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지속되는 기침으로 어린이집을 쉬고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
비는 오지 않아도 온 공기 분자마다 가득 습기를 머금은 날씨에 차 안 에어컨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가동되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내가 뒤늦게 빠진 '선재 업고 튀어'의 ost인 이클립스의 '소나기'가 흘러나오고 '그대는 선물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가사를 따라 부르며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한 손으로는 커피수혈을 하는데 아이가 말을 건다.
"엄마~ 좋아하는 삼촌이 김선호 삼촌에서 선재 삼촌으로 바뀌었어요?"
몇 년 전, 우울증으로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갯마을 차차차' 드라마 내용이 힐링되고 참 좋은 것 같다며 추천해 준 남편의 권유를 받아 마지못해 보았다가 김선호라는 배우에 빠져 열심히 덕질을 하곤 했었는데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마다 넷플릭스에서 '갯마을 차차차'를 튼 태블릿을 들고 와 엄마가 좋아하는 삼촌 보라며 틀어주곤 했다.
아이의 물음에 민망하게 웃으며 말없이 끄덕거리니 아이가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하며 "눈물의 여왕도 좋다 하고." 하며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한다. 아이의 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에 "너어~~!!! 엄마 놀리고 있어!" 하며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간지럽히려고 하니 운전하면서 장난치면 위험하다며 나를 어허! 하는 애어른 같은 아이.
창 밖엔 비를 잔뜩 머금다 못해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 우중충한 구름이 층층이 높게 쌓여있었고, 비에 젖은 흙냄새를 품은 비바람에 가로수들이 낭창낭창 흔들리고 있었다. 창 밖을 무심한 듯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던 아이는 풍경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엄마! 구름이 너무 예쁘다! 엄마 그거 알아요? 나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보는 걸 종이에 그대로 그리는 초능력이 있어요. 엄마는 무슨 초능력이 있어요?"
아이가 가끔 어떤 캐릭터를 한번 본 기억으로 나중에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 때 똑같이 그려 깜짝 놀라곤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아이의 물음에 엄마는 아무 능력이 없다고 차마 말은 못 하고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게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고민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잘하는 게 그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엄마는 네가 그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죄는 미워하고 야단칠 수는 있지만, 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할 거거든."
"엄마, 그게 초능력이야?"
늘 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해 당연한 걸 초능력이라고 말하는 나의 대답이 못마땅했던 걸까. 아이는 내심 좋아 입가에 미소를 못 숨기면서도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럼! 누구를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건 정말 행복하고 좋은 초능력이야.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이유보다 안 좋은 이유를 먼저 생각하거든. 근데 엄마는 너를 진짜 진짜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니까!진심!"
말은 그렇게 해도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난 그런 아이를 힐끔 쳐다보았다가 바뀐 신호에 시선을 전방에 둔 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엄마는 네가 물론 그림도 너무 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너의 외모만 보고 너무 예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는 너의 초능력은 따로 있어."
"그게 뭔데?"
"음.. 엄마가 생각하기엔 물론 네가 얼굴도 예쁘지만, 같은 말을 해도 누구보다 예쁘게 말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사실 너처럼 어린아이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은 하면 안 되는지 잘 몰라서 말실수를 하기도 하거든. 그래서 어른들이 계속 알려줘야 해. 근데 너는 따로 알려주지 않아도 예쁜 말만 골라 말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예뻐. 엄마는 얼굴이 예쁜 사람보다 마음이 예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참 좋더라."
주변에서 늘 "아이가 어쩜 그렇게 예쁘게 말해요?"라고 말할 정도로 예쁜 말만 골라하는 아이에 가르친 것도 없으면서 괜히 가정교육을 잘 시킨 것 같아 자랑스러웠던 난 아이의 장점을 초능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아이와 서로 가진 초능력에 대해서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어느새 병원 건물 주차장에 주차가 끝나고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나한테 배운 대로 주위에 오는 차가 있는지 좌우를 살피고 한쪽 손을 번쩍 들고 이동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장난을 친다.
"똥꼬야. 귀여워~ 으이그!!!!"
하며 사랑스러운 마음에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나에게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길,
"엄마. 마음의 소리가 들리네? 그런 나쁜 말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거야. 그런 마음속의 나쁜 말을 굳이 다른 사람이 듣게 말하지 않아."
언젠가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인데 아이가 고대로 배워 말하는 모습에 놀라 토끼눈을 하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근데 아이는 내가 시무룩한 줄 알았나 보다.
"혼내는 거 아니고 말해주는 거야. 그래야 엄마가 다른 곳에 가서 실수하지 않지. 혼내는 거 아니야~ 알았지?"
하며 언젠가 내가 아이를 혼내고 등을 쓸어주었던 것처럼 아이는 서있는 나의 다리 한쪽을 끌어안고 나의 허리를 토닥토닥해 준다.
네가 내 엄마 해라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