머리에 키가 아주 작아서 앞 번호를 차지하는 친구였다. 나는 키가 큰 편으로 보통 맨 뒷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친하게 지내지는 못 했다. 하지만 친구는 아주 장난꾸러기로 전교에서도 소문이 난 친구였다. 체육선생님은 터프가이인데 항상 색깔이 가득해서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셨다. 그 선글라스를 끼면 도저히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체육선생님은 평소 장난꾸러기 친구를 혼내는 일을 자주 하셨지만 속으로는 아주 귀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중학교 여름방학이 끝나고 알 수가 있었다. 친구는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깊은 물에서 그만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개학을 하고 나서 친구의 소식을 들었고 하루 종일 학교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체육선생님은 여전히 선글라스 쓰고 계셨지만 그 날 만큼은 깊은 슬픔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선생님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의 이름은 가물가물 한데 그 친구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할머니의 죽음>

살면서 죽은 동물을 보는 일은 종종 있지만 사람이란 많지가 않다. 나에게는 할머니가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지고 홀로지내시다 몸이 편찮아지시면서 집 근처에 있는 요양원에서 지내셨다. 나는 영화스텝으로 일을 하면서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다. 하루는 할머니는 요양원 침상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후에는 침대에서 벗어나는 일이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할머니는 많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어린 나이에 잘 위로해 드리지 못했다. 서울에서 지내는 어느 날 아침 일찍 나는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벨 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나는 그 전화가 어떤 전화인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형은 할머니의 소식을 전헀고 나는 급하게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다음에 할머니를 만난 것은 화장하기 전에 하얀 옷을 입고 누워있는 할머니였다. 얼굴을 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 같은데 내가 손으로 만지고 있는 할머니의 어깨는 아주 딱딱했다. 타들어가는 불 앞에서 가족들은 한참을 울었다. "삶은 언제가 마지막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말은 참으로 진실한 말이다. 느긋하게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주말 아침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서 티비 앞에 앉아 있거나 혹은 조금 열린 창문으로 바람을 쐬어가며 낮잠을 자는 시간은 흔한 시간이 아니라 특별한 시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창가에 붙어서 바람을 쐬는 일을 참으로 좋아한다. 어린 시절 집에서 조금 열린 창가에 딱 붙어서 잠이 들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깰 것을 걱정해서 조용히 쇼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계신다. 나는 잠꼬대를 하며 창문을 걷어차는 바람에 스스로 잠에서 깨고 만다. 돌아보면 참으로 그리운 시간이지만 당시에는 소중한 시간을 우리는 잘 모르는 것들이 있다. 나이가 들어 형이 아들을 낳고 우리 가족들은 형의 집에 아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다만 아기를 만나고 나올 때 엄마는 "우리 아들 너무 고생한다" 며 형을 걱정했다. "너희들 어릴 때는 저렇게 예쁜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엄마는 속이 상해 보인다. 곧 새로운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새해에 뜨는 해는 특별한 해인가? 우리는 잣칫날만 특별한 날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진실은 하루하루가 모두 소중한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억울한 죽음>

세상에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참으로 많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음주운전에 관한 것인데 피해를 당한 가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남편이 "아내가 마지막까지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며 사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사고의 트라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음주운전자들은 가벼운 처벌을 받으며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격한다. 가벼운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옴에도 불구하고 바뀌는 것이 없는데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국민들은 사회가 관심이 없이 일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기로 인한 범죄 피해도 마찬가지이다. 사기꾼들은 범죄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범죄 수익에 비하면 처벌이라는 것은 아주 가벼운 것이다. 때문에 국민들도 알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악인이 잘 먹고 잘 산다. 또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은 참 순진해빠진 이들이다" 전세사기를 치는 것은 사기꾼들인데 피해자들은 "다 자신이 모자라서" 스스로를 탓하는 일마저 벌어진다. 최근에는 정부에서 주관하는 안심주택에서도 이러한 이들이 벌어지는데 사기를 당하지 않는 방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악인들의 행위에 대한 피해는 단순히 그 행위 위에 있는 게 아니라 그 파급력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티비의 가장자리에 이웃을 돕는 전화의 급액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통통 뛰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부당이익을 취한 사람들의 뻔뻔한 모습을 뉴스에서 볼 때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최근에 전쟁지역 복원 사업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의 광고를 나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역시 또 그런 사람들은 뉴스에서 다시 볼 수가 있었고 액수도 어마어마했다. 복지사기의 피해는 단순히 피해 금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도움을 받아야 되는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데 있다. 오직 이용당하고 고통받아야 하는 일이 선의 가치라면 정말로 선이란 권할 만한 가치인가.


<진시황의 꿈, 지금이라는 시간>

과거 중국에는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진시황이 있었다. 진시황은 꽤나 삶이 재미가 있었지만 영생을 살겠다는 잘 못 된 판단을 하고 만다. 진시황의 마음이 절실하고 절박할수록 사기꾼들에 이용만 당할 뿐이었다. 오히려 진시황은 수은이 포함된 약을 복용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50세에 죽음을 앞 당기는 행동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영원한 삶을 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 좋다.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현재를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래로 도피하며 현재를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본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 우리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당연히 내일이 주어질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대부분 오늘 못 하는 일은 내일도 못 한다. 그러니 지금이라는 시간만 가지는 것이 좋다. 피카소의 말처럼 "안 하고 죽어도 될 것들 내일로 미루라"는 말은 진실한 말이다. 패튼의 말처럼 "지금 적극적으로 실행되는 괜찮은 계획이 다음 주의 완벽한 계획보다 낫다" 내가 성공하면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겠다. 그 마음은 훌륭하지만 역시 평소에 전화를 자주 드리는 것이 훌륭한 효도일지도 모른다. 오직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만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이런 편협한 사고를 만들고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노동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일을 우리 스스로 불행해지는 일이다. 세상에 수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악인들이 많다 청년이 기가 죽거나 스스로를 방안에 숨길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 누구든 하루하루 삶을 긍정하고 즐겁게 사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물을 즐기려면 물을 무서워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진시황처럼 영생을 하는 방법은 없지만 미래를 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내가 보낸 한 주를 돌아보면 된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타인과 계급을 나누고 분리시키고 구분 짓는 일들을 좋아한다. 이것은 정말 세속적인 일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는 병장, 상병, 일병, 이병 아무것도 아닌 짝대기 하나로도 서로를 구분 짓기 위해서 "관물대에 기대는 일" "옷을 내어서 업는 것" 같은 작은 행동들을 특권으로 만들어 낸다. 사회에 나와서도 이런 일들은 이어진다.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도 국가의 돈으로 해외순방이라고 명품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명품으로 자존감을 채우고 산다면 그 얼마나 불쌍한 삶인가. SNS에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한 자랑을 하지만 그 허영심이 그것으로 채워질 리 없다. 나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타인이 보고 있는 내 모습밖에 없다.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항상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우리는 SNS를 통해서 서로를 비교하는 행동들을 하지만 인생에서 짊어지고 있는 짐은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그런 행동은 "내 모습"을 잃어버리게 할 뿐이다.


<사는 것 그리고 사는 것>

2012년 나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본 감독 신도 가네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스텝으로 일을 하면서 시간이 될 때는 부지런히 프로그램의 영화를 시청했다. 신도 가네토의 작품에는 수많은 걸작들이 있지만 특히 <오니바바>를 통해서 나는 감독님의 과감한 예술성에 크게 놀라게 되었다. 그저 옛날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영화만큼은 놀랄 만큼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수작을 지금 누가 따라 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각본가로서 실력이 대단한데 우리가 가장 흔하게 알고 있는 작품으로는 <하치 이야기>가 있다. 신도 가네토 감독에게 놀라운 점은 단지 그의 실력뿐만이 아니다. 그는 1912년 3월 12일 태어나서 2012년 5월 29일 사망하셨다. 놀라운 점은 100세 가까이 장수하셨는데 그의 마지막 유작이 2010년 일본에서 제작된 <한 장의 엽서>라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의 유작을 본 적이 있는데 작품에서는 여전히 그 생명력이 있었다. 누가 이런 작품이 100세에 가까운 할아버지가 만들었을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누구나 100세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 집에서 유유자적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데 그는 왜 작품을 찍은 것인가? 언젠가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에 답이 있다. 그의 대답은 "사는 데까지 살고 싶다" 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에야 삶은 실감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플 때에 시간이 더 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시간과 순간순간이 빛이 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keyword
이전 16화16. 류경호텔이 올라가는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