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백수의 꿈

by 녹음노동자

<백수의 문제>

나는 촬영스텝이라고 하는 불안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촬영을 하는 동안에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가 있지만 작품이 없는 길고 긴 기간 동안은 백수로 살아가게 된다. 과거 소련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영화감독으로 일을 했지만 실제로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던 24년 동안 18년은 실질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소련 당국의 검열과 갈등으로 인해 실제 작품 활동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현대인의 스텝 생활도 녹녹지는 않다. 촬영스텝들은 균형이 무너진 노동환경을 가지고 있다. 일을 할 때는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고 쉬는 날은 기간이 없이 쉬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직업은 내가 아니다. 삶이란 치열한 전쟁 속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치열함 뒤에 여유와 휴식에 진짜 의미가 있다. 나는 미련한 범생이 스타일이어서 부끄러움도 많고 잘 놀 줄을 몰랐다. "놀 줄 모르면 바보가 된다" 는 말처럼 나는 오히려 쉴 때 느껴지는 공허함이 컸다. 그것은 내 삶의 목표가 분명하다는 착각과 그것을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 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무한하게 주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일이 없는 날의 아침에는 일어났을 때 나는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한심하게도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할 것이 없어서 그냥 다음날까지 계속 잠이 든 적도 있었다. 일은 애초에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노비에 마음이 뼈속깊이 새겨져 있는가. 때문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게임에 집중을 하거나 하루 종일 유튜브에 내 정신을 맡겨놓고 병원에 환자처럼 침대에 붙어있는 일이 많았다. 배가 고프면 손에 쉽게 쥐어지는 햄버거와 치킨,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가까이했고 음식들은 꾸준히 내 건강을 망가뜨렸다. 반대로 잘 먹기 위해서는 냉장고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이런 계획 없는 생활들은 내 몸과 마음을 오랫동안 병들게 했다.


<백수의 시간>

일을 하는 사람들은 좋건 싫건 그 일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백수란 누구 하나 무엇을 하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때문에 백수일수록 하루의 계획을 잘 짜야한다. 계획하지 않으면 사람은 관성대로 살아진다. 문제가 되지 않으면 특별한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계획하지 않으면 시간을 쓰기보다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대부분의 문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때를 모르고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끊은 냄비 안에 위기인 줄 모르는 개구리처럼 사태를 관망할 뿐이다. 내가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아직 스마트폰이 보급이 되지 않은 때였다. 당시에는 MP3 플레이어라는 것이 유행을 했다. 수백 곡의 노래가 들어가는 작은 기기로 유행을 선도하던 기업들은 엄청난 수익과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기술의 변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진행이 되었다. 당시에 후발 주자이던 애플은 새로운 시도로 "아이튠즈"라는 플랫폼을 개설하고 "아이팟"을 출시한다. 곧 애플은 다시 "아이팟"을 기반으로 하여 휴대전화와 결합한 "아이폰"을 내어놓으면서 선두의 자리를 차지한다. MP3를 선도하던 기업들은 시대의 변화에 변화하지 못하고 서서히 시장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날이 밝았는데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을 때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위해 태어났고, 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불평하고 못마땅해하는 것인가. 나는 침상에서 이불을 덮어쓰고서 따뜻한 온기를 즐기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 <명상록>

<백수의 하루 일과>

아침은 보통 8시에 일어난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헬스장에 가는 일이다. 나는 정말 많은 시간 아침에 일어나면서 한심한 내 모습을 비난하는 경우도 많았고 우울증과 무기력감을 느끼며 잠에서 깨는 경우도 많았다. 오히려 아침에 기력이 없이 누워있으면 그 감정에 짓눌러지기 마련이다.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 가는 일은 단지 육체를 단련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가고 싶은 날 혹은 가기 싫은 날도 분명히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가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정신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운동을 가기 전에 보통 나는 편의점에 들러서 천 원짜리 에너지바 2개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헬스장으로 들어간다. 공복의 운동이나 그 이상의 음식을 섭최하고 운동을 하면 오히려 방해를 받기도 하는데 나에게 운동을 하기 전에 아주 적당한 음식들이다. 운동은 1시간에서 - 2시간가량 걸리는데 편하게 오전의 시간은 운동을 하면서 보낸다. 운동을 마치고 나오면 점심식사를 한다. 운동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밥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항상 밥을 해주시는 식당아주머니들은 깔끔하게 비워진 밥그릇을 보고 "밥이 부족했나?" 그릇을 보며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항상 밥의 양은 조금씩 많아진다. "이모 밥 좀 적당히 주세요!" "그래?" 그러면 이모는 기쁨에 주먹밥을 몇 개 싸서 서비스라고 내어온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하루에 감사함을 느끼기에 참 좋은 시간들이다. 어떠한 일도 당연한 것은 없다. 오후 시간이 되면 주로 글을 쓰는 일을 한다. 글이라는 것은 주로 일기장, 생각노트, 시나리오 작업에 관한 것이다. 운동, 읽기, 글쓰기 오랜 역사를 가진 원초적인 행위들이고 나는 이런 일들을 좋아한다. 이것은 모닥불에 앞에서 불을 쬐는 일과 같고 혹은 동굴 속에서 빗소리를 듣는 일처럼 오랜 역사를 거쳐 우리의 몸에 새겨져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은 내게 불운이다”라고 말하지 말고, 도리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현재 일어난 일 때문에 망가지지도 않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두렵지 않으며, 이렇게 아무런 해악도 입지 않고 멀쩡한 것은 내게 행운이다”라고 말하라. 너는 왜 전자를 생각해서 불운이라고 말하면서, 후자를 생각해서는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냐. 네가 해악을 입었다고 느끼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 원리를 굳게 붙들어라: “이 일은 불운이 아니다. 도리어 이런 일을 겪는데도 내가 나의 본성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내게 행운이다. <명상록>

<운동을 하는 것>

나는 평생 운동을 하는 일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운동을 통해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그 사람들이 운동하는 만큼 더 살겠다" 말한다. 이 말은 참으로 바보 같은 말인데 운동의 가치는 꾸준히 누리며 사는 것이다. 운동의 장점은 단순히 몸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고 자신감, 자존감도 크게 향상을 시킨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일에 쫓기며 운동을 하는 일, 건강의 가치를 지키는 일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 몸을 혹사시키며 일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 몸이 아프게 되면 고생하며 벌었던 돈을 병원비에 쓰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언젠가 워런 버핏이 말을 했듯이 "중요한 것은 가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있는 것"이다. 눈앞에 월급, 돈 숫자의 가치를 저울질하기는 쉬운 일이다. 단순히 그 가치가 눈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고 생명 혹은 감정에 관한 것들이 많다. 백수는 돈을 벌지 않고 지출만 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가치를 지키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를 하는 것>

나는 현대사회 문제가 심각한 비만률만큼 "집중력을 잃어버린 사람들" 에 있다고 믿는다. 요즘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걸어가면서 휴대폰에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한동안 이런 증상이 아주 심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녁 늦게 잠이 들 때까지 틀어놓았던 영상을 이어서 보고 잠시라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보고 싶은 영상은 애초에 없지만 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걸어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극적인 영상에 절여진 뇌는 어느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들이 불가능하다. 휴대폰을 손에 쥐는 순간 그것이 손의 신경에 연결되어 새로운 뇌가 되어버린다. 정말 중요한 내 생각, 아이디어, 목소리 항상 속삭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끄럽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리와 영상들로 타인의 시선을 잡아두려 하고 중요한 그들의 생각에는 잠시라도 신경을 쓸 수 없게 정신을 어지럽힌다. 기업들은 건강한 가치를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그것들이 그들에게 돈이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파묵이 이야기하듯 "정적이 시작되지 않으면 상상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중독의 심각성을 느끼고 그것들을 끊어내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모든 중독이 그러하듯이 "내가 이것을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단 내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서 손에서 영상을 트는 일이 물리적으로 쉬워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영상을 트는 앱들을 지우는 노력을 했다. 지우고 깔고 지우고 깔고 수십 번을 반복하면서도 나는 단호하게 그것들을 잘 끊어내지 못했다. 어찌 보면 영상 너머에는 내 집중력을 "빼앗기" 위한 수천 명을 사람들이 노력 중인데 중독을 끊어내는 과정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글쓰기를 하면서 무의미한 영상을 틀어두는 행위를 종종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모없는 영상에 절여진 너덜너덜한 뇌로 글쓰기에 온전히 몰입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했다. 멀티태스킹이란 단지 어디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할 뿐이다. 현대사회는 자연스러운 것들을 복잡하게 만든다. 몸에 과도할 정도로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섭취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빼앗기 위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상들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과도기에 놓여있던 우리 세대 사람들은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몰랐지만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해결법들이 필요하다.


<먹는 것에 관한 문제>

백수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최소한의 건강과 돈이 없다면 삶은 아주 비참하다." 나는 편의점 밥을 자주 사 먹는다. 그러면서 항상 머릿속에는 오늘 얼마를 썼는지에 대한 계산을 하면서 사는 일이 익숙했다. 기업들은 건강한 가치를 만들어 가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건 순진한 생각이다. 기업이란 단지 많은 상품을 소비시키고 이윤을 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은 더욱 많은 음식들을 사람의 몸에 집어넣고 돈으로 바꾸는 일에 고민을 할 뿐이다. 때문에 음식에 중독이 된 사람들은 소화하기도 전에 다시 음식을 넣어버린다. 배고픔과 포만감 자연스러운 과정을 잊어버리고 항상 배가 부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비만률이 30%를 넘기고 있는 중이다. 나 또한 한동안 내 속을 쓰레기통 취급을 하며 살아왔다. 닥치는 대로 계획 없이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또 야식을 먹고 바로 잠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돈은 잃는 것은 건강의 가치에 비하면 푼돈이다. 필요 이상의 음식을 몸으로 집어넣는 일은 장기에 부담을 주고 결국에는 건강을 해치기 마련이다. 비만이라는 것이 바로 건강의 문제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꾸준히 사람의 건강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정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책임 소지를 논하기에는 너무 늦어져 버린다. 차라리 뼈가 부러지면 병원에 가서 붙이면 그만이지만 이건 병이 있음에도 방치하는 행위이니 더 무섭게 느껴진다.


<백수의 몸가짐>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많은 시간 스스로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 보통은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관심이 없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신경을 쓰기 바쁘지만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은 나다. 타인과 비교를 하면서 자존감을 깎아먹으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만 사람이 짊어진 인생의 짐은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같은 상황에도 생각만 바꾼다면 조금 숨통이 트이기도 한다. 나는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굶지도 않았고 심지어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편안한 잠을 잔다. 사람들은 백수들에 대해서 문제가 있는 인간들이라고 비난하고 혀를 차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는 "오히려 국가의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찬다" 뻔뻔한 인간들의 삶보다야 나는 백수의 삶이 낫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벌레들에 비하면 일자리가 찾지 못 하고 방에 몸을 숨기며 사는 인간이란 참 순진하다. 오히려 깔끔한 양복을 입고 코를 찌르는 독한 향수를 뿌리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본성을 감추기 위한 인간들이 많다. 기성세대들은 "어려운 시기임에도 강자는 여전히 살아남는다.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에 싸움을 부추기지만 여전히 공존의 가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건강한 세상인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백수이지만 나는 가끔 잠이 들 때 건강한 세상에 대한 건방진 생각을 한다. "백수는 국가 대사를 논하면 안 되는 것인가?" 백수의 꿈은 생각보다 크다. 나는 순진하게도 여전히 균형과 공존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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