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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우삼 감독님과 만나다.

by 녹음노동자

<촬영장의 전설적인 이야기들>

촬영현장은 내가 항상 좋아하는 놀이터였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 유명한 농구 선수가 말했다. 자신은 손에 농구공을 쥐는 것, 공이 튕기는 소리, 코트 안에 냄새도 좋다고 나도 비슷하게 세트장의 냄새도 좋고, 촬영현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촬영장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만든 결과물을 영화관에서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좋아한다. 그리고 영화현장에서 내려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은 많다. 베르너 헤어조크는 감독으로 데뷔한 초창기에 마추픽추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도저히 안개 때문에 촬영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기상상태는 좋은 시간이 잘 없었다. 그런데 베르너 헤어조크가 카메라를 올리고 촬영을 시작하려 하는 순간 거짓말같이 안개가 걷혔다고 한다. 베르너 헤어조크는 그때 영화감독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조금은 영적인 이야기이지만 낭만적이다.


<오우삼 감독님>

평소 알고 지내던 제작부 형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 2달 동안 단기적으로 제작팀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존 우, 우리나라에는 오우삼으로 유명한 감독님이 한국에서 영화를 찍기 위해서 준비 중인데 먼저 로케이션과 촬영가능성을 알아보러 넘어오는데 한국에서 같이 움직일 제작팀을 찾는 것이었다. 오우삼감독님은 내가 어릴 때 부모님 몰래 보던 영웅본색이라는 영화를 만드신 분이고 그 외에도 많은 명작을 만드신 분이었다. 나는 너무 들떴다. 제작부로 일하는 조건은 딱 하나였다. 운전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못 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형은 그냥 해 보라고 권했다. 단 형이 쉴 때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했다. 1달 동안은 사무실 작업이고 1달은 오우삼감독님과 같이 움직이면서 로케이션 장소를 직접 방문하는 것인데 사무실작업 1달 동안 운전연습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오우삼 감독님을 적어도 1달은 옆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데 거절하기 힘들었다. 나는 일을 받아들였다.


<제 운전시키지 마>

나는 신사동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 주변으로 음식점과 숙소를 알아보는 것 정도였다. 같이 일을 하는 피디님은 오전동안 운동을 하고 점심쯤에 늦게 사무실에 도착해서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한잔하고 업무를 확인하고 지시하고 다시 퇴근을 했다. 성격이 굉장히 호방하면서도 세심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피디님은 오전에 운동이 끝나고 올 때 체리를 들고 나에게 먹으라고 가져다주었다. 체리란 내 돈 주고 사 먹은 적이 없는 과일인데 피디님은 과자 사 먹듯이 사 먹었다. 피디님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 굉장히 크게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큰 사람이었고 나는 그 점을 배우고 싶었다. 이 피디님은 체리피디라 부르겠다. 나는 일이 끝나면 제작팀 형의 차로 운전 연습을 했다. 상암동 주변을 돌고 내부순환을 타기도 했다. 이렇게 1달만 연습하면 운전을 하는데 문제가 없겠지 생각했다. 다만 1달 동안 계속 형의 차를 빌릴 수는 없어서 운전 연습을 자주 하지는 못 했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나는 평소와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체리피디님이 도착했다. 체리피디님은 차키를 던지면서 “위에 차 있으니까 주차하고 와” 말했다. 나는 달리는 것만 배웠지 주차는 연습하지 못했다. “꿀꺽...” 위에 올라가니 시동 걸린 차가 그대로 있었다. 나는 한 참을 끙끙대며 주차를 했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사무실에 있던 피디님이 다시 주차장으로 올라왔다. 피디님은 주차를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보조석에 앉았다. “주차해 봐” 나는 더욱 긴장했다. 나는 주차에 실패하고 사실을 고백하는 수밖에 없었다. 피디님은 사무실로 내려와서 “제 운전시키지 마” 한마디만 남겼다. 제작팀으로 일을 하면 알겠지만 운전은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피디은 평소와 같이 나를 대해 주었다. 나는 다른 일에서 더욱 분발할 수밖에 없었다.


<운전이야기>

어느 날 체리피디님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야 너 따라와" 나는 무슨 일이지 의문을 가지고 피디님을 따라나갔다. 피디님은 차키를 던졌다. "야 나 지갑 잃어버렸어, 나는 지금 짜증 나서 운전을 못 하겠으니까 네가 해" 피디님은 보조석으로 타고 나는 운전석으로 탔다. 나는 피디님이 지갑을 잃어버렸을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 주변으로 운전을 했다. 강남은 비싼 차들이 많아서 나는 긴장했다. 피디님이 옆에 타고 있으니까 태연한 척 애를 썼다. "야 너 저게 무슨 건물이야?" 체리피디님은 강남에 가장 특징적이고 상징적인 건물을 가리켰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슨 용도로 쓰이는 건물인지는 잘 몰랐다. "모르겠습니다." "너는 저게 뭐 하는 건물인지 안 궁금해?" 피디님은 항상 가벼운 말로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아무리 유치하고 별것 아니어 보이는 일도 자유롭게 궁금해하고 상상해 보라. "저건 무슨 일을 하는 건물이지?" "짜장면 위에 계란, 돈가스 위에 옥수수와 콩은 언제부터 없어졌을까?" "헬스장 샤워실에 소변기를 만들면 청소하기 편하지 않을까?" "호기심을 가지는 것,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사물, 사건을 바라보는 것 예술가들이 갖추어야 하는 자세가 아닐까?" 우리는 결국 지갑을 못 찾고 사무실로 돌아왔다."피디님은 왜 나를 끌고 지갑을 찾으러 나갔을까?" 단순히 "운전이 하기 싫어서였을까?" 나는 출발할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운전을 하는 담력도 커졌다. "그래 내가 지금 강남을 한 바퀴 돌고 왔는데 다른 데서 운전을 못 하겠냐?"


<도시락 주문>

시간은 지나 점점 오우삼 감독님 일행분들이 도착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피디님은 나에게 미션을 내렸다. 감독님과 일행분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부산으로 이동하는 KTX에서 먹을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좋아! 감독님이 드실 끼니를 소홀히 할 수 없지!” 나는 주변 도시락 집에서 가장 좋은 도시락으로 피디님에게 제안을 했다. 지금 기억은 아주 정확히 나지는 않지만 14000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조금 비싼가? 나는 피디님에게 메뉴를 제안했다. 그런데 피디님의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역시 비싼가..." 피디님은 입을 열었다 “야 너한테 좋은 거 가져오지 말고 감독님한테 좋은 것 가져오라고!” 피디님은 내가 준비한 문서를 던졌다. “아!!” 순간 머리에 무언가 종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나에게 큰 깨달음이었다. “맞는 말이야” 나는 다시 고급 도시락집을 알아보았다. 하나에 5만 원도 넘는 것이었다. 나는 피디님에게 다시 제안을 했다. “이걸로 해” 피디님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곧 감독님과 사모님 그리고 조감독님들이 일정에 맞춰 공항에 도착을 했다. 우리는 일행을 모시고 KTX로 이동했고 주문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물론 도시락뚜껑을 열어본 사람들은 감탄을 했다. 나는 내가 한 음식도 아닌데 혼자 조용히 뿌듯함을 느꼈다.


<오우삼 감독님이 말해준 전설적인 이야기들>

감독님과 같이 우리는 준비된 헌팅장소를 돌아보며 부산에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헌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다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감독님은 통역을 통해서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다. 기억에 남는 것이 3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째는 영화 첩혈쌍웅을 찍을 때인데 그 당시에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영화가 촬영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준비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황이다. 첩혈쌍웅은 1989년 내가 태어난 해에 개봉한 명작 영화이다. 영화 장면 중에 창문 밖에서 고속으로 트랙을 이용하여 주윤발 배우와 이수현 배우를 교차로 보여주는 명장면이 있다. 시간이 지나 영화가 개봉하고 우리는 이 장면이 명장면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 오우삼감독님이 촬영감독에게 장면을 설명할 때 촬영감독은 장면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집에 가버렸다고 한다. 감독님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다른 촬영감독님을 섭외해서 장면을 다시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hard boiled 우리나라 영화 제목은 첩혈속집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주윤발 배우와 양조위 배우가 병원에서 총격을 하는 장면이 있다. 총격을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으로 가서 계속 총격을 하는 것을 1컷으로 보여주는 정말 재밌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촬영을 할 때는 2개의 층에서 촬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총격을 하고 나서 엘리베이터에 주윤발배우와 양조위배우가 타서 대사를 나누는 동안 밖에서 스텝들이 분주하게 총격을 한 장소를 정리해서 다른 층을 세팅하고 이어서 총격을 계속했다고 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았고 영화를 볼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총격으로 초토화된 층을 잠깐 사이에 다른 층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고 살짝 티가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컷은 정말 멋진 장면이었다. 그리고 감독님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너무 멋진 일이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할리우드에서 페이스 오프를 찍을 때 이야기다.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유명한 배우가 제작자였는데 동, 서양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환경은 너무 달랐다. 마이클 더글라스는 오우삼감독님과 같이 회의를 통해 영화에 필요한 선택을 감독님에게 요구했고 감독님은 불필요한 회의에 많이 끌려 다니는 것이 피곤했다고 한다. 결국 오우삼감독님은 마이클 더글라스를 불러 불필요한 회의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대신 오우삼 감독님은 "내가 죽이는 영화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이해를 한 마이클 더글라스는 다음부터 감독님이 원하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오우삼 감독님은 마이클 더글라스를 치켜세우고 훌륭한 제작자라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을 믿어주었고 오우삼 감독님은 실제로 죽이는 영화로 보답을 했으니 이런 낭만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오우삼 감독님이 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헤어질 시간>

1달간의 로케이션 일정이 끝이 나고 감독님과 일행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술자리 감독님은 와인을 드시는데 와인잔이 없었다. 피디님은 나에게 말했다. “야 와인잔 가져와” 고깃집에서 갑자기 와인잔이 나올 리 없다. “없습니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네” 대답하고 나는 급하게 밖으로 나가서 와인바를 검색하고 무작정 와인바로 달려들어갔다. “죄송한데 와인잔 하나만 팔아주세요!” 나는 현금 5천 원에 와인잔을 구매해서 다시 고깃집으로 향했다. “와인잔 여기 있습니다” 술자리도 끝이 나고 다들 감독님과 사진을 찍겠다고 달려들었다.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다음날 마지막으로 감독님 일행을 공항까지 배웅했다. 감독님의 사모님도 같이 계셨는데 내가 많이 애쓴 모습을 알고 있었다. 사모님은 손을 잡아주시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체리피디님은 내가 숫기가 없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감독님과 사진을 한 장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물론 감독님은 웃으며 허락했고 사진을 같이 찍을 수가 있었다. 일정은 끝이 나고 잠시 뭉친 우리는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오우삼 감독님이 준비하던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비둘기는 오우삼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잃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체리피디님은 나에게 “집에 있지 말 것” 그리고 “자주 여행을 다녀라” 두 가지를 충고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연출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좋은 영화에 연결해 주셨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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