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게임의 변천사

by 녹음노동자

<게임보다는 놀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는 경주 외동읍에 위치하고 있는 영지국민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영지국민학교는 나의 어머니도 그곳을 다닌 만큼 역사와 의미가 있는 장소인데 북토리에서 아침이 시작되면 부모님들은 돌아가며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는 일을 하셨다. 당시 나의 유치원 선생님은 아주 짧은 단발에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안경을 쓴 매력적인 분이셨다. 뒤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가장 그리운 선생님을 떠올리면 첫사랑처럼 헤어진 지 가장 오래된 유치원 선생님이 떠오른다. 아주 그리운 얼굴이고 예쁜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재미있게 놀고 장난감을 치울 때는 피아노 연주를 해주셨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며 장난감을 치우기 시작하는데 친구 중에 한 명이 너무 정신이 없게 열심히 장난감을 치우다가 피아노의 뚜껑을 닫아버렸다. "악!!" 소리와 함께 연주도 멈추었다. 친구들은 놀라서 정리를 멈추고 손을 감싸고 있는 선생님 주변으로 모였다.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수업이 마치고 가끔 집으로 돌아가는 차가 늦을 때면 선생님은 재미있는 만화를 틀어주셨다. 특히 <꼬마자동차 붕붕> 이와 <감바의 모험> 기억이 남는다. 특히 감바의 모험을 보며 아주 무서웠는데 선생님은 그 모습을 아주 예뻐해 주시며 따뜻한 차를 내어주셨다. 다시 한번 선생님을 볼 수 있으면 생각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 수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니 더 그리워지는 느낌이 든다.

<꼬마자동차 붕붕> <감바의 모험> 아동만화 맞음? 이거 어떻게 안무서워 함?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누구 하나 약속하지 않았는데 다들 밥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모였다. 사람은 눈을 뜨고 깨어나면 무엇이든 하게 되어있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은 놀이를 시작하는데 기억에 남는 놀이라고 하면 <땅따먹기> <비석치기> <그림자밟기>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또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은 다르지만 우리 지방에서는 <진도리> 라는 게임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재믹스, 페미컴, 486 컴퓨터>

전에 하던 것이 놀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면 지금부터는 게임 GAME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버스가 자주 들어오지 않는 아주 깊은 시골에도 문화가 들어오는 일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나의 집에는 재믹스라는 게임기가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형과 나 그리고 친구들이 집에 모여서 열심히 했던 기억은 난다. 특히 하이퍼 올림픽에서 조이스틱을 두드리는 손이 너무 아파서 휴지를 감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게임이 끝나면 휴지가 까맣게 탈 정도였다. 재믹스에는 아주 재미있는 게임이 많았는데 <요술나무> <탱크 바탈리온> <양배추 인형 (최초의 코스튬 게임)> <킹스벨리> <마리오> 같은 게임들이 기억에 남는다. 슈퍼마리오는 닌텐도의 고유 캐릭터이지만 당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미흡했고 불법복제 게임들이 많았다. 지금은 소송감이지만 당시에는 "재믹스에서도 슈퍼마리오가 된다!" 는 소문에 엄청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탱크 바탈리언> <요술나무>

우리집 바로 뒤편에는 사촌들이 살았다. 사촌들은 비슷한 나이의 1남 2녀 이고 우리 형제와 자주 어울렸다. 사촌의 집에는 우리 집에 있는 재믹스 게임보다 한 단계가 높은 패미컴 게임기가 있었다. 그리고 곧 다른 친구의 집에 더 좋은 게임기가 등장을 했다. 그곳으로 가는데 닌자거북이를 주인공으로 한 횡스크롤 게임이 있었다. 친구들이 옆에서 한 번이라도 키를 잡기 위해 아주 넋이 나가 있었다. 나는 왠지 우리 집에 게임기가 버림받은 느낌을 받아 너무 속상했다. 형에서 집으로 돌아가서 게임을 하자고 투정을 부렸지만 야속하게 형은 나에게 "너 먼저 가라" 라고 한다.

<닌자거북이 게임>

곧 사촌형의 집에는 컴퓨터가 생겼다고 했다. 아주 비싼 물건인데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486 컴퓨터라고 부르기에 그냥 그렇게 나도 불렀다. 다만 그것으로 하는 것이라고 게임과 그림판 정도인데 그냥 486 게임기라 불러도 될 것 같다. 무슨 게임이 돌아가는가? 당시 국민게임 <너구리> <고인돌> <페르시아의 왕자> 지금 컴퓨터에 비하면 성능은 보잘것없지만 다들 게임 아이디어만큼은 대단했다.

<돌아온 너구리> <고인동>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가족은 북토리 시골을 떠나서 경주의 시내 가까이로 이사를 하였다.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곳에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소방관으로 일을 하셨고 어머니도 시골을 벗어나 회사생활을 하시다가 곧 만화가게를 차리셨다. 아버지, 어머니는 철부지 아들 두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항상 고군분투하고 바쁘신 기억이 남는다. 아버지 어머니는 여느 부모님이 그러하듯이 학원에 형과 나를 맡겨두셨다. 형과 나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데 특히 형의 얼굴을 정말 보기가 힘들었다. 형은 학원을 빠져먹으면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는데 한 번은 "집에 제사가 있다고" 라고 핑계를 대었다. 그럼 나한테도 알려주던가 혼자 학원에 갔는데 "그럼 나는 뭐가 되냐고?" 선생님은 학원에 온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당시 형을 떠올리면 정말 답답하다. 곧 나도 형을 본받아서 학원에 가면 "너는 심심하면 학원에 오냐?" 는 소리를 들었다.


<포켓몬스터>

1999년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이 방송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 상륙을 했다. 포켓몬스터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요소들이 참 많았다. 인기에 힘입어 포켓몬스터 게임과 빵 관련 상품들이 판매되었다. 포켓몬 빵에는 포켓폰 캐릭터로 띠부띠부 씰이 들어있었다. (스티커 뒷면에 접착제가 있어 여러 번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캐릭터 스티커) 친구들은 씰을 모으기 위해서 먹지도 않을 빵을 구매했다. 빵회사는 스티커가 보이지 않게 안쪽으로 숨겨두었지만 아이들은 빵을 헤집어 놓으면서도 빵을 구매하기 전에 캐릭터를 확인했는데 그 노력이 참 대단하였다.

<포켓몬 빵> <포켓몬 게임>

문방구의 검색해 보면 "기본적으로는 학용품을 파는 가게다. 연필, 볼펜, 만년필 등의 필기구, 공책, 다이어리, 포스트잇과 같은 기본 아이템부터 시작해 찰흙, 지점토 등 미술 시간에 필요한 미술도구, 과학 시간에 필요한 실험도구, 음악 시간에 필요한 리코더 등의 악기류, 체육시간에 필요한 체육복 등 학교에서 필요한 물품이라면 대부분 이 문방구를 거쳐갔다." 초등학생에게 문방구는 단순히 이런 의미 이상이다. 문방구는 아이들에게 문화를 경험하는 길드이고 광장 같은 곳이었다. 문방구 앞에는 게임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이들의 동전을 빨리 소모시키기 위해서 게임들은 조금 더 어렵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당시 예절교육은 오락기 앞에서 모르는 형들에게 많이 이루어졌는데. 도덕 시간에 수업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 당시 형들한테 받았던 예절교육은 잊을 수가 없다. 형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단순히 게임에서 졌기 때문에 화가 난 것뿐이니 반항하지 않고 기분에 비위를 맞추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어두운 골목으로 끌려가 심화교육에 들어갈 수 있다. 당시 포켓몬 1세대 게임들은 문방구를 통해서 유통이 되었다. (이 당시에도 아직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정착되지 않았다.) 포켓몬스터에 핵심 주인공인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 피카츄의 대표 색깔들을 따라서 포켓몬 그린, 레드, 블루, 옐로우로 불렀지만 게임은 큰 차이가 없었다. 나는 게임을 친구와 같이 문방구에서 1천 원 혹은 2천 원으로 게임이 들어있는 플로피 디스크를 구매한 기억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의 집으로 달려가 나란히 컴퓨터에 앉아서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은 번역도 되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일본어 투성이었지만 조작이 단순해서 친구와 같이 재밌게 게임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이것을 저장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별수 없이 우리는 매번 태초마을에서 다시 게임을 시작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을 뿐이었다.


<PC방의 탄생과 몰락>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까. 동내에는 신기한 장소가 생겼다. PC방이다. 처음에는 "집에 컴퓨터가 있는데 뭐 하러 돈을 내고 그런데를 간단 말이야?" 생각했지만 PC방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 문화에 젖어버린 나는 어느새 저금통 아래로 티가 나지 않게 배를 갈라 동전을 긁어모아 PC방에 갈 돈을 마련하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면 자리싸움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PC방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게임이라면 단연 이제는 국민민속게임이 되어버린 <스타크래프트>였다. 피시방에서 팀플을 이루어 대결을 하기도 했는데 오락실 앞에서 받던 예절교육은 PC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타깝게도 오락실을 천천히 하향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는데 E-스포츠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스타를 잘하는 사람을 모여 겨루는 경기가 탄생을 하였다. 밀레니엄 2000년에 가까워지는 시점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우승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게임잡지와 광고에 출현을 하며 인기를 누렸다. 또 스타크래프트와 더불어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게임이 특히 발달을 했는데 <리니지> <디아블로2> <뮤> <포트리스> 같은 게임들이 기억에 남는다. 2026년 지금은 다시 PC 방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세월이 참 야속할 따름이다.

<스타그레프트> <디아블로2>

<마리오 그리고 젤다>

2017년 닌텐도 스위치 게임이 출시되었다. 닌텐도 스위치는 출시가 되면서 PS4 (플레이스테이션 4) 같이 큰 인기를 누렸다. 나도 큰 인기에 호기심이 생겨 게임기를 구매하였다. 아주 어린 시절 40KB 아주 적은 용량으로 시작된 게임을 생각하면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을 하였다. 기술적인 변화에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내가 특히 놀랐던 것은 스토리의 발전이다. 처음의 게임스토리는 아주 간단했다. "거북족의 악당 쿠파에 의해서 납치된 피치공주를 마리오가 구하러 간다." 이다. 이런 단순한 스토리에는 조금씩 이야기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2023년 5월 4일 오후 2시 30분 나는 영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의 영화표를 구매하고 극장 안에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면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마리오 브라더스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하기 전에 그냥 총평을 해보자면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잘 만들어진 수작은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영화관을 떠날 때 정말 바보같이 너무 웃으면서 나가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난 30살을 넘기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처음 마리오가 버섯 왕국으로 가서 피치공주와 같이 훈련을 받는데 보니타일러의 노래와 같이 계속 도전을 하는 마리오의 모습을 보고 정말 매료되어 버렸다. 피치, 마리오, 루이지 모든 캐릭터의 목적과 캐릭터 성격이 정말 또렷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따라다니는 버섯동자 키노피오도 정말 매력적이었다. 정말 단순하고 설명적이 않는 "내 목적은 뭐야!!"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미션임파서블 7 예고편을 보며) 라고 말하지 않고 당연히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되는 것도 정말 수준급이고 세련되다. 폭주 뛰는 공주님과 로맨티스트 악당 쿠파까지 나도 아직 순진한 관객이라 느낀 게 쿠파가 날린 로켓으로 마리오가 쿠바의 성을 날려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노련한 작가는 폭탄으로 모든 캐릭터를 브루클린으로 옮겨버린다. 그리고 절망한 마리오가 루이지와 같이 별을 먹고 같이 쿠파를 해치우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것 역시 가지고 싶은 것을 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마리오가 아니라 마리오 브라더스가 극을 해결하는 것 모든 면에서 작가는 앞서 있었다. 이래서 너무 잘 만들어진 영화는 보기에 부담스럽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초라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영화의 대사처럼 즐거움은 끝이 나고 공허함만이 남았다. 오늘은 마리오 덕분에 너무 즐거운 하루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의 흥행에 힘입어 곧 우주를 배경으로 슈퍼 마리오 영화 후속작인 <슈퍼 마리오 갤럭시> 는 한국에서 2026년 4월 29일에 개봉이 확정되어 기대가 된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또 다른 명작이 있으니 젤다의 전설이다. 초기 젤다의 전설은 닌텐도 게임으로 잘 사는 집이 아니면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적었다. 나는 영화를 하는 동안 항상 가난했다. 30살이 가까워 드라마를 시작하고 조금 돈의 여유가 생기자 게임기가 사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닌텐도 스위치이다. 닌텐도 스위치를 구매하고 나는 무슨 게임을 할까 고민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 가장 유행하는 게임이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다. 그리고 처음 마주한 젤다 게임이기도 하다. 젤다는 출시를 하면서 GOTY (Game Of The Year) 올해의 게임을 차지했고 나도 게임에 푹 빠져들었다. 게임의 가장 좋은 장점은 사실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세요" "무엇을 하세요" 같은 말이 없고 자유롭게 가상세계를 모험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난이도가 약간은 매운맛인데 이 점에 대해서 미야모토 시게루는 한 인터뷰에서 (정확하지 않은 대략) "혼자 해결하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친구들과 같이 머리를 맛대면 해결하지 못할 미션은 없다" 는 게임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젤다의 전설은 GOTY를 차지했지만 내가 경험해 보아도 지금까지 나온 게임 중에 가장 훌륭한 게임이 맞는 것 같다.

<젤다의 전설 게임> 참고로 왼쪽에 여자가 젤다 주인공의 이름은 링크다.

<값싼 성취감에 대해서>

게임은 정말 건전한 취미생활이다. 우리의 게임을 통해서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다. 세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하기 바쁘지만 게임만큼은 <GOOD!> <GREAT!!> <EXCLLENT!!!>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야! 게임하지 마!!" 말한다. 아마도 어른들은 게임의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지만 그것에 쉽게 설득이 될 리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제대로 알면 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 라는 말을 하고 스스로 휴대폰만 보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런 말이 통할리 없다. 앞에서는 게임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 내가 생각하기에도 게임을 하는 것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왜 게임에 빠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내가 뚜렷한 목표가 없고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성취감을 느끼며 다가가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가 게임을 하는 것은 목표로 향해가는 꾸준하고 부지런한 노력일 수 있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추종하며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람은 깨어나 있으면 무엇이라도 활동을 하고 그 변화를 통해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게임과 휴대폰에 빠지는 것은 대단한 노력 없이 즉각적인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아무 음식이나 먹어지는 것처럼 게임을 하는 것 단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값싼 성취감에 불과하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 밤에 자려고 누울 때 뿌듯하거나 보람감을 느끼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의미 없이 하루를 보낸 자기 자신을 반성할 것이다. 쾌락은 고통과 연결이 되어있다. 하지만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노동을 하는 일, 글을 쓰는 일 장기적으로 건강한 가치를 만드는 일들은 그 순간에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성취감과 연결이 되어있다. 우리가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에 미연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이 절대로 현실에서 이성을 만나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즐거움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스스로 오랫동안 게임을 추종하며 진정한 성취감을 맛보지 못하고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모한 것은 나 스스로 불행한 일이었다. 주인으로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은 어렵고 타인에게 복종하기는 쉽다. 사람들은 게임에 빠지는 일에 스스로 행동을 고치려고 하면서도 알코올 중독자처럼 "딱 한잔만 마실게"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친구가 없고 외로운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며 조롱을 하는 사람을 기꺼이 친구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이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진정으로 알게 되면" 이 모든 일들을 극복하고 끊어내는 일에 성공을 할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허무함과 무기력증은 목표로 향하지 않고 도전하거나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다. 한강 작가님의 말처럼 글을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더라도 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추종하는 일을 멈추고 우리 자신의 목표로 향해가는 일을 고민하는 것이 좋다. 단지 게임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단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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