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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혁 May 04. 2024

나와 도시 그리고 사회학

나와 너의 연결고리! -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

1. 도시의 시대


    지금 이 글을 읽기 시작한 여러분들을 만나본 적도 없지만, 한 가지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누구신지 맞춰보겠다. 여러분들은 "도시인"일 것이다. 이렇게 확신한 이유는 현대인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의 절반 이상인 56.2%가 도시에 살고 있고, 2050년에는 인류의 3분의 2 정도가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드워드 글레이저(E. Glaeser)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도시가 "성장의 엔진"이라고 했다. 미국과 일본같이 높은 수준의 도시화를 이루며 성장한 선진국들을 따라 한창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의 신흥 국가들에서도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곧 도시 사회이다.


 2023년과 2050년(예상)의 세계 도시 인구 비율 (UN)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는 규정상 도시를 5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20%를 웃도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한 세기도 지나기 전인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 인구 비율은 90.7%에 육박한다. 한국인들에게 "어디 사세요?"라고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도시에 산다고 답하는 것이다. 도시는 이제 우리에게 일상적 공간이다.


한국 도시 인구의 변화 추이 (통계청)


    도시가 우리의 일상적 공간이라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 대부분이 어머니 뱃속에서 처음 세상에 나온 장소는 아마도 도시일 것이다. 병원은 일반적으로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움을 얻는 학교와 일하는 회사도 대부분 도시에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날 때도 우리는 도시에 있을 것이다. 장례식장도 도시에 많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도시에 존재한다.




2. 사회학적 상상력


    “우리는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도시는 우리의 일상적 공간입니다.” 지금까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그 사실이 나와 무슨 상관이며 뭐가 중요할까? 밀즈(C. W. Mills)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 개념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밀즈는 당대 지배적인 미국의 주류 사회와 학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던 급진적인 사회학자였다. 비록 밀즈는 45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했지만, 그의 사회학적 상상력 개념은 여전히 대학교 사회학과에 갓 입학했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개념이다. 그만큼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독특한 관점을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사회학자라고 할 수 있다.


찰스 라이트 밀즈의 기념비적인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


    밀즈가 이야기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교차하는 개인의 일생과 세상의 역사 간 관계를 통찰하는 관점"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사소한 문제를 사회라는 렌즈를 통해 공공의 문제로 확대해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적 렌즈가 없을 때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32세 김 씨는 계약 종료가 앞으로 1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직을 위해 많은 회사에 원서를 넣어봤지만, 번번이 탈락해서 계약 종료 후 실업자가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명절에 모인 김 씨의 친척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신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그러게 그동안 코딩이라도 배우지 그랬어." "면접 때 너무 떨어서 그러는 거 아냐?" 김 씨의 취업 문제를 개인의 역량과 노력의 부족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뿐일까?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법, 사회적 통념 등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틀 혹은 규칙인 사회구조가 존재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회구조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김 씨의 문제를 단순한 사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김 씨의 상황을 통해 열악한 계약직 고용을 확대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 경제침체로 인한 기업의 채용 축소,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직업 재교육의 필요성 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바로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인종, 국가, 화폐, 성별처럼 사회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렇다고 사회학적 상상력이 단순히 모든 문제를 세상의 탓으로 돌리는 개념은 아니다. 개인이 경험하는 문제에 대해 무조건 자책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모든 문제가 내 탓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진짜 문제의 원인을 영원히 알 수 없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여기서 더 나아가 개인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쟁점을 고찰하고 진정한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여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구조를 인식하고 개인의 문제를 세상의 공공 문제와 연결 짓는 것이 바로 사회학적 상상력의 과제이다.




3. 나와 도시의 연결고리


    이제 다시 우리의 주제로 돌아가자. 그래서 도시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도시는 개인의 일상적 삶의 공간인 동시에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 공간이다. 따라서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빌려서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는 높은 확률로 도시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 광화문의 출근길


    예를 들어보자. 32세 김 씨는 현재 서울시 마포구에 거주하고 있고, 직장은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있다. 김 씨는 출근하는 데 시내버스 20분, 광역버스 50분, 도보 20분 총 편도 1시간 30분을 소요한다. 왕복 3시간 출근을 하며 김 씨가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원인은 김 씨의 비타민B 부족, 가녀린 다리근육, 버스에서 멀미를 유발하는 나약한 평형감각기관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비효율적인 도시 간 교통 인프라 연계, 늘 꽉 막히는 강변북로의 교통체증, 교통 문제에 대한 서울과 고양시 두 도시 간 협력 부족이다. 즉, 김 씨의 만성피로는 도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학적 상상력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도시와 연결 지어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빌려준다.




4. 도시에서 사회학 하기


    <도시에서 사회학 하기>는 제목이 곧 내용이다. 이 글을 통해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일상을 도시와 연결 지어 보고자 했다. 이 제목은 이 글을 쓴 32세 김 씨가 도시계획학 석사과정 중에 떠올린 제목이다. 김 씨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을 공부했다. 학제 간 융합으로 새롭고 가치 있는 연구를 해보겠다는 열망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두 학문 애매하게 겉핥기만 하게 되었다. 이 연재 글은 사회학과 도시계획학의 겉만 핥아본 32세 김 씨가 얕은 수준에서 두 학문을 이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재 글들은 사회학 거장들의 이론을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없다. 사회학 거장들의 깊은 이론의 바다에 발 한번 담가 보는 정도일 것이다. 위대한 사회이론가들이 사용하던 카메라를 잠시 빌려 도시와 도시인을 관찰하려는 시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의 연재 글에서 우리는 고프만(E. Goffman), 부르디외(P. Bourdieu), 르페브르(H. Lefebvre), 마르쿠제(H. Marcuse), 바우만(Z. Bauman) 등 위대한 사회이론가들의 카메라를 빌려 우리의 일상에서 도시, 그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글들이 써질 곳도 도시, 이 글들이 읽히는 곳도 아마 도시일 것이니 이제 본격적으로 도시에서 사회학을 시작해 보자.      




찰스 라이트 밀즈 (1916 - 1962)

    밀즈는 1916년 텍사스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풀네임은 찰스 라이트 밀즈(Charles Wright Mills)이지만 어째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C. 라이트 밀즈로 불리고 있다.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ustin)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밀즈는 학부 과정 중에 이미 주요 사회학 학회지에 여러 논문을 발표해 본 떡잎부터 다른 사회학도였다. 이후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메릴랜드대학(University of Maryland)을 거쳐 심장마비로 45년의 짧은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콜롬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의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의 인생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아웃사이더"이다. 조급한 성격이었던 밀즈는 늘 투쟁하며 살았다. 세 번의 결혼, 동료 학자들과의 불화, 당대 주류 미국 사회와 사회학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 전쟁 같았던 그의 삶 역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보면 당대 보수적이고 지배적인 사회에 대한 반발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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